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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꽃으로 오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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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05월 255호
오월은 시시각각으로 산색이 다르다. 사월은 꽃들이 릴레이를 하고 오월은 나뭇잎들이 바톤을 이어받는다. 요사이는 나뭇잎들이 제 품을 넓히느라 여념이 없고, 산빛도 짙어지고 있다. 꽃이나 나뭇잎들이 한창 어우러져 피어날 때는 산이 수선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사는 요사 앞에도 한창 철쭉꽃이 필 때는 현관문을 열기가 부담스럽다. 꽃들이 어찌나 수선스럽게 피어나는지 화사해서 좋기도 하지만 한가지 빛깔로 피어나는 꽃이 무리지어 있으니 가슴이 꽉 차버리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날 때마다 “아이고, 니네들 때문에 내 눈이 시끄러워 죽겠다.”라며 행복한 투정을 하며 “그래, 화무花舞는 십일홍十日紅이라고 하는데 그 열흘 남짓 꽃 피우기 위해서 한겨울을 그렇게 참고 왔겠지? 바로 네가 부처다.” 꽃에 눈 맞추고 말을 건넨다.
이렇게 봄에는 꽃바람에 들떠 한 열흘 남짓 눈길이 바쁘다. 꽃빛깔에 따라 날로 산색도 변하고 마음까지 분주해진다. 나를 기다리고 오라는 곳은 뚜렷이 없지만 가고 싶은 곳은 왜 그렇게 많은지. 핑계가 좋다. 든든한 산과 수줍은 들꽃, 밉지 않은 바람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쉽사리 일상을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한줄기 꽃바람이 가슴을 휑하니 뚫고 지나가던 어느 날, 아침 공양을 하고 법당 앞을 지나오다 습관처럼 부처님을 향해 손을 모으고 “부처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돌아서 방송국을 향했다. 자동차를 타고 또 습관처럼 손은 라디오를 켜고 입은 천수다라니를 외우는데 문득 가슴 저 밑에서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뭉클함 때문에 목이 메었다.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회한인지 봄이 주는 이 기꺼운 선물 때문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매년 산천이 푸르런 오월,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오월의 신록은 누군가를 위해 기원을 가득 담아 불 밝힌 형형색색 연등을 가장 향기 좋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낸다. 세상에 어느 꽃이 간절한 기도로 피워낸 꽃만큼 아름다울까. 세상에 갓 태어난 아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내주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누군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리로 마음 낮추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운 보현보살의 모습이다.
오래 전에 기도도량에 상주할 때의 일이다. 그날도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온 도량이 사부대중의 오고가는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삼사순례를 하며 불을 밝히는 불자님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유난히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고 내려갔다. 온 도량에 연등, 주름등, 팔모등이 장엄되고 법당에서는 시간 맞춰 기도가 진행되었다. 유난히 많이 오고가던 사람 중에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있다. 분주하게 도량을 오가며 등을 달고 있던 오후 나절에 허리가 약간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셨다. 경사가 급한 산을 오르느라 힘이 들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도 할머니는 머리에 뭔가를 이고 있었다. 얼른 머리에 이고 있는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제법 묵직했다. “노보살님, 혼자 몸으로 올라오시기도 힘드신데 뭘 이렇게 머리에 이고 오세요? 그냥 오시지…”. 나는 얼굴이 바알갛게 땀흘리는 할머니가 너무 안타까워 그렇게 말했다.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미여! 그리고 우리 도道 닦는 시님들 공양도 해야제.”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나에게도 할머니가 살아 계시던 때라 문득 할머니께서 정월이나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시기 전에 밤이 이슥하도록 택미擇米를 하시던 생각이 나서 코가 시큰했다. 또 무엇보다 ‘우리 도 닦는 시님들 공양도 해야제’ 하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무거웠던지. 그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도 한달음에 법당까지 올라가 공양미를 올리고는 나를 부르신다. 할머니는 치마 안 고쟁이에 길게 달린 주머니에서 때 묻은 손수건에 돌돌 말린 작은 뭉치 하나를 꺼냈다. 손수건을 풀고 그 안에 비닐로 싸진 또 한겹을 풀고, 오랫 동안 주머니에 있었던지 접은 모서리가 다 헤진 한지를 또 풀고 꺼낸 돈이 오천원이었다. 그 중에 이천원을 부처님과 나한님 전에 불전 올리신다고 빼 놓으시고 삼천원을 주셨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시님! 예쁜 등을 우리 부처님이 잘 보이시는데 달아줘. 우리 아들이 앞을 못 봐. 금생에는 어려운 일이것제만, 부처님 앞이 환해야 우리 아들 이름이 잘 보여서 부처님이 기억하제. 우리 아들이 다음생에라도 눈이 잘 보이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오직 내 소원이여.” 푸념처럼 흘려 놓는 말이지만 한결같은 의지와 정성이 깃든 말이었다.
살아온 세월의 뒤안길에 할머니는 아픔을 묻으셨던지 그 해맑은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고 등이 굽도록 앞이 보이지 않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평생 하시면서 살아오신 할머니는 얼마나 자신의 업장業障을 탓했을까. 오직 한 가지 다음생에라도 우리 아들의 눈뜨기를 기원하는 할머니의 염원 앞에 가슴이 멍멍하게 아파왔다. 삼천원을 받아들고 종무소로 가서 등표에 할머니의 소원을 정성스레 썼다. 지금껏 그렇게 긴 소원을 등표에 써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할머니의 희망대로 부처님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달아 드렸다. 그날 밤 온 도량에 등불을 밝히고 밤이 이슥하도록 할머니는 그 등 아래서 합장하고 맴돌면서 기원을 했다. 도량을 돌아보다 살며시 할머니 뒤를 따라 걸으며 귀를 기울여 봤다. 무슨 소린지 분명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일구월심 그 한 가지 기원이었다. 아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그 노모의 기막힌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한참을 할머니 뒤를 따라 걸으며 그 간절한 노모의 염원에 힘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느 부모님과 인연을 맺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업으로 맺어지느냐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우리 불가의 인연설로 이해하자면 이미 숙업에 인연되어 그 업의 힘으로 세상에 오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평생을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엄청난 인연들이 많다. 그래서 부처님도 태어나시기 전에 태어날 나라와 종족, 그리고 부모님을 신중하게 선별하셨을 것이다.
살다보면 거부하고 싶은 인연이 얼마나 많은가. 업연이란 자기 의지로 만나고 싶다고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다고 안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고통을 누구나 겪고 사는 일이지만, 그 업연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수행을 닦아 지혜로운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업연의 질긴 굴레에 절망하고 받아들일 힘조차 없어 하루하루 실낱 같은 희망도 없이 미래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고 다시 돌아가 닦을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 오래 전 등공양금 삼천원은 삼만원이나 삼십만원보다, 아니 삼백만원보다 더 크게 느껴졌고 감히 값으로 따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등공양금 삼천원으로 등불을 밝히고 간절한 기원이 담긴 그 등불 밑에서 기도하던 그 할머니는 나에게 큰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내 육신의 사대를 건강하게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했다. 물론 내가 숙세에 짓고 온 인연도 중요하지만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온전하게 길러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어찌 가벼이 할 수 있을까.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깊숙이 고개 숙여 절을 하며 나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계속 되뇌었다. 가슴에는 연초록빛 물이 가득히 스며들었고, 온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부처님으로 다가왔다.
오월의 꽃으로 오신 부처님!
품 넓은 나무로 싱그럽게 내게 오신 부처님!
당신의 가르침을 말없이 찬탄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지혜로운 눈을 뜨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