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경주 남산에서 또 다른, 숨은 그림 찾기의 예를 발견합니다.
남산의 서쪽, 삼릉 골짜기를 올라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짧은 걸음에 환조丸彫, 옅은 부조浮彫, 높은 부조,
환조와 부조의 혼합, 선각線刻, 부조와 선각의 혼합 등등 온갖 형식으로 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남산에서 마주치는 여느 바위들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되고 우리는 무의식중에 숨은 그림을 찾기 시작합니다.
금방이라도 눈앞의 바위벽에서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예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감들이 전혀 허망하지만은 않았던 것이, 1994년 탑골 입구에서 제2마애조상군이 발견되었고,
얼마 안 되어 선방골에서 석불 입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제2마애조상군彫像群이라 불리는 탑골 입구의 넓지 않은 바위에는 건물들, 인물들, 나무들이 여럿 새겨져 있습니다.
건물들은 금당이거나 탑이고, 인물상들은 여래상 또는 보살상으로 드러나 자그만 바위 하나가 부처나라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들은 그러나 닳고 닳아서, 날 좋은 날 정오 무렵의 햇빛에나 간신히 그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런 희미한 자취를 어떤 신심 깊은 사람이 찾아냈던 것입니다.
나그네는 5층 목탑과 두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는 바위 앞에 서서, 천년 잠에서 깨어난 그림들을 다시금 눈으로 더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의 글’을 찾아낸 절절한 기구와, 천년 전의 희미한 부처나라를 읽어낸 깊은 신심을 되새겨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