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는
경전이 와닿기 시작하니
누구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진원 스님은 그 시기를 스무살로 잡고 있다. 그 전까지는 어떤 경전을 읽어도 마음에 감흥이 없고, 어떤 일을 해도 만족하지 못했다. 남들은 경을 읽고 좋다는데, 다른 이들은 포행하며 기쁨을 느낀다는데… 스님은 속으로 교육을 못 받고 혼자 살아 마음이 열리지 않아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는 모든 것을 접고 기도에 들어갔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전에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번뇌를 추적해 들어가 실체를 보니 굳이 외면하고 싶었던 부모님과 어린 나이에 떨어져 버린 데서 온 애정 부족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다림을 가 《아미타경》을 읽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아미타경》 대목을 스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러한 자신의 실체를 알고, 그것을 풀어버리고 나자 어떤 경전이든 그대로 와닿기 시작했다.
이후 겉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지라도 흐트러졌다가도 중심을 찾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리고 선택해서 실행할지라도 고집은 하지 않으며, 흐름에 맡긴다. 따라서 안 된다고 고민하지도 않고 성공시키기 위해 도움을 구하거나 지원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스님은 자기발견의 경험을 통해 순리를 깨닫고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학인들을 통해
그들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를 고민한다
진원 스님은 아침 6시 반부터 학인들과 도량을 청소한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학인들과 함께 예불드리고 울력도 함께 한다.
“승속을 막론하고 고담준론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데, 주어진 공간에서 최대한 성실하라고 하지요. 지심귀명례는 안 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예불하고, 부처님 은혜에 보답은 아니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국토를 장엄하고 맑게 하는 것까지는 안 되더라도 마당이라도 쓸자고 하지요.”
학인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내가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학인들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를 고민한단다. 다만 경을 보는 요령 정도는 그동안 들어왔던 얘기로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겸손하게 말을 잇는다.
전통적 방식의 강원교육 지향
스님이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 수행가풍이 계승되지 못하는 점이다. 강원교육 방식 역시 전통적 방식보다는 현대적으로 요즘 출가자들의 입맛에 맞추어가는 듯해 안타깝다. 요즘은 나이도 많고 교육을 받을 만큼 받은 이들이 출가를 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속세의 방식보다는 전통적 방식으로 불교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스님은 중국이나 일본의 교재보다 우리 나라 스님들이 주석한 교재나 한국스님들의 어록을 많이 인용하고, 읽도록 권한다.
“중국에만 훌륭한 스님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각경》 하면 한국에도 함허 스님이 있고, 《기신론》 하면 원효 스님이 있어요. 이 땅에서 수행자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해야 할 바를 알 수 있으려면 풍토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노스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전통적 교육방식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썩으면 도려내듯 잘라내지만, 옛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하셨어요. 예불도 안하고 늦게 일어나면 문앞에 와서 은근히 말씀하시지요. ‘어디 아프신가?’ 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거예요. 우리의 전통을 찬찬히 살펴보면 조상들이 참으로 현명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진원 스님에게는 존경하는 세 분의 스승이 있다.
어린 아이를 거두어주신 암도 스님은 정직과 겸손 그리고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금생에 다시 그런 분을 뵙기는 어려울 것 같은 운허 스님.
“겨울에 종로5가에서 동국역경원까지 걸어다니셨는데, 풍이 와 거동이 불편하셨지요. 그럼에도 예불시간이면 가사장삼 수하시고 예불이 끝날 때까지 법당을 향해서 합장하고 계셨지요.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전강傳講 해주신 월운 스님은 밖에서 듣는 명성보다 안에서 훨씬 더 감화를 받았던 분이다. 그리고 그 밑에서 공부할 때 좀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계속 한으로 남아 있다.
“투철한 수행자의 모습과 자상한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 분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당신 대代에서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지만, 그 어른은 내가 기초라도 닦아놓으면 나보다 더 능력있고 뛰어난 이가 와서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지요.”
이렇게 존경하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진원 스님에게는 크나큰 복이었다.
월운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은 것은 94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때 월운 스님은 《능엄경》을 주셨는데, 실제 스님이 마음으로 전해 받은 것은 《유마경》이었다.
“월운 스님의 스승이신 운허 스님은 《능엄경》을 전공하셨고, 월운 스님은 《금강경》과 《원각경》에 뛰어나셨지요. 그런데 저한테 《능엄경》을 주셨는데 당시 줄 만한 책이 마땅치 않아서였고 애초에는 《유마경》을 주려 하셨어요. 이심전심이었지요.”
진원 스님은 《유마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도그마를 형성하지 않고 늘 자기비판을 한다는 점이 스님이 《유마경》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일반 경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데 반해 《유마경》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로부터 출발한다.
“《유마경》은 문장도 화려하지만 자기가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다고 간직한 것들이 무참히 무너지는 통쾌한 스릴이 있어요. 경전을 읽다보면 부처님 당시 비구승들이 타성에 젖어 수행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사리불이 참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선은 왜 하니? 꼭 나무 밑에서만 있어야 하니?’ 하고 묻지요. 늘 깨어 있게 합니다”.
스님은 경을 보는 데 있어 《유마경》을 가장 바닥에 놓고 그 위에 경전의 탑을 세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스님의 말씀과 행동의 바탕이 어렴풋하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스님은 자신에게나 학인들에게 똑같이 “왜, 무엇때문에?”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마치 유마거사가 그러했듯이.
“선지식을 구해? 무엇을 위해? 해탈을 원해? 무엇으로부터?”
그리하여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고의 토양을 파헤쳐놓는다. 숨통이 트이도록.
봄에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밭갈이를 해줘야 씨앗이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이와같이 밭갈이가 필요하리라.
다만 육신의 봄은 가도 마음의 봄은 자리를 떠나는 바가 없을 뿐.□
취재·정리/이연정, 사진/백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