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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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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박원자 2003년 05월 255호
지난 1월 인도를 거쳐 네팔로 들어가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동산을 참배했다.
거의 한 주 동안 계속되었던 인도에서의 음습한 안개 때문에 몸까지 축축했던 날씨가 네팔에 들어서자 따뜻해져 마음까지 밝아지는 듯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룸비니에 있는 한국절 대성석가사 주지 법신 스님의 말씀으론, 네팔도 그동안 예전에 비해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서, 대성석가사에서 키우던 강아지 일곱 마리가 얼어죽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저체온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며칠 전 신문에 실렸다고 하니, 섭씨 0도의 날씨가 그곳에선 혹한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우리 일행이 마야 부인이 몸을 풀러 친정인 콜리성으로 가다가 그곳에 도착도 하기 전 부처님을 낳았다는 룸비니 동산을 참배하러 갔을 땐, 날이 봄날처럼 화창해서, ‘역시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다르구나’ 하는 감회마저 들었다.
꽃 피고 새 우는 5월의 아름다운 봄날, 룸비니 동산에서 무우수 나무를 붙잡고 길에서 인류 최대의 성인을 낳았던 마야 부인과 아기 부처님 탄생을 떠올려 보았다.
네팔 쪽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 성터에 들렀을 때다. 길가에 카레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던, 그리고 노 란 겨자꽃과 야생화가 곱게 피어 있던 평화로운 들판을 지나는 동안,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줄곧 콧노래를 부르며 앞서가던 법신 스님이 카필라 성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자, 여러분, 부처님이 어느 방에서 만들어지셨는지 상상해 보세요오……”.
우리 일행 스무 명뿐 아니라, 그곳을 여행왔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스님의 재치있는 말에 와 - 웃고 말았다. 법신 스님은 ‘기브 미 초코렛’을 무슨 후렴처럼 부르며 달려들던 그곳 아이들을 단숨에 평정했던 분이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과 무언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을 자신에게 고정시켜 놓고 함께 노래를 불렀었다. 아마도 그곳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였으리라. 룸비니에 7년 있는 동안 한국에 두세 번 정도 다녀갔다니, 스님은 그곳 사람이 다 된 것 같았다.
동행했던 한 스님의 말씀처럼, ‘여행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터만 남아 있던 카필라성을 들러나오면서, 나는 저 이천육백년 전쯤 부처님의 장엄한 행렬을 상상해보았다.
깨달음을 이루신 후, 수년 만에 수백명의 제자들과 함께 아버지 정반왕과 아들 라훌라와 부인이 머물고 있는 고향 카필라성을 방문하기 위해 이 들판을 지나셨으리라. 금빛보다 더 환히 빛나는 얼굴에, 손엔 발우를 드시고, 아마도 맨발로 맨 앞에 서서 이 길을 걸으셨으리라. 많은 이들이 부처님의 장엄한 행렬을 보고 합장하고 무릎을 꿇었으리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했으리라.
인도의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노불교학자는 창밖으로 눈길을 주며 여러 번 되뇌었다.
“아, 이렇게 너른 평원을 부처님께선 어떻게 걸어다니셨을까? 추운 날씨엔 무슨 옷을 걸치셨을까? 무엇을 드시고 다녔을까?”
그렇다. 아마도 순례객들은 그렇게 부처님이 지나신 곳곳에서 부처님의 삶을 상상하고 만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 속에 그 가르침을 어떻게 용해시킬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삶을 변화시킨 부처님의 가르침.
“다음생은 물론 세세생생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할까봐 두렵다.”
이번 인도 순례에 동행했던 한 비구니스님의 말씀이다. 올 이순耳順의 나이에 들어선 스님은 이생에 말고 오랜 생에 익혀온 습 때문에 다음생에 이렇게 좋은 길을 놓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태어나 부처님 제자로서 이렇게 순례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노비구니스님의 말을 들으며, 이 생에 부처님을 만나 행복했던 사람이, 그리고 부처님께서 살아 숨쉬었던 길을 걸으며 환희로웠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부처님 한 사람의 탄생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켰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여행은 역시 자신의 문제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인도와 네팔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했고, 결론지으며 돌아왔다. 가장 확실한 결론은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그분을 내 삶의 역할 모델로 삼겠다는 평소의 다짐을 더욱 확실히 했던 것이다.
부처님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실천하자. 그리고 이생에 그분을 만날 수 있었던 선연善緣에 깊이 감사하고, 그 감사함을 잊지 말자.
곳곳에서 부처님의 숨결을 느꼈던 인도에서의 스무이틀 동안의 여정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