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여 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글의 바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 올해 3월에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이 축복게와 더불어 내려주신 자운慈雲이라는 법호를 현관과 공부방에 걸어놓고 뒤늦게 매일매일 분발심을 내고 있다. 또다시 33년이 지난 뒤에는 저승에서 이 글을 어떻게 해석할지?
우리 어머니는, 산청군 지리산자락 골짜기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당시 우리집은 부산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다. 사업확장을 위해 5·16 이후 서울로 진출하였으나 결국 실패를 하고 다시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넘쳐나는 시집·친정 식구와 고향사람, 수많은 손님과 식객, 5남 2녀와 그 친구들로 늘 붐비던 집이 어느 순간 적막강산이 되는 흥망성쇠를 겪으신, 지금은 지리산자락 흙으로 되돌아가신 고단했던 어머니 심신의 안식처는 절이었다. 기복의 성격이 짙게 느껴졌지만 전국 각지의 대소불사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을 하시면서, 몸과 마음의 평정도 얻으셨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에는 북한산 국영사에 《금강경》 보시를 하셨고,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셀 수 없이 관악산 연주암에 오르셨다. 나이 50이 넘어 아직 은행에서 쫓겨나지 않고 승진까지 하고 있는 것은 다 어머니께서 지으신 복전의 덕이라 늘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불교에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 잘하고 얼굴 잘생기고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 많이 다니던 룸비니 법회에 따라 나가면서부터인 것 같다. 중2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어느 스님으로부터 ‘유리병 속에 갇힌 부화된 새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어제의 일과 10년 전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왜 태어나기 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어려운 질문을 받고 이미 불교에 대한 호기심은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올해 82세가 되신, 그 당시 47세 청년 법주님께서 ‘대통령감’이라는 방편말씀에 매주 법회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예쁜 여학생도 많이 나온다고 친구들까지 꼬드겨 많이 데리고 나갔다. 2학년이 되어 섭외부장을 맡았는데 무작정 조계사를 찾아 어느 스님께 무진장 스님 계신 곳을 여쭈어 보았더니, 그 스님께서는 여러 건물을 지나 어느 한 방에 당도하여 앉으시더니 ‘내가 무진장이오’ 하신 적도 있다. 이제 생각하니 무진장無盡藏을 앞에 놓고 무진장을 찾아 헤맨 나에게 무진장 스님께서 큰 가르침을 내리신 것이다.
이두에 대한 탁월한 연구로 신라 향가를 바르게 해석하신 무애 양주동 박사님께서는 서정주 시인의 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를 항상 인용하셨는데, 대학합격 후 인사차 저녁식사 전에 조계사를 방문한 우리들에게 통행금지 직전까지 자상하게 ‘우리 마음 안에 온 우주가 있다.’라는 요지의 가르침을 내려주신 청담 종정스님의 말씀을 받잡고 이해하는 데 큰 기초가 되었던 것 같다.
청담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룸비니 대학생부 신임간부들은 여름방학에 청담 스님에 이어 룸비니 총정직을 수락해 주신 성철 종정스님을 해인사 백련암으로 찾아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영자英字 라이프지의 영매靈媒이론 등을 두루 인용하시면서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마음 즉 정신이 지극하면 물질도 움직일 수 있다. 정신력을 무한하게 키우는 것이 깨닫는 것인데,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착한 일이 남을 도우는 일이다.’라는 요지의 법문을 한낮에 시작하여 저녁공양을 하시면서도 계속하시어 해가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자상하게 내려주셨다. 원택 스님의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우리 일행 열여섯명이 사하촌으로 내려오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1985년 12월 6일 내가 파리사무소에 근무할 때 한국은행에 불교회가 창립되었는데, 귀국하여 지금까지 15년째 간사일을 맡고 있다. 파리에 있을 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총재로 우리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깡드시 프랑스은행 총재 초청으로 오찬을 하면서 1986년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한 IMF/세계은행 합동연차총회와 종교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는 불교의 6바라밀을 설명해드렸다. 깡드시 총재는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재학시 천주교 학생회 회장을 지냈는데, 어느 종교나 착한 마음을 내고 남을 돕는 것이 그 바탕이 된다고 하시면서 불교의 6바라밀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표하셨다.
한국은행불교회는 금년 3월 창립 20주년을 며칠 앞두고 첫 수계법회를 가졌던 해인사를 찾아 철야용맹정진을 하면서 초발심初發心을 되새겼다. 4월 5일 룸비니 창립 44주년 기념법회의 회주님 화두는 자작자수自作自收이었다.
초파일날 아침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의 축복게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