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인 경부고속철도의 금정산·천성산 관통 문제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7일 “부산 고속철도 노선의 공사를 중지시키고 합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다시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18조4358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천안-대전-대구-경주-부산에 이르는 412㎞를 최고시속 350㎞의 고속철도로 달리기 위한 사업. 1992년 착공했으며, 2008년 개통한다는 계획이다. 고속열차는 1994년 6월 프랑스의 떼제베로 정해졌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노선인데, 전 구간 노선을 새로 건설하고 있다.
불교계와 시민·환경단체가 문제를 삼는 가장 큰 이유는, 금정산과 천성산의 생태와 경관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개발사업도 국토의 근간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금정산은 민족의 정기를 품고 있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줄기로서 태평양을 향하는 해양도시로서의 기상을 지키고 부산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기운이 잉태되어 용출하는 부산의 진산鎭山이며, 400만 시민의 휴식처이다. 여기에 18㎞의 터널을 뚫는다 함은 마치 일제가 민족의 혈을 끊어버리기 위해 전국의 명산에 철심을 박아 말살하고자 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부산시민들의 인식이다.
천성산은 보기 드문 고층습지가 있으며, 2002년 3월 환경부에 의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후손에게 길이 물려 주어야 할 고귀한 생태자산이다. 이 곳을 고속철도가 13.5㎞에 이르는 터널로 지나가면 지하수가 빠져나가 천성산 일원은 사막이 되고 만다. 환경영향평가를 하긴 했지만, 형식에 그쳤다.
개발사업으로 인해 나타날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환경영향평가 제도인데, 오히려 환경파괴의 허가장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4년 1월 펴낸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권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최종보고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보고서에는 금정산과 천성산에는 473종의 동식물이 있다고 돼 있으나, 양산시와 천성산 습지보전 대책위원회의 조사 결과 94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고서에는 설계노선 주변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이 없다고 돼 있으나, 금정산에만 멸종위기종 및 보호대상종 5종, 한국특산식물 7종, 환경부 지정 특정야생식물 3종 등 다수의 보호종이 있다. 천성산에는 천연기념물 2종, 보호대상종 11종, 특정야생동식물 6종,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및 보호야생식물 등이 다수 확인되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제대로 작성했다면, 금정산과 천성산을 파괴하는 지금의 노선이 그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천성산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고층습지가 있다. 화엄늪과 밀밭늪이 대표적이다. 고층습지는 산지에 형성된 습지인데, 특수한 환경에 적응된 생물이 살고 있는 특수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유전자원 보존과 활용, 고생태학과 고기후학 등의 연구를 위해 매우 귀중한 생태자산이다. 2002년 3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화엄늪은 천성산 정상부에 있으며, 끈끈이주걱, 잠자리난초 등 희귀식물과 한국특산종인 도롱뇽, 천연기념물인 참매와 황조롱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고층습지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어 건기에도 계곡으로 물을 흘려 보낸다. 그래서 천성산의 20여 개 계곡은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다. 고속철도가 지나가기 위해 터널을 뚫으면 물이 빠져나가 늪은 물론 계곡도 물이 말라 죽은 산이 될 것은 뻔하다.
일부에서는 불교계의 반대운동을 불교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 시민·종교 대책위원회에는 부산지역의 종교계와 시민·사회·환경 등 참가단체만도 50여 개가 넘는다. 지난 1월에는 1000인 서명이 있었는데, 부산과 경남북 소재 19개 대학의 교수님, 24개 언론사의 언론인,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양산시 밀양시 창원시의 시의원, 변호사 의사, 공무원, 실업인, 중고등학교장 등 각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했다. 지난 2월 말에는 부산·경남지역 교사 1천인 선언도 있었다. 불교이기주의라면 이 분들이 참여했겠는가.
더 나아가, 사찰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는데, 무슨 염치로 환경을 외치느냐고 비아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악의를 품은 비난에 가까운 말이어서 대꾸하기조차 거북스럽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찰은 대개 산중에 있는데, 사찰이 있는 산은 숲이 잘 보전되어 있다. 예로부터 사찰에서 산감山監이란 직책을 두어 산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는 18개의 산악형 국립공원이 있는데, 국립공원 면적의 10.7%가 사찰 소유 토지이다. 사찰이 국립공원의 형성과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찰의 대형 건축불사를 보며 사찰이 자연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는 한국전쟁으로 불탄 건물을 복원하는 가운데 나타난 일부 사찰의 예이며, 대다수 사찰은 자연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공사 기간이 연장되고, 신항만과의 연계가 늦어지므로 결국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소중한 자연환경이 파괴되든 말든 무작정 빨리 건설하면 경제에 이롭다는 논리인데, 이 주장에 따르면, 경주를 경유하지 않고 대구-부산을 이어야 하며, 그렇게 하면 금정산과 천성산을 관통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노선을 변경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경주를 비롯한 인근 도시는 지선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있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대구-부산 노선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괴된 자연환경은 원상회복될 수 없으며, 환경재앙으로 수십배의 돈과 노력을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환경파괴를 막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다.
노 대통령의 ‘공사 중지 합동대책위 구성’은 ‘백지화’하겠다는 공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공약했다면, 국민과 불자들을 우롱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를 보름 앞둔 지난해(2002) 12월 4일 조계종총무원을 방문해 불교계 지도자들에게 ‘불교발전 10대 공약’을 전달했다. 공약의 첫 번째로 “전통사찰의 보존과 수행환경 보호를 위해 북한산 관통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부산고속철도 관통 사업을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를 근거로 지금의 노선이 최적의 노선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와 경부고속철도건설공단의 태도이다. 환경 파괴의 문제가 명백한데도 한번 결정했으니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대통령과 정부를 국민은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