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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로 돌아가는 승려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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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3년 04월 254호
옛날 문인들은 서로 아는 사람이 먼길을 떠날 때 시문을 지어 주는 운치가 있었는데, 이러한 형식의 글을 송서送序 또는 송시送詩라고 한다. 조선 전기를 대표할 만한 문신 학자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 선생 역시 어느 날 해인사로 돌아가는 승려에게 이러한 송시를 적어 준 일이 있었다.
사가 선생은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문형文衡(홍문관 대제학)을 맡아 당대의 문한文翰을 주관했던 일대의 거벽巨擘으로서, 시와 문에 모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방대한 양의 시문집을 남겼다. 사가가 송시를 지어 준 승려의 법명은 알 길이 없고 그 제목을 통하여 호가 호당헌浩堂軒인 것만 알 수 있다.
사가가 호당헌에게 지어 준 시는 모두 7언 절구 3수인데, 그 첫째 수에서 가야산 드높고 물 맑은 가운데 있는 해인사가 몇 층의 운연雲烟에 있는가 묻고 스스로 지나간 어느 해에 이 산 아래를 지나면서 산중의 백운을 바라보기만 한 채 올라가지 못했던 아쉬움을 읊고 있다. 이어서 사가는

고운선인거천재孤雲仙人去千載 고운 선인 떠난 지 천 년
삼산묘묘유고대三山渺渺有高臺 삼산 아득한 곳에 높은 대가 있네
안득수휴상인거安得手携上人去 어찌 하면 상인과 손잡고 가서
환득고운일소개喚得孤雲一笑開 고운을 불러 한 번 웃어볼까

라고 읊어, 오늘 호당헌이 그 곳으로 가는 길에 함께 손잡고 올라 천 년 전의 고운 선생과 만나고 싶은 간절한 희망을 피력했다. 이 시의 마지막 수에서는 ‘춘풍이 무한히 영남에 인다(春風無限嶺南興)’고 했는데, 이는 해인사가 영남에 있고 또 이 때가 마침 춘풍의 시기였기에 그렇게 읊었을 것이다.
당시에 고운을 매개로 이루어진 사가와 호당헌의 송별이 또한 운치 있지 않은가. 사가가 호당헌을 보낼 때의 절후가 아마 가야산의 춘풍이 이는 이즈음을 전후로 해서였으리라.□

필자 주 위의 시는 《사가시집》 권13에 <해인사로 돌아가는 호당헌 상인을 보내며(送浩堂軒上人還海印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인용한 시의 상인上人이란 말은 불가에서 안으로는 덕지德智가 있고 밖으로는 뛰어난 행실이 있는 승려를 일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