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는 승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학사대 - 법광
2003년 04월 254호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어야 천당에 갑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저기 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사탄이고, 지옥에 떨어져 구제 받지 못합니다.”
‘나 말인가? 제발 내 옆에는 안 와야 될 텐데. 자꾸 귀찮게 하면 어쩌지.’ 누구나 한 번쯤 시내에 나가면 번화가나, 지하철 안에서 한 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삭발하고 먹물 옷을 입고 나니 지하철 타기가 참으로 고역이다.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와서 떠들어 댈 때는 일반 시민들도 젊은 스님하고 한판 붙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어떤 스님은 하도 귀찮게 하길래 “아유 참, 처사님은 참으로 좋으시겠습니다. 제가 관상을 보니 처사님은 일이 년 내에 하늘나라 천당에 가시겠습니다.” 그랬더니 얼른 자리를 뜨더라나.(누구신지 몰라도 그 스님 순발력 참 부럽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해인사 주변이나, 대구 지방은 워낙 불심이 깊어서인지, 지하철을 타면 가끔 자리를 양보하는 보살님들이 계신다. 내가 훨씬 젊은데…. 정말 또다른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앉자니 주변에서 싸가지 없는 승려라고 욕할 것 같고, 안 앉자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살님이 민망해 하실 것 같고…. 그런 때면 “아 예, 보살님 그런데 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요” (한참 더 가야 되는데.)
보살님들! 혹 전철에서 스님 보시더라도 젊은 스님한테는 자리 양보 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히 앉아 가시길 부탁드려요.
해인사 강원에 오기 전에 나는 서울 화계사라고 하는 절에 있었다. 숭산 행원 큰스님이 조실로 계시고, 외국스님들이 많이 사시는 그런 절이다. ‘현각 스님’ 하면 아실려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써서 꽤 유명세를 탄 스님이다. 그 스님을 비롯해서, 오로지 구도열 하나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출가하여 정진하는 국제선원이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런 절이다. 나는 서울에서 살다 출가했으니, 차비도 얼마 안 들이고 출가를 했다.(참! 복도 많지….)
아무튼 내가 출가해서 행자 생활을 하는데, 저녁만 되면 의경들이 두어 명씩 교대로 경비를 서는 것이다. ‘여기는 보물이 많은 절인가? 가져갈 만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몇 년 전에 초파일 직전에 법당에 불이 나서 불상이 많이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불이 나기 전에도 몇 차례 방화 시도가 있어서 스님과 경찰이 교대로 야간 순찰을 했는데도 막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저지르면 천당행 특급 열차라도 타게 된다고 생각하는지 원….
이 곳 화계사는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신학대학원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제법 큰 교회와 성당도 있다. 화계사에 불이 난 후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찾아와 법당 청소하는 것을 많이 도와주었다 한다. 그래서 화계사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해 주는 현수막을 달아 주었다. 그랬더니, 다음 해 초파일에 신학대학원 학생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해 주는 현수막을 또 달아 주고 그랬단다. 기독교에서는 타종교를 인정하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스님들의 아량이 어우러져, 그렇게 조금씩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나도 수계를 하고, 별좌를 거쳐 원주로 초고속 승진(?)을 하여, 원주 소임을 보고 있을 때 하루는 주지 스님께서 부르시더니, “원주가 저 아래 교회를 좀 다녀야겠어.”
“예??”
‘내가 소임을 잘 못 봐서 교회로 쫓으시려고 그러시나?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 사는 건데, 설마 나도 승려인데 교회로 쫓기야 하실까? 아마 받아 주지도 않을 걸.’ 그 때는 정말 괜히 가슴이 덜컹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지스님과 교회의 목사님 그리고 성당의 신부님들이 의기투합하셔서 불교, 기독교, 천주교 연합으로 ‘난치병 어린이 돕기 바자회’를 하기로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무적인 것을 협의하라고 보내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나는 난데없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드디어 교회 가는 날, 새벽 예불 끝나고 나는 무지 바빴다. 삭발해야지, 풀 먹인 옷 다려야지…. 나도 나름대로 좀 꾸몄다. 처음 가는 교회인데 꾀죄죄하게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나? 그렇게 쫙 빼고 일주문을 나서는데 안면 있는 노보살님을 만났다. “스님, 저녁 예불 시간도 다 되어 가는데 그렇게 광을 내고 어딜 가세요?”
“예 안녕하세요. 보살님, 제가 원래 ‘광’ 아닙니까? 법광!! 저 오늘 교회 가요.”
“???”
‘내가 오늘 좀 무리를 한건가? 아니면 너무 큰 화두를 줬나?’
나는 그렇게 노보살님을 큰 의심에 빠뜨리고 교회로 가볍게 걸어갔다. 교회에 들어설 때 몇몇은 이상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시종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잘 진행되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교회에 가고, 또 교회나 성당에서도 화계사에 오기도 하기를 2개월 가량 지속했다. 물론 두 번째 교회 갈 때는 광 내지도 않았다. 뭐 그렇게 안해도 되겠다 싶었다. 교회를 가봤어야 알지.
큰 길에 세 종교 연합으로 현수막도 달고, 골목골목 포스터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이런 때가 있었나 싶었다. 그 노보살님도 너무나 쉽게 화두를 깨치고 말았다. “스님 이것 때문에 교회에 다니셨지요? 진작에 말씀을 해 주시지 난 또….” ‘난 또…? 아니 왠 난 또?’ 아! 이번에는 보살님한테 내가 화두를 받고 말았네.
마침내 바자회 하는 날, 신학대학원 운동장에 화계사 천막, 교회 천막, 성당 천막 등을 치고, 기부 받은 물품들 하며, 도토리묵, 국수, 빈대떡 등 각종 먹거리 장터와 생활 용품 파는 곳 등을 마련하니 그럴싸한 장터가 생겼다. 섬진강 주변 화개장터는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인데, 이 곳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어우러지는 화계 장터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교회 천막이라고 해서 교인들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교회 천막 안에 불자가 들어가고, 화계사 천막에는 천주교인이 들어오니, 누가 교인이고 불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신도들 간에도 서로 종교간의 벽을 허물어 버리니 모두가 그냥 우리 이웃일 뿐 이었다.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내 눈에는 관세음 보살님이 화현하신 것으로 보였다. 그 날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열심히 봉사한 결과 20여 명의 난치병 어린이들을 도울 수가 있었다.
화계사는 서울 변두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이 다른 지역보다 넉넉한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어느 곳 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 같다. 절과 교회·성당·신학대학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다른 지역보다 세 배는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인정해 주고, 종교인들이 제 역할을 다할 때 우리 사회가 보다 살 맛 나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의 교회 다니는 생활은 끝이 나고 해인강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강원에서 많은 스님들과 생활 하다 보니, 어쩌면 우리 스님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가르침이 좋아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또 그것들이 왜곡된다면 종교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낙천이 불법의 대의를 물었을 때 도림 선사는 ‘불법의 대의는 착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인강원에서 배운다. 실천하기 위해서 하심을 배운다. 그리고 나를 죽이고 대중을 위해 사는 도반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모습도 보고 부처님의 모습도 본다.
이번 동안거 해제 후에 화계사에 들렀는데, 경내 주차장에서 신도님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모 교회에서 경내에까지 들어와 교회에 다니라고 전도를 한 모양이다. 아!! 왜 자꾸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자꾸 이러면 난 또 강원 졸업하고 교회에 다녀야 될 것 같다. 부처님 그래도 되겠지요. 불자님들 세세생생토록 보살도를 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