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불교미술을 공부하면서 8번의 봄을 맞았다. 나의 일본 불교미술의 첫 인상은 우리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이질감 때문에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이는 우리와는 다른 일본 불교 전반에 대한 한국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저항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상은 제작 시기의 미의식과 현재까지 지속되는 신앙의 결정체라는 관점에서 불상들을 바라보면서 내 의식 속의 일본이라는 이질감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미의 다양성으로, 불법에 대한 신앙의 정점으로서의 불상은 시공을 초월한 동질성으로 바뀌었다. 또한 우리의 불상에 대해서도 비교 문화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그리고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눈도 밝아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의 문화재 보존에 대한 열정과 기술적 실천은 우리가 우리 것들을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가를 상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15회에 걸쳐 나라(奈良)와 교토 지역의 불상들 중에서 시대별로 중요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답사하면서 보고 느꼈던 감상과 함께 일본 불교미술을 산책해 보았다. 우리의 삼국과 통일신라 초기의 불상들과 비슷한 작풍들의 불상이 많이 남아 있는 아스카(飛鳥, 6세기 중반~7세기 중반)와 하쿠호(白鳳, 645~710년) 시대의 불상들, 이 시기에 제작된 불상 중에는 실제 삼국에서 전래되었거나 삼국에서 건너왔던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앞으로의 연구 과제들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사진의 백제관음상은 호류지(法隆寺) 절에 안치되어 있는 아스카 시대의 작품으로 보여지는데 조성된 곳과 조성한 사람은 물론 상의 명칭에 대한 것 조차 분명하지 않은 채 단지 백제관음으로 불려지며 현재까지도 호류지 절의 주요한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호류지 절 헌납보물(동경국립박물관 소장)과 같은 많은 금동불은 물론이고 등신等身 이상의 불상들도 적지 않게 남아 있어 역으로 삼국 시대의 불상 연구에 대한 많은 단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통일신라뿐만 아니라 중국 당나라의 영향이 농후한 작풍의 불상들이 상당수 제작되었던 텐표(天平, 710~794년) 시대의 불상들, 밀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밀교적인 색채가 농후한 불상들이 만들어지면서 우리의 불상 도상과는 확연히 다른 작풍의 9세기 초기의 불상들, 외래문화의 일방적인 수용보다는 본격적으로 일본적인 상호의 불상들이 만들어졌던 헤이안(平安) 후기(10세기 말~12세기 후반)의 불상들, 그리고 비록 전반적으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몇몇의 뛰어난 걸작들을 남기고 있는 가마쿠라(鎌倉,12세기 후반~14세기 말) 시대의 불상들, 이러한 일본 불상들은 각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미의식의 다양성에 바탕을 둔 일본 불교미술의 주요한 시대적 양식의 특징들이라 할 수 있다.
불교미술은 종교미술로 모든 종교활동의 총결산이라는 원점에서 출발하여 작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신앙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요구한다. 또한 불교미술의 대상은 불교미술이 남아 있는 모든 지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어야만 한 특정 작품의 양식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불교미술은 인도, 서역, 중국,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볼 때 우리의 독특한 민족적 양식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 있으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불상들을 보러 다니며 갈 때마다 그 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고 느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예로 경주 지역과 남산의 마애불들에서는 늘 햇볕을 따라 변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고려 시대의 마애불을 보러 갔을 때에는 어디에서도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고려의 부처님이 계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기뻐했다.
또한 월드컵 축구가 시작하던 무렵 경주의 민박집에서 어느 프랑스 부부와 같이 묵은 적이 있었다. 이 부부는 가이드도 없이 둘이서 남산을 답사하고 있어 같이 다니자고 제의했더니 아주 기뻐하였다. 다음날 자전거로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을 시작으로 동남산의 마애불들로 다니면서 나름대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신앙과 그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 속에서 이러한 마애불들은 이해될 수 있다고 짧은 영어로 설명하자 그들은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한국 불상이 중국과 일본의 것들과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많은 이들이 부처님 앞에서 공양을 올리며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미술품으로만 보던 불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되고 있음에 경건함마저 함께 할 수 있었노라고 했다.
또한 일본에 있는 동안 두 차례의 중국 답사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동大同의 운강雲岡 석굴과 돈황敦煌 석굴을 중심으로 한 학술여행으로 함께 가신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왜 넓은 시야 속에서 불교미술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실감할 수 있었으며, 중국 석굴들의 그 큰 스케일에서도 종교와 신앙의 위대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돈황에서 바라본 먼 사막의 황혼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왜 그리도 황량한 사막이 좋은지. 왜 그렇게 사막을 지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싶었던지…. 꼭 다시 돈황에 오려는 원을 세우고 돌아왔는데 그 소원이 빨리 이루어져 또 한 번 돈황을 시작으로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많은 석굴들을 볼 수 있었다. 운 좋게 좋은 중국인 친구가 있어 안내를 받기도 하였고 때로는 중국에 살고 있는 선배들의 도움들을 받아 길고도 긴 여행을 겁도 없이 할 수 있었다.
다음 호부터는 중국 석굴들을 중심으로 그 때 답사에서 느꼈던 점들과 함께 중국 불교미술을 간략히 살펴볼까 한다. 또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기에 틈틈이 이 곳의 불교미술에 관한 소식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