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그네는 창림사 터를 가끔 찾는 편입니다. 거기에는 잘 알려진 3층석탑이 하나 있습니다.
오랫동안 허물어져 있다가 20여 년 전에 복원된 것입니다. 상층 기단 면석에 남아 있는 네 개의 8부중 조각이 아름답습니다.
창림사 터에는 또, 비신을 잃은 쌍귀부가 하나 남아 있고 법당 터로 추측되는 곳에는 커다란 주춧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절터의 서쪽, 창림사 터 들머리 논둑에는 조각난 탑의 지붕돌 세 개가 박혀 있습니다.
창림사 터에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유물들도 몇 됩니다. 비로자나불상이 하나 박물관 뜰로 옮겨져 있고,
8부중이 새겨진 석탑의 기단부 면석들 몇 개 그리고 쌍귀부의 머리 하나도 박물관 뜰에 있습니다.
박물관 진열실에는 창림사 터에서 발견된 석탑 상륜부 앙화仰花 하나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꽃잎과 극락조, 그리고 동서남북 사면에 사방불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창림사의 유적들을 비추는 역사의 후광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절터 자체가 신라 초기의 궁실 터였음이 고문헌에 적혀 있습니다.
쌍귀부 위에 얹혀 있던 비석의 비문이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로 새겨져 있어서 중국의 학자가 찬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1824년 3층 석탑이 무너졌을 때 그 사리공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가 나왔는데,
이 원기 사본에 추사 김정희가 글을 붙였던 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무구정탑원기에서 비롯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구정탑원기의 동판 크기가 지금 복원되어 있는 3층석탑의 사리공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구정탑원기는 창림사 터의 다른 탑에 들어 있었던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경주박물관 뜰에 있는 8부중 면석들과, 박물관 진열실에 있는 앙화
그리고 창림사 터 들머리 논둑에 박혀 있는 지붕돌 조각들로 하나의 탑이 꿰맞추어져야 합니다.
나그네는 창림사 터 3층석탑을 바라보면서,
이 탑의 동무탑임이 분명함에도 산지사방 흩어져 제 모습을 찾을 길 없는 또 하나의 석탑을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