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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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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여로 - 정찬주 1990년 10월 104호
선재아내는 새벽이 되자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버스정류장를 두 곳이나 걸어서 지나 남편은 ‘직장인 영어학원’이란
붉은 글씨의 간판이 부착된 5층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난 뒤, 선재아내는 아첨 청소를 시작하였다.
선재아내는 어느 때처럼 클래식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방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냈다. 선재아내는 마른걸레질을 하다말고 생각하였다.
“오후에는 외출을 해야지……”
요즘, 남편은 어딘가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 것 같았다.
걸레질을 하다말고 선재아내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는 피부가 거칠어진 여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녀 때와는 분명 달라보였다.
“하긴, 결혼한 지 이 년이 지났으니. 언제나 처녀 적일 수는 없지.”
선재아내가 비뚤어진 문갑을 바로참고 있는데 전화벨이 올렸다. 여고동창인 영애였다.
“너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 ? 아무때나.”
“그래, 쇼핑보다는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선재아내는 오후 시간으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고시절 영애는 공부보다는 주로 체육이라든가 무용 같은 데 더 관심이 많았었다. 아마 지금도 건강미가 철철 넘쳐 흐르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을거다. 그리고 그때보다도 더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약속했던 백화점 커피숍에 나가보니 화려하게 꾸민 영애가 먼저 나와서 웃고 있었다.
“좀 늦었어. 오래 기다렸니?”
“아니, 별루. 얘, 너 벌써 아줌마 티가 흐른다. 좀 가꾸고 살아라.”
“기집얘두.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선재아내는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사실 영애에 비하면 자신의 피부가 훨씬 더 탄력을 잃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였다.
아, 행복이란 저런 것일까.
부유한 집의 딸이었던 영애―.
역시 경제적으로 풍족한 준재벌 집안의 장남이었던 지금의 남편과 대학시절미팅 때 만나 결혼으로 골인한 영애였던 것이다. 영애는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사들였고 선재아내는 그냥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얘, 너두 뭘 좀 사지.”
영애가 주책없이 채근을 해댔지만, 선재아내는 빠듯한 가계부를 떠올리며 갖고 싶은 제품들을 만지작거리기만 하였다. 선재아내의 형편으로는 남편 바지 한 벌도 고르기가 힘들었다.“니네 남편 안녕하니?”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 앞에 있는 제과점으로 들어서자마자 생각난 듯 영애가 물었다.
“늘 그렇지 뭐.”
“너도 조심해야 된다. 요즘 남자들이란 믿을 게 못돼. 하긴 니네 남편은 성실 그 자체지만 말이야.”
“왜? 준석아빠는 어때서?”
“말도 마라. 전번에도 웬 새파란 계집애를 차에 태우고 다니다가 나한테 들켰지 뭐냐. 뭐, 회사 거래처 아가씨라나? 요즘 처녀들 대단하더라. 나이 같은건 상관없대. 마음에만 들면.”
선재아내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남편은 정말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6개월 전만 해도 오후 7시만 되면 어김없이 귀가하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몇달 전부터는 매일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는데 회식이나 야근을 핑계대곤 하였다.
또 저녁에만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식구들이 아직 단잠을 자고 있는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서곤 하였다. 캐어묻는 선재아내에게 남편은 귀찮다는 듯이 회사에서 테니스를 배우고있다 하지만 그의 성격으로 밤마다 그럴 위인이 못되었다.
“얘, 너 무슨 생각하니?”
“아, 아무 것도…….”
“아, 글쎄 우리 아파트의 어떤 사람은 매일 아침 운동하러 간다며 속이고 바로 앞동에 여자를 두고 두 집을 왕래하다가 동네아줌마한테 들켰대.”
선재아내는 남편이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상사에게 바른 말을 잘하여 적성에 맞지 않는 부서로 밀려나 있는 형편이었다. 혹시 회사를 옮기려고 밤늦게 도서관을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재아내는 기분도 찜찜하고 해서 영애와 제과점에서 바로 헤어졌다. 그리고는 콩나물을 사기 위해 들르려던 시장도 가지 않고 귀가를 하였다.
“처음부터 탈선을 하고 싶은 남자는 없을거야. 그런데 상대편에서 유혹을 하면, 특히 신혼이 지나면서부터가 가장 위험하대.”
선재아내는 웬 젊은 처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이 어른거려 공연히 얼굴을 붉혔다.
10시가 조금 넘자 피곤에 찌든 남편이 힘없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남편은 선재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둥 마는등 하더니 아내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서재인 골방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골방 거처를 하고 있었다.
밤늦도록 잠을 못이룬 선재아내는 새벽이 되자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버스정류장을 두 곳이나 걸어서 지나 남편은 5층 건물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건물 입구에는 ‘직장인 영어학원’이란 붉은 글씨의 간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직장인 영어학원―. 순간, 선재아내는 언젠가 남편 회사의 직원한테서 걸려왔던 전화가 생각났다.
“선재, 있습니까? 요즘 고민이 많으니 잘 좀 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요?”
“회사를 그만 두려고 해서 다른 직장을 구하고 난 다음에 결정하라고 겨우 불잡았으니까요.”
그랬었구나! 남편은 자신의 고민을 아내가 불안해 할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밤 늦도록, 새벽마다 몰래 숨어서 공부를 해왔는지 몰랐다.
선재아내는 남편이 들어간 건물을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공중전화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영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애니? 부탁이 하나 있어. 보약 잘 짓는 집 좀 소개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