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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공기처럼 맑고 신선한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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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정인숙 2003년 04월 254호
해인4월-이달3.jpg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건립’을 위한 1단계 설계경기 응모작 심사가 지난 3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해인사 성보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있었다.
해인사의 이번 불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한 큰절의 보존문제와 스님들의 수행문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신행체험 공간 확보의 필요성 등에 의하여 개산 120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중요한 건축사업에 있어서 참신하고 뛰어난 구상의 설계를 얻고자 공개적인 설계경기를 실시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큰 불사라 하여도 이처럼 공개 경기를 실시한 예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없었다. 불교계, 아니 전 종교계에 있어서 초유의 일로 이제까지의 관습을 뛰어넘는 현명한 판단과 용기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용단을 내릴 수 있었던 해인사의 방장스님·주지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과 전 해인사 대중스님들께 존경과 성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 나라 문화유산의 보존과 창조적인 계승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인 ‘(재)아름지기’의 일원으로서 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지켜 볼 수 있었고, 그 심사회의 과정을 정리하게 되었다.
심사회의는 2003년 3월 1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되었고, 심사위원은 해인사 측의 지관 스님(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과 김종성 서울건축 대표,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건축과 교수(이번 건립사업의 코디네이터) 등 다섯 분이었다.
심사위원의 선정은 건축 설계의 전문적인 검토와 건축 주체의 관점의 반영, 그리고 문화 일반적인 시점에서의 검토를 고려하여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 건립 협의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외 옵서버로 세민 해인사 주지스님, 현종 스님(동 코디네이터), 원철 스님(동 코디네이터)과 정기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동 코디네이터), 그리고 이 불사를 공개 설계경기로 이끌기 위해 많은 협조를 하였던 (재)아름지기의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이번 설계경기의 응모작은 총 37점이었고 심사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심사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건축계의 원로인 김종성 대표를 심사위원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하였다.
그리고나서 이번 설계경기 지침의 기본사항에 대한 이상해 위원의 간단한 설명이 있은 후, 심사 일반에 관한 토의에 들어갔다.
1차 심사에 의한 선정작품 수를 5점으로 결정하였다.
우선 37점 작품을 각자 자유롭게 검토한 후, 상대적으로 미흡한 작품을 투표에 의해 제외시키고 우수후보 작품들을 놓고 3차례 정도 토의를 거쳐서 선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옵서버는 토의 과정 중 질문 등의 발언권은 있으나 투표권은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이후 약 3시간에 걸친 개별적인 검토 후, 오후 5시에 심사위원장이 각 심사위원의 심사 기준을 묻는 것으로부터 회의가 속개되었다.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건무 위원은 ‘땅 위에 노출이 심하지 않고 공간구성이 좋은 점을 중시하겠다’고 하였으며, 김종성 위원장은 ‘가능하면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서로 경합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며, 배치에 있어서 너무 인위적이지 않고 지형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였는가를 중점으로 고려하겠다’고 하였다.
이상해 위원은 ‘대상부지의 해석과 이해를 중시하겠다’고 하여 ‘사람과 건물의 흐름도 중요한 것인데 이것 역시 대지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고 하였다.
민현식 위원은 ‘응모작품들을 배치 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보았는데 대체로 사찰건축이 일주문에서 본당에 이르는 하나의 순서를 갖는다는 사실과 마당의 존재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이것은 반드시 나쁜 면은 아니므로 이 중에서 세련된 작품을 선택하려 하였고, 한편으로 전혀 새로운 구상의 가능성에도 비중을 두었다’고 하였다.
또 민현식 위원은 건물의 배치방법에 따른 응모작들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① 직교축에 의한 배치로 최상부에 예불공간을 두고 축에 따라 기능공간을 분류 배치한 작품이 많았다.
② 땅을 높이에 따라 잘라 집들을 일자로 배치하여, 가장 높은 곳에 설정한 예불공간에 이르게 한 작품이 5~6점 되었다.
③ 마당을 중심으로 크게 너댓 개의 기능별 집단을 배치한 작품이 4~5점이었다.
④ 한쪽으로 복잡한 집들을 몰아놓고 반대편에는 아주 강한 느낌의 건물 내지는 동선의 배치로 균형을 잡은 작품이 8~9점이었다.
⑤ 전혀 새로운 구상의 작품이 3~4점이었다.
지관 위원은 ‘전통적인 것만을 고집할 수는 없고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
지형이 건물이 들어서기에는 좋지 않은 편이며 성보박물관이 장애요소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법당 중심의 건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판단 기준은 첫째 외형으로 볼 때 짜임새가 있어야 하고, 둘째 주변환경과 친화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해인사가 스님들의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각 위원들의 심사기준에 대한 의견을 들은 후, 심사위원장이 설계경기의 지침을 지키지 않은 작품 1점을 제외한 36점의 작품에 대해 각자 10점 가량의 작품을 추천하도록 제의 하였다.
1차 추천 결과 3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5점, 2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7점, 1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16점이며, 추천을 받지 못한 작품은 8점이었다.
36점 중 한 위원의 추천도 받지 못한 8점은 탈락되고, 한 위원의 추천만을 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추천한 위원의 의견(추천철회 포함)을 들은 뒤, 전체 위원들의 의논으로 2차 추천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결정하였는데 그 결과 2차 추천 대상은 23 작품이 되었다.
1차 추천을 통과한 23 작품에 대해 2차 추천을 실시하였는데 이번 역시 각 위원이 10작품씩을 추천하였다.
2차 추천 결과는 다음과 같다.
4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4점, 3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4점, 2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2점, 1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10점이며, 추천을 받지 못한 작품도 3점이었다.
1차 추천을 통과한 작품에 대한 조치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12점의 작품이 남게 되었다.
12점의 작품에 대한 심사는 다음날 속개하기로 하고 폐회하였다.
3월 2일 오전 9시에 속개된 회의는 옵서버들과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름지기는 “①사찰의 기능면의 배려 ②기존의 가람배치와 같은 한국적 요소의 조화로운 반영 ③사찰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선禪적·절제적 요소의 표현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원철 스님은 “꼭 필요한 것만 들어간 단아한 구성, 평수를 줄이는 쪽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하였다.
정기용 교수는 “1단계 경기 결과가 ‘무엇인가 중요한 발언’이 되어, 사찰과 같은 정신적인 건축물의 새로운 이상적인 시대상을 제시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해 위원은 “1단계이므로 선정된 안의 앞으로의 발전 전개 가능성을 참작해야 하며, 땅의 성격을 잘 읽었는가가 중요하고, 한국건축 및 불교사찰의 특성과 상징성의 즉물적 표현으로서의 한 차원 뛰어넘는 건축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민현식 위원은 “이번의 작품들은 아주 기본적 구상이어서 디자인은 없으므로 땅의 해석에 중점을 두었다. 주안점은 ①특수한 지형상황과 건축이 관계를 갖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 전통적인 방법과의 관계 ②설계된 건축공간이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 ③우리는 이 뿌리를 바탕으로 얼마나 창조적 노력을 하였는지를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김종성 위원장은 “21세기의 가람을 만들면서도 우리 고유의 감수성, 감각에 호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배치가 중요하다. 지붕의 형태와 재료 등은 현대화 될 수 있으나 배치는 전통적인 것이 지켜지는 점이 중요하다. 기능이 상호 호환성이 있으면 소요면적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건무 위원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도량은 스님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이며, 새 도량의 포교성이 강조된다면 규모가 줄어야 한다. 기존의 산신각과 명부전 등의 존재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기존 박물관 건물의 공간 일부를 도서관과 자료실 등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연결하고, 힘들게 찾아온 사람들의 휴식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지상 노출부분을 제한하는 쪽이 나을 듯하며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고 하였다.
세민 주지스님은 “배치부분이 중요하며 또 관계 관청의 허가문제와 관련하여 친환경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관 위원은 “답습이 아니면서 전통이 풍기는 창조가 되어 산중山中의 분위기와 조화되어야 하고 사용이 편리한 기능성은 물론이고 주차장은 지상·지하가 균등 분배되어야 한다. 건물의 수가 너무 많은 것, 너무 커서 위압적인 것은 피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외관은 보는 사람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는 한옥 모양새가 갖추어져야 산중과 어울린다고 생각 되나 한옥설계가 한 점도 올라오지 못해 매우 아쉽다”고 하였다.
현종 스님은 “지형에 따른 축에 의한 공간배치를 기본 구상으로 큰 법당 앞에 중정을 두는 형식, 또는 오밀조밀한 건물이 들어서면서 외부공간을 이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심사위원과 옵서버의 견해를 들은 뒤, 김종성 위원장이 어제 선정된 12작품을 대상으로 각 위원 5점씩 추천할 것을 제의하였다.
3차 추천 결과는 다음과 같다.
4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3점이며, 3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1점이며, 2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3점이며, 1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4점이며, 추천을 받지 못한 작품이 1점이었다.
1·2차 추천 때와 같이 추천 받지 못한 작품을 탈락시키고 1위원 추천의 의견 피력 과정을 거쳐 9점의 작품을 선정한 후 이를 대상으로 마지막 추천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4차 추천 결과는 다음과 같다.
5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2점 이며, 3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4점이며, 2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1점이며, 1위원의 추천을 받은 작품이 1점이며, 추천을 받지 못한 작품이 1점이었다.
마지막 추천 후에는 추천을 많이 받은 작품부터 전 심사위원이 함께 검토를 시작하였는데, 검토 과정에서 비슷한 유형의 작품의 선정을 가능한 한 피하여 2차 경기에서 좀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점을 크게 고려한 결과 6점의 작품이 선택되었다.
심사 초기에 5점의 작품을 선정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1점의 탈락을 위한 재검토 과정을 밟으려고 할 때, 설계경기의 주최 측인 해인사 주지스님께서 2차 경기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설계비를 1작품이 늘어나는 만큼 더 부담하겠다고 하여 6점의 작품이 선정된 것으로 심사회의를 마치게 되었다.
접수 번호만을 가지고 전 심사과정을 완전히 마친 뒤, 선정된 6작품의 접수자가 밝혀지는 순간은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은 물론 옵서버들에게도 긴장되고 흥분된 순간이었다.
1단계 설계 경기에서 선정된 건축가는 다음과 같다.
-김영준·장광엽 공동설계:김영준 도시건축·다인건축
-김종규:M.A.R.U
-우경국·김기연·김수희:(주)예공 아트스페이스 건축사사무소·인제대 건축학과
-조성룡·프란체스코 사닌 공동설계:조성룡 도시건축
-최욱·김정숙:건축사사무소 One O One
-최두남·이종길:DCA 건축사사무소
심사가 완전히 끝난 시각은 2일 오후 4시경이었다.
긴 심사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느라 심사를 참관하면서 받은 개인의 느낌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그 때 받았던 잔잔한 그러면서도 너무나 뿌듯했던 감동을 적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여러 면에서 존경스러운 심사위원님들이었고, 가야산의 공기처럼 맑고 신선한 심사였다. 이번 설계경기의 중대한 의의에 공감하여, 헌신적으로, 조금도 사私에 치우치지 않고, 원만한 토론을 거치면서 작품을 선정하였던 이 아름다운 심사회의는 새봄의 첫 연휴를 해인사에 바친 우리의 가슴속에 내내 흐뭇하게 자리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피와 전 국민의 성원으로 해인사의 이번 불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