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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이 바로 본질이다(卽事卽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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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종묵 2003년 04월 254호
참으로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왔다. 도량석 소리에 일어나 대적광전 부처님전에 엎드려 “지심귀명례 …” 예불을 드린다. 뭉클 뜨거운 것이 가슴으로부터 목줄기를 타고 누선을 자극한다. 그래 그냥 이렇게 삼시 세때 예불공양하고 한 목소리로 “지심귀명례”하면 될 것을.
10여 년간 해외 유학의 감회가 정말 한 순간의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해저물녘 법당 앞에 서서 산중의 이곳 저곳을 이리 훑고 저리 바라보아도 도무지 싫증이 나지 않는다. 곳곳에 배어 있는 온갖 추억들 때문일까. 뜰 앞 삼층석탑에서 빙 돌아 궁현당 끝으로 눈길이 가 멈춘다. 옛날 관음전 끝에 시꺼먼 그을음으로 가득한 부엌 속에서 난 25년 전 갱두로 거기 서 있었다. 입산한 지 한 달쯤 됐을까. 내가 몇 년간 꿈꾸어 오던 이상향에 대한 열정이 ‘속았다’라는 느낌으로 가득 찼을 때 난 그만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나를 지탱해 오던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쑥 빠져나가면서 전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의 뒤였다.
며칠 참회를 하고 대바구니에 국거리를 들고 수월문을 내려 지금 청화당채에 있던 방앗간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까만 판에 흰 글씨의 주련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번 눈에 띄었을 텐데 그날 정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왼쪽은 ‘청백가풍淸白家風’, 오른쪽은 ‘즉사즉리卽事卽理’였다. 단아한 수월문의 양기둥을 조촐하게 꾸미고 있었다. 청백가풍은 대충 짐작이 갔고 즉사즉리도 대강 ‘일이 곧 이치이다’ 정도로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 그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떠나 달리 별 다른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은 곧 내 주변을 더 자세히 살피게 하였다. 갱두간의 묵디묵은 그을음을 털어내고 시멘트를 푼 물로써 일주일 동안 벽을 칠하였다. 정갈한 벽으로 정돈되면서 동시에 나의 병도 말끔히 나았다. 그 후론 다시 출가수행에 대한 흔들림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 수월문을 오르내리면서 즉卽자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뜻이 ‘곧 즉’이라는 정도밖에 별로 아는 것이 없던 시절, 앞의 ‘즉卽’과 뒤의 ‘즉卽’자가 어떻게 다른가? 다른 이는 다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 혼자만 모르는 것 같아 묻기도 쑥스러웠다.
일본과 중국에 유학하면서 어록과 한역 불전 언어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근래 10여 년 동안 특히 근대한어 연구는 유행을 이룰 정도이다. 그래서 ‘즉사즉리卽事卽理’ 앞의 즉卽자는 ‘강조’와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뒤의 ‘즉卽’자는 동일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①‘강조’의 의미로 해석하면 ‘일(事, 현상)이야말로 이치(본질)이다’가 되며 ②‘그대로’의 뜻으로 풀면 ‘일 그대로 이치이다’가 된다. 이렇게 ‘즉卽’의 의미가 뚜렷해지자 즉심즉불卽心卽佛,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의심도 풀렸다. 분명치 못했던 이해가 20년이 지난 뒤에사 겨우 풀리게 되었다.
이제 꿈 같은 먼길을 돌아서 돌아서 해인사 강주講主라는 자리로 와보니 수월문은 간데 없고 “주련은 아마 창고에 쳐박혀 있을 걸요”라는 한 스님의 말이 왠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해질녘 담장 밑으로 몇 개 남은 수월문 돌계단만 옛 단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