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그 자체가 생태보존선화, 그 자연과 탈속
선화는 이러한 맑고 고요한 선禪의 마음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세간의 모든 일과 대자연의 산색, 흐르는 물, 초목화조草木花鳥, 시절경관時節景觀 등을 작가의 붓을 통하여 선심화의禪心畵意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진리에 눈뜬 선사에게는 어떤 것도 선의 대상 아닌 것이 없듯이 선화의 달인에게는 어떤 것도 선화의 주제가 아닌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선화라고 하면 달마도나 포대화상도 한산습득 등 인물화나 일원상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주제에 제한은 없다. 성공한 선화가들은 인물화보다 오히려 자연을 주제로 선택한 경우가 많다. 연꽃 한 송이, 감 하나, 나뭇가지에 졸고 있는 새 한 마리, 꽃을 찾는 나비 등 이 세상 어느 것도 선화가의 눈에는 선화의 주제가 아닌 것이 없다.
그 좋은 예로 13세기 남송의 바창무시(法常牧谿)를 들 수 있다. 바창의 안목에는 선화의 대상 아닌 것이 없었다. 나한에서 불보살, 원숭이에서 용과 호랑이, 정물에서 화조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제는 제한이 없다. 그는 촉의 사천에서 태어났지만 한동안 항주의 선종사찰인 원통사에서 보냈다. 항주는 서호를 중심으로 시인묵객이 모이는 예술의 중심지였다. 더욱이 남송은 선종이 성행했던 시기며 당시 항주의 서호 일대에는 원통사, 장경사, 장상사 등의 선종사찰이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원통사는 많은 선화가를 배출시킨 선화의 중심이었다.
바창무시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중국에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작품은 오늘날 일본의 교또·나라지역의 선종사찰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는 일본의 국보와 지정문화재가 된 작품도 많다. 그의 작품 가운데 이 <팔팔조도叭叭鳥圖>는 어느 선화보다 선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굽고 늙은 소나무 둥치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를 그린 것이다. 우선 화면의 삼분의 이 이상을 여백으로 남겨 놓음으로 작품 전체에 감도는 정적靜寂이라든지 유현幽玄한 감을 신비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화면의 좌측 밑으로부터 삼분의 일의 높이에서 우측 하단을 향하여 비스듬히 굽은 소나무 둥치에 한줄기 넝쿨이 휘감은 것으로 보아 소나무의 오랜 연륜과 탈속脫俗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소나무는 몇 번의 붓놀림으로 거칠게 표현되어 있지만 연륜 깊은 소나무의 투박하고 순박한 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화면의 상단 솔잎과 솔방울은 소나무를 표현하는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는 세밀한 부분이다.
그 소나무에 세속을 버리고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한 한 마리의 새는 단 몇 번의 붓놀림으로 처리되었지만 그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선禪의 이미지를 나타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마치 훌륭한 노선사가 화두 삼매에 빠진 듯한 탈속의 기분이 흘러넘치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 더 이상의 붓질도 더 이하의 생략도 필요 없는 완전무결한 선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린다면 과연 이쯤에서 붓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