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이다. 하늘의 휘영청 둥근 달빛은 천千 개의 강에 제 몸을 적시고, 그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달을 보며 중생은 각각의 달을 마음에 담는다. 중생이 이처럼 제각각의 달그림자를 드리울지나 그 천 개의 강에 담겼던 달이 저 하늘의 달 하나인 것을 알아 하늘의 달을 취하는 것이 바로 여래의 눈이다.
하늘은 창공의 새를 빌어 봄을 노래하고, 뇌성雷聲을 빌어 여름을 알리며, 풀벌레들로 가을을 노래하고, 북쪽 바람으로 겨울을 노래한다. 하늘은 이처럼 세상만물을 빌어 사계절을 노래하지만 하늘은 원래 스스로 소리가 없으므로 계절에 따라 그 소리를 바꾸는 일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바 진리도 이러한 하늘의 모습이며, 여래가 설한 진리의 말씀도 이와 같아 사십구년이 넘도록 중생들에게 보인 바는 한결같으나 그것이 중생을 통해 제각기 마음에 담아질 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 바(一切唯心造)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해되는 바 크다.
분황사芬皇寺는 선덕왕 3년(634) 정월에 낙성되었다. 신라에 최초로 여왕이 즉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창건한 사찰이니 이는 황룡사 구층탑 건설보다 이른 시기의 불사였으며 여왕의 앞날을 위한 첫 번째 단추였을 것이다. 그러한 분황사 금당 앞에 세워진 분황사 모전탑은 당시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벽돌탑(塼塔)의 원형을 빌어 만든 것이다. 여래의 진리를 앞세우고 든든한 석탑을 빌어 거친 앞날을 도모하고자 하는 선덕여왕의 원이 담겨 있으리라. 석탑 사방의 문을 지키는 인왕상의 모습은 아직도 꿋꿋하지만, 원래는 9층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높이가 지금은 세월의 손길로 인해 3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분황사를 통해 원효元曉 스님께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편찬하여 오늘에 전해지는 것을 보면, 여왕의 원이 우리 불교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분황사는 천년 전 신라만을 위한 절은 분명코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세월이 가면서 탑은 그 층수를 감하였을지나, 아직도 그 모습이 완연하고, 주추가 든든함은 삼세에 몇 겁을 더해도 변하지 않는 법法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여래의 마음을 돌아본다면 중생이 강물에 비친 달을 두고 하늘의 달이라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나, 선덕여왕은 분황사를 창건하고 곧 황룡사에 구층탑을 조성하였으니 이 또한 강물에 비친 달빛을 건지려는 여왕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