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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의 천체千體천수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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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3년 03월 253호
해인3월-성보 일본의 3월은 실질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다. 학교도 회사도 3월에 학기와 분기를 마무리하고 4월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대학입시 등으로 학교는 왠지 어수선하고 알고 지내는 학생들도 저마다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교토의 삼월은 꽃샘추위만 심통을 부린다. 잠깐씩 햇볕이 나면 교토역 상점가에 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다가 천천히 걸어서 교토 국립박물관과 그 주변까지 가본다. 나의 교토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교토 국립박물관이다. 일 년에 몇 번씩 열리는 특별전은 물론이고 상설전의 한적한 분위기가 좋아 가끔씩 혼자 머물다 오기도 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는 박물관 식구들과 함께 차 한 잔 하기도 하고 일 때문에 드나들기도 하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바로 그 건너편에는 삼십삼간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곳은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반드시 안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천 불의 금빛 부처님을 원래의 예배 장소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흔치 않기에 교토의 마지막 코스로 이 곳을 권한다.
삼십삼간당은 밖에서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으나 들어가면 법당의 길이만 해도 자그마치 120미터에 달한다. 본래 명칭은 렌게오인(蓮華王院) 절이나 법당의 기둥이 33개 있기에 흔히 삼십삼간당으로 불리고 있다. 1164년에 고시라가와(後白河) 법황이 1001체의 관음상을 안치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3세기 중엽에 재건된 것이다. 정말 기둥이 33개가 있는지는 세어 본 적은 없으나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이 건물이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난다. 법당 중앙에는 천수관음좌상의 중존中尊이 안치되어 있고, 그 좌우로 500체씩의 총 1000체의 천수관음입상이 빽빽이 차 있다. 맨 앞에는 풍신風神과 뇌신雷神상, 28부중部衆상이 서 있다. 이 천수관음상들도 법당과 함께 13세기 중엽에 대부분 다시 조성된 것들로 당시 교토와 나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불사佛師들의 작품이다.
가마쿠라 시대는 일반적으로 12세기 후반부터 14세기말까지로 무가의 막부가 현재의 도쿄(東京) 근처의 가마쿠라에 있었던 시대를 말한다. 즉 교토의 궁정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정권의 중심이 무신 세력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는데, 불교계에서도 정토종, 정토진종淨土眞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일련종日蓮宗 등의 새로운 종파가 성립되었다.
한편 불교 조각에도 새로운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마쿠라 시대의 불상은 눈 안에 수정 구슬을 넣는 새로운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는 인간의 눈에 보다 가깝게 표현하려는 사실주의적 기법과 함께 헤이안(平安) 후기의 부드러운 느낌의 불상 양식들보다는 오히려 헤이안 초기의 힘차고 실재감 넘치는 불상들의 이미지에 가까운 상들이 제작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불상에 불사들의 이름이 남겨져 제작자가 누구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어 이 시대의 양식적 특징과 더불어 불상을 만든 불사들의 개인적 양식도 비교해 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의 불교 조각계는 교토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공방과 나라(奈良)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공방이 크게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180년에 나라의 대부분의 주요한 사원과 불상들이 당시의 권력자에 의해 불타버리게 된다. 이후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절과 고후쿠지(興福寺) 절의 불상 복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여기에 나라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운케이(運慶) 스님과 가이케이(快慶) 스님 등과 같은 불사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특히 운케이 스님이 제작한 불상들은 사실적이며 힘과 양감의 표현이 뛰어나 당시의 조각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신흥 무사들의 선호에도 맞아 동북 지역의 사원 등에도 많은 상을 제작하였다. 시즈오카(靜岡) 간세쥬인(願成就院) 절의 아미타여래좌상과 와카야마산(和歌山) 곤고호지(金剛峰寺) 절의 8대 동자상 등은 그의 대표 작품들이다. 이후 운케이 스님의 장자인 단케이(湛慶) 스님이 그 공방을 이끌며 나라와 교토 지역의 많은 불사에 참여하였다.
단케이 스님의 필생의 대사업은 바로 렌게오인 절의 불타버린 천수관음상들을 다시 조성하는 것이었다. 스님은 수리 총책임자가 되어 교토와 나라에서 활동하던 공방의 불사들을 이끌고 천 구의 천수관음상의 조성에 착수하였다. 새로 조성되었던 800 이상의 관음상에 대한 많은 조성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의 조각 상황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라 공방의 작품들은 대체로 옷 주름 처리에 움직임과 변화를 보이고 얼굴 표현도 팽팽하여 힘찬 느낌이 나고 교토 공방의 작품들은 부드러운 헤이안 후기의 작풍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말한다. 단케이 스님은 중존의 천수관음좌상과 10여 구의 천수관음입상을 손수 조성하였다고 한다.
천 구나 되는 천수관음상은 한 단에 200구씩 전부 다섯 단으로 나뉘어 안치되어 있는데 그 수도 많거니와 천수관음상의 그 수많은 팔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단상 위는 장관의 세계이다. 끝에서 끝까지 한 번 오고 간 다음 다시 한 번 천천히 상들의 얼굴들을 살피면서 간다. 똑같은 형식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의 불상들의 얼굴은 조금씩 다르다. 불상의 얼굴이야말로 작가의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마도 이 많은 불상 속에는 특히 자기에게 친근히 다가오는 얼굴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 만든 이의 느낌마저도 느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몇 구씩 박물관으로 출장 나와 전시된 것을 볼 때면 다른 불상들에 비하여 폭이 좁아 왜소한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원래의 자리인 이 곳 삼십삼간당에 천 불의 부처님이 되어 함께 안치되어 있는 걸 보니 그 장엄함이 제 빛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 천 불의 부처님과 백만 개의 팔들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그렇게 장엄한데 그 원력은 언제나 이루어질지…. 세상은 갈수록 시끄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