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을 든 남자. 그런 카피의 광고가 있습니다.
그 광고에 쓰이는, ‘꽃을 든 남자男子’라는 로고가 산뜻했습니다.
신문에서든, TV에서든, 광고라면 질색인 나그네로서는 뜻밖이었습니다.
아마도 나그네에게, 경주 남산에서도 깊숙한 봉화골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칠불암의 위쪽,
깎은 벼랑 끝 바위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상이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보살상 앞에는 사람들이 엎드려 절 올릴 만한 좁은 터가 있고 바로 절벽입니다.
보살상이 낮게 새겨져 있어 그 앞에 서면 상호를 마주 대하게 됩니다.
이 상호를 작고한 향토사학자 윤경렬 선생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살결이 풍성한 둥근 얼굴에는 하현달 모양으로 패어진 고운 눈썹에 연결되어
기름한 코가 알맞은 맵시로 솟아 있다.
넓은 눈시울 아래 긴 눈이 가늘게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부드럽게 언덕을 이룬 두 뺨과 큰 턱이 어울려
둥글고 풍성한 덕성스러운 얼굴을 형성하고 있다.”
이 보살상에는 또, 장엄이 화려합니다.
머리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있는 보관을 쓰고, 귀에는 귀걸이, 목에는 구슬 목걸이,
손목에는 팔찌…… 해서 장신구들로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보살상은 특이하게도, 오른 다리는 내리고 왼 다리를 올려 짓고 있는 유희좌遊戱座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수인手印 또한 특이하여 왼손은 가슴에 들어올리고 오른손에 한 송이 꽃을 들고 있습니다.
꽃! 어느날 무심코 보살상 앞에 선 나그네에게 그 꽃이 눈에 들었습니다.
화려한 장엄에 이 꽃은 또 무슨 뜻이겠습니까?
꽃 한 송이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그런 도저한 깨달음의 경지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나그네는 이 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망연히 눈만 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나그네의 눈에 자신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마음에는 안개처럼 어둠이 깔려 있었고 그 어둠은 짙었습니다. 벼랑 끝, 꽃을 든 보살상 앞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