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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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엄변상도 - 김양수
2003년 03월 253호

올해 89세 되신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요즘 급격히 기력이 쇠약해져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다.
이른 새벽 여명이 오기도 전에 들녘에 나가
저녁 어두컴컴해서야 집에 돌아오셨던 할머니.
눈뜨면 일터요. 자식 걱정뿐이어서
마을에서는 강단지기로 소문이 나셨던 할머니.
이제는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드는지 많은 시간 누워 지내신다.
때로는 창문 밖을 응시하며 상념에 잠겨
지나온 세월의 그리움을 찾고 계신 듯하다.
어쩌면 그 추억으로 살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머니는 자연의 사계 중 겨울을 맞고 계시는 게 아닐까.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하며 주위를 정리하시는 것 같다.
이제 할머니의 모습에서 남은 거라곤
해맑은 미소와 따뜻한 눈빛뿐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던가.
있다면 부모님이 자식 사랑하는 마음 아닐까.
“세상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인간이 되려고 애쓸 것 없다.
자기 자리에 충실하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살아라.
자신에게는 가을 바람처럼 매섭고 엄격하게,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화창하고 따스하게 대하라.”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언제쯤이나 살게 될까.
창 밖에 봄이 와 꽃이 피어
새는 노래하고 벌들은 꿀을 따는데
할머니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할머니에게도 봄 같은 청춘이 있었으련만…….
귀하고 좋은 것 다 주셨던 할머니께 난 무엇을 드려야 하나.
햇살 좋은 날 할머니를 등에 업고
꽃들이 축제하는 꽃길을 산보나 할까 한다.
봄이로구나,
얼씨구 봄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