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도록 하는 것이 번뇌를 구조적으로 없애는 방법이긴 한데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불 꺼진 향로의 재’처럼 푹 쉬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조단경》에서는 “무념위종無念爲宗”이라고 했고 《임제록》에서는 “무사진인無事眞人”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늘 괴로워하면서도 일을 꾸며대니 육조 스님이나 임제 선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게지.
〈월간해인〉의 디자인 틀을 바꾸어보겠다고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은 〈인터넷 월간해인〉 전산화 작업이 끝날 무렵인 지난 겨울이다. 내친 김에 그동안의 숙원사업을 모두 마쳐야겠다는 욕심까지도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이미 편집회의를 할 때마다 “지금쯤은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울러 현재의 판형은 15년 전의 ‘성형수술’을 통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미인’인지라 여기저기에서 그 성형술을 본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하게 생긴 미인들이 사방에서 속출했다. 그런 와중에서 ‘원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또 권위 아닌 권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이 역시 15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또 하나의 ‘박제’가 되어 ‘무상無常’이라는 생명성을 부정해버리는 또 하나의 고착된 정형으로 굳어 버렸다는 애정 섞인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던 터였다.
한 생각 일으키니 갖가지 장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상유지만 해도 본전인데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일어났다. 혹여나 성형수술이 잘못되어 더 망쳐 놓는 건 아닌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의사는 잘 되었다고 하는데 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잡지는 절에서 나오는 출판물이라는 당연한 사실이다. 이 틀은 어찌 보면 태생적 한계성을 가진다. 사찰 출판물이라고 하여 ‘자기 절 홍보·자랑’ 혹은 ‘직설적인 포교’에만 치우치다가 보면 ‘집안잔치’ 혹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기 쉽상이다. 이를 뒤집으면 ‘저변화’ ‘대중화’를 방해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말이다. 만약 어느 대기업에서 자기회사 홍보지를 발간하면서 ‘자사 제품’과 ‘자기 회사’ 자랑만 하고 있다면 그 회사 경영진 그리고 직원 가족은 좋아할지 몰라도 그 나머지는 거들떠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 같다.
다행히도 〈월간해인〉은 일찍이 이런 한계를 간파하고 ‘종교문화지’를 표방하게 되었고, 이것이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좋은 방편이 되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고도의 포교전략을 편 것이다. 이를 광고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이미지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즈음은 어지간한 회사는 모두 ‘이미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아이디어 빈곤일 것이다. 하늘 아래 새것이라고는 없다고 했다. 디자인의 ‘변형’과 ‘변조’가 일반대중들에게 얼마나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래서 이 부분은 기대를 팍 낮추기로 하였다. 우선 나부터.
표지 디자인이 관건이다. 모델 몇 개가 도착했다. 디자이너가 고심하고 고심했다는 전언傳言과 함께. 편집위원들이 모였다. 결국 ‘보수’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가장 안정된 그리고 무리없이 튀지 않는 안案이 채택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 디자인과 별 차이가 없는 늘 눈에 익숙한 것에 대한 익숙함은 어찌 보면 중생안목의 한계이기도 하다. 며칠 후에 또 다른 표지 디자인이 왔다. 사진이 기존 가로형에서 세로형으로 바뀐 것이다. 이건 뭔가 좀 달라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사진 고르기가 더 까다로워질 것 같다. 세로사진이 표지 전면에 깔리고 제호題號가 위쪽 자리에 덧씌워지니 말이다. 만약 사진작품의 결정적 포인트가 윗부분에 있는데, 여기가 제호로 덮여지면 ‘사진작가’로부터의 항의가 있을 것이 뻔할 텐데. 어쨌거나 모든 것은 모험일 수밖에 없다.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 때 또 바꾸지 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경제’가 받쳐 주지 않으면 그건 환상이나 상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는 금강경의 구절을 빌릴 필요도 없이. 올해도 신년광고비 겸 후원금을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내 주신 ‘광고주 사찰’들의 주지스님과 보시를 해 주신 여러 인연있는 재가대중의 공덕으로 이 디자인 불사를 무사히 큰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15년 전에 편집 디자인의 안목을 당시 편집장으로부터 인정받은 ‘끄레’에서 또 다시 새 디자인을 맡아 주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묵은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또 그 성형외과에 부탁하니 이번에는 ‘미인’보다는 ‘개성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변해가기 때문이다. 독자의 취향도, 세상의 미美의 관점도, 북 디자인의 경향도…….
이걸 일러서 고정된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무상無常’의 현대적 실천이 아니겠는가.
무상이 바로 유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