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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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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통신 - 정문태 1990년 10월 104호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살다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가장 뜻깊은 살이로 여겨 온 발리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말하여 온다.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결코 발리를 떠나는 일이 없지. 발리가 세계의 한복판이거든. 필요하다면 여러분이 언제나 발리로 오시오.”
적도 위 아래 널브러져 있는 인도네시아의 숱한 섬(13,667개)들이 모두 회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가운데, 오직 한 곳 힌두를 받들며 하늘이 준 자연의 녁넉함 속에서 ‘자연과 닮음’을 갸륵하게 좇아 온 발리.
이렇듯 발리 사람들이 지닌 자연에 대한 우러름은 옛 인도 사람들이 전해 준 원시힌두의 뜨거운 바람과 어우러져 곳곳에 신명나는 문화로, 사람다운 참한 삶으로 쏟아 나온다. 이를테면 집집마다 목욕탕을 두고도(물론 서양 사람들이 끼친 문화) 웬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겨 한낮에 큰 길가 우물에서 늙은이·젊은이·남·녀가 훌러덩 벗은 채로 함께 몸을 씻는다거나,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짐승이나 귀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믿어 모든 일손을 놓고 잠자리에 든다든지 하는 일상 모습에서부터 짙은 향기 뿜어내는 춤, 노래, 그림에 이르기까지 발리 사람들의 삶을 떠받치는 바탕이 때묻지 않은 자연관과 힌두교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한 나위 없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쪽 끝에 떠있는 병아리를 닮은 5,600㎢ 땅덩어리 발리섬, 그 한 가운데는 옛날부터 섬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겨 온 ‘아궁 화산’(3,142m)이 쭈뼛 솟아있고,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메마른 북쪽 땅과는 달리 여기저기 물줄기가 뻗어 내려 기름진 들판을 이룬 남쪽에는 어림잡아 200만명 웃도는 사람들이 힌두에서 비롯된 ‘벼의 신’, ‘물의 신’을 섬기며 물길을 가장자리에 두고 수리공동체(水利共同 )를 맺어 매우 바람직한 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섬사람들의 슬기와 어디든 3모작을 지을 수 있는 기름진 땅이 널려있고, 더욱이 빼어난 자연풍경에다 남달리 일구어 놓은 문화에 이끌려 1년에 100만명 넘는 관광객들이 드나들며 풀어헤친 돈보따리가 바로 넉넉한 발리 사람들의 뒷심임을 엿볼 수 있다.

일찍이 서양 사람들은 인도네시아를 일컬어 ‘적도에 걸려 있는 에메랄드 목걸이’라 추켜세웠던 때가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발리는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임을 역사를 거슬러 가다 눈여겨 보게 된다.
서쪽 인도양과 동쪽 태평양 사이에 자리한 인도네시아는 위로 아시아대륙과 아래 오스트레일리아를 이어주는 건널목으로 옛부터 인도·아라비아·중국·아시아·유럽사람들이 뒤죽박죽 섞여 민족·문화 이동이 매우 두드러졌던 곳이다.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인종과 혼혈족들이 곳곳에 나누어져 나름대로 별난 문화를 일구며 살고 있다.
일찍부터 인도네시아에 몰려 온 인도 사람들은 8∼13C 사이에 거의 모든 섬들을 손아귀에 넣으며 왕국을 세웠으나 그 뒤 남지나해로 뻗어나온 아랍 사람들에게 밀려나 버리고, 13∼15C 무렵이 되면 발리를 제외한 모든 섬들이 아랍 사람들의 회교에 물들어 버린다.
이 무렵 발리는 자바섬 동쪽에 터를 잡은 마자파히트왕국 땅이었으나, 이 왕국이 아랍 회교도들에게 짓밟혀 버리자 힌두교도들은 자바섬을 떠나 발리로 몸을 피해 목숨 바쳐 힌두를 지켜낸 까닭에,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들이 회교화된 것과는 달리 오직 발리만은 오늘날까지 힌두에 바탕한 문화를 가꾸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 회교도들의 해상세력을 깨부순 포루투갈·스페인 사람들에게 한동안 짓밟힌 인도네시아는, 17C초 영국과 세찬 싸움 끝에 이긴 네델란드에 또 다시 먹혀 버렸다.
그러나 이 때도 오직 발리만은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네델란드 총칼을 꺾어 버린 빛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 않고 도도히 맞섰던 발리 사람들 앞에서 네델란드 침략자들은 오히려 겁에 질려 되돌아 섰고, 이러한 발리 사람들의 힘줄은 물론 힌두의 뜨거운 바람과 남다른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네델란드의 부림을 받아 오던 인도네시아는 1차 세계대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서서히 민족해방과 독립의 기운이 싹터 나와, 회교를 가장자리에 놓은 종교·종족 빛깔을 띤 순화운동이 나타나더니 얼마 뒤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깨이고부터는 공산주의 운동가들에 의해 무장독립투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싸움 속에서 1942년부터는 인도네시아 모든 섬들이 다시 일본군에게 점령 당했다가 2차대전이 끝난 뒤 1945년 8월 17일 겨우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네델란드의 새로운 침략으로 갖은 어려움과 힘든 싸움을 거친 뒤 1956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단일국가로 독립을 하게 된다. 이렇듯 인도네시아는 거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다른 나라·민족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온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독립 뒤 ‘자주외교 ·비동맹외교 ·반제 반식민주의외교’를 앞세우고 철저하게 스스로를 지키는 길을 걷고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는, 어디도 부럽지 않는 녁넉한 자원과 인력을 바탕 삼아 새로운 정치체제 아래 경제개발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350년 동안 네델란드를 비롯한 제국주의 무리들에 빼앗겨 온 터라 민족사회 안에 민족자본이 이루어질 틈이 없었고,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간산업부문은 물론 생산수단과 소비물자마저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덧붙여, 1만 3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조건과 곳곳이 서로 다른 종족·언어 ·습관을 갖고 있어 사회의 통합과 결속이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고, 따라서 언어 ·종족을 묶을 수 있는 교통이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발리의 새해(NYEPI, 3월 27일)와 힌두의 가장 큰 잔치(GALLUNGAN, 3월 28일)가 이어진 날, 하나 뿔인 길목 덴파사 공항에 내려 간신히 트럭을 잡아 타고 아름다운 바다와 화산을 끼고 돌아 내륙에 자리한 ‘우부드(UBUD )’를 찾아 간다. 놀랍게도, 온통 바다로 둘러 싸인 발리섬에서 고기잡이를 전혀 볼 수 없고 다만 원시적인 수차를 이용한 염전만이 길목마다 널려 있다.
이것 또한, 바다에는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고 믿어 본디부터 바다로 나가기를 꺼려온 발리 사람들의 별난 습관임을 운전기사의 얘기를 통해 알게 된다.
불을 쓰지 않고, 오락을 하거나 길을 떠나지 않는다는 새해의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매우 차분한 기쁨에 감싸여 있는 우부드는, 약 2㎞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2백여 개가 넘는 화랑들이 구름처럼 모여 앉은 작은 마을이다.
여기서 빼 놓을 수 없는 기쁨은, 예술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가려낼 수 있는 한국사람의 뛰어난 눈길이 이 깊은 섬골에서도 마음껏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니 최’라는 한국 사람이 꾸려가는 ‘대나무 화랑(Bamboo Gallery)’은 이 곳 모든 그림장이들이 우러러 보는 곳으로,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수집가들로 붐비면서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올라 있다.
우부드에 온 지 기껏 4년 만에 “대나무 화랑에 그림이 걸려지면 가장 뛰어난 그림장이로 인정 받게된다”는 공식을 만들어 낸 최선생의 지혜와 숨은 노력 덕분에 우부드 어디에서나 한국 사람은 따뜻한 인사를 받게 된다.
무려 4,600개가 넘은 힌두사원들이 들어차 있는 발리의 이곳 저곳을 들여다 보면 마치 수천 해 묵은 예술품 창고를 찾아 내어 조심스레 들어설 때나 느낄 수 있을 듯한 진한 호기심과 흥분에 빠져든다.
숱하게 늘어진 화랑들을 들여다 보면, 발리 그림은 역시 밝고 강렬한 남쪽 나라 특유의 자연관과 힌두에서 우러나온 정서로 뿌리를 이루고 거의 사실적인 표현양식들로 줄기를 만들어서, 드물게 중국화의 손길을 입은 것을 빼고 나면 인도 미술의 한 갈래로 여겨지는 듯한 그림들이 유화로 꽃을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윽고, 어둠이 내리면 펼쳐지는 춤판은 온 동네사람들의 잔치이자, 발리혼의 배설을 통해 거룩한 예술로 드높아져 밤이 이슥토록 이어진다.
신화나 옛이야기를 바탕한 ‘집단제의식’을 사람의 본디 소리와 몸짓으로 나타내는‘케착(KECAK);‘레공(REGONG )’을 비롯한 거의 모든 춤들은 그 이야기의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표현기법과 태어나면서부터 닦여온 연기자들의 놀랄만한 소리, 몸짓으로, 발리 사람들의 살아 꿈틀이는 혼과 정서를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고 때때로 가슴 벅찬 예술체험의 경지로 몰아 간다.

그러나, 빼어난 문화나 참한 삶만이 오늘의 발리가 아님을 드문드문 느끼면서 안타까움에 사로 잡힌다.
아직은 나름의 고유한 문화와 삶터를 간직하고 있긴 하나 이미 젊은이들의 입거리가 숱하게 몰아 닥친 서양인의 그것과 닮아 가고 있고, 더구나 좋은 터에 세워진 거의 모든 집들은 서양인들의 별장이나 호텔로 꼴이 바뀌어 버린 심상치 않은 현실에서 불길한 미래를 직감하게 된다.
이미 이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발리의 밤하늘은 밝게 빛나고 있고, 죽음을 두려워 않는 까닭에 네델란드가 점령을 포기했던 빛나던 역사가 있건만, 오늘의 발리는 외래문화에 버팀목 없이 드러나 있는 오늘발리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벅차오르는 예술의 감흥과 자연의 맑은 기운을 들이키면서도 아스라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것은, 거세게 몰려오는 다른 나라의 힘을 앞세운 문화에 야금야금 삼켜지고 있는 발리의 모습이 애닯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모습이 결코 발리만이 아니라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남다른 문화를 지켜가고 나름의 고귀한 삶터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참 마음으로 바라는 까닭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넋두리일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