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전공하다 보니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새로 집단장을 하는데 무슨 색으로 도배를 하면 좋을지 물어온다. 물론 딱 부러지는 답이야 있을 리 만무하다. 디자인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감옥에서조차 벽에 좌우명을 새기는 행동이 그렇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사찰의 벽에 난무하는 사람이름 따위의 낙서 또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원초적 본능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수만 년 전, 석기시대를 살았던 조상들 또한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바위에 갖가지 형상을 새기기도 했다.
우리가 말하는 본격적인 디자인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출발했다. 기계화로 인한 대량생산에 따라 규격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집 사람이 멀쩡한 장롱을 버린다고 내다 놓았다. 아직 쓸만한데 왜 버리느냐고 물으니 구닥다리 디자인이라 유행하는 최신식 가구로 바꿀 요량이란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이 있다. 현대의 개념으로 보자면 디자인은 색色이다. 따라서 색은 공空한 존재인 것이다. 공이란 정해진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디자인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공한 그 무엇이다.
디자인의 생명은 변화에 있다. 우리가 흔히 ‘한물간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은 유행이 지났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디자인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살아 있는 생물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쩌면 디자인은 변화를 전제로 한 인간행동이랄 수도 있다. 그것이 기업의 상술에 기인하는 것이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현대인의 속물근성 때문이든 디자인이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아서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기업이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 내년에 유행할 디자인을 미리 안다고 해서 장사꾼이 아닌 이상 별반 덕이 될 것도 없다. 따지고 보면 선량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디자인이 바뀌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쓸모만 충분하면 그만이니까.
이제는 우리 디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현대화 과정에서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조급하게 새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핸드폰도 석달이 멀다하고 새 모델로 바꾼다. 자동차 또한 미국인이 평균 15년 이상을 사용하는 데 비해 우리는 7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니 좋게 말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디자인 감각이 좋다. 특히 신세대가 추구하는 맹목적 디자인 추종은 상식을 뛰어넘을 때가 많다. 인구에 비해 디자이너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요, 대부분의 대학에는 디자인학과가 있으니, 이 정도면 디자인 왕국이라 할 만하다. 이런 현상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여러모로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적 감수성이 우수하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찍이 세계문명의 최고봉에 올라 있던 고려대장경이나 청자와 백자, 신라의 불교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시대에 가장 앞서간다는 인터넷 산업 또한 우리의 감수성과 새로운 것을 성취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비록 디자인이 서양에서 건너온 문화라 할지라도 이제는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 고유의 디자인을 개발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듯이 경제측면에서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바르게 함양하기 위해서라도 전통문화를 현대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디자인은 우리 생활과 정서에 직접 관여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살아가는 공간의 대부분이 서양문물이고, 서양식 표현이 아닌가! 탁월한 불교정신이나 고매한 선비정신을 현대디자인으로 구현할 방법은 없는가? 좋은 디자인은 비단 디자이너의 책임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숙제가 될 터인즉, 무엇보다도 서양의 문물과 정신에 찌든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일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디자인은 생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물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