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슬그머니 물러나는 새벽녘 희붐한 빛 속에서 바야흐로 서성거리는 봄을 느낀다. <월간해인>에서 표현해 보고 싶던 잿빛이 주는 느낌과 겹친다. 왜 그토록 잿빛 느낌에 매달렸는지. 스님네들의 옷 빛깔 때문이었을까? 불교 고유의 빛깔을 잃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숨쉴 수 있는 색, 그 느낌만 제대로 표현하면 <해인>의 성격이 잘 드러날 듯했다.포교의 중요성이 높아진 만큼 불교의 사회적인 위상과 역할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해인>은 포교지로서, 또 조계종을 대표하는 잡지로서 여전히 그 몫을 다하고 있다. 다만, 이마적에 들어 <해인>의 디자인을 조금 바꾸어 보자는 말이 들려왔다. 십 몇 년을 처음에 가까운 꼴을 유지하며 시간을 오래 견디는,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자리를 지켜 왔는데,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잘 지은 옛 성곽처럼 단단한 <해인>의 틀을 허물고 현대적인 양식으로 새로 성을 쌓았으면 한다는 바램이었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말미암아 책의 크기와 지질, 쪽수는 그대로 두고 오로지 바뀐 디자인만으로 새롭게 단장을 해야 했다. 이를테면, 변화를 위한 변화를 해야 했다.
사람들이 바라는 <해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전통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좀더 현대적이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할 터. 불교가 이 사회의 한 중심으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살아 숨쉬며 꿈틀대는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잡지. 이런 쪽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해인>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불교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할 터.
“지금의 품격은 유지하되 현대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킨다. 잿빛의 왠지 가라앉는 듯한 느낌보다는 좀더 밝고 산뜻한 빛깔로 가면 좋겠다.”
말하자면, 예의를 갖추되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지만 큰 변화를 바라는 셈이었다.
몇 날 며칠이 그냥 흘렀다. 마음 한 구석에는 ‘바뀌어야 한다’는 명제가 무지근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통적인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나면 좋겠다.” 말은 쉬워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랐다. ‘새로운 <해인>은 어떤 빛깔이어야 할까…….’ 숱한 빛깔이 어지러이 오갔다. 썩고 거듭나야 좋은 꽃이 피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새벽에 소리 없이 봄비가 내렸다. 새벽녘의 맑은 잿빛을 다시 보았다.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잿빛 봄 내음을 맡았다. 잿빛, 그 회색은 역시 아름다웠다. 회색, 그 잿빛을 깊이 고민하다가, 평범한 디자인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른바 첨단이라고 일컫는 것 중에서도 회색이 얼마나 많은가. 은빛은 어떨까? 사이버 첨단과학과 은빛, 썩 잘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누구나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불교는 그렇게 부드러운 모습이어야 한다.
<해인>의 겉 느낌을 결정짓는 전통 한지 위에 사진을 바탕으로 깔고, 번들거리지 않는 은빛을 한쪽에 슬쩍 얹어 보았다. 전혀 다른 느낌의 빛깔이 돋아났다. 친근한 ‘해인’로고가 <해인>을 <해인>답게 하는 무게 중심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꼭지마다 달리하던 칼럼 제목을 세로로 통일해 안정감을 주면서도 모던함이 느껴지게 했다. 그 대신에 각 꼭지의 특성을 살려서 포맷에 변화를 주었다. 젊어졌다……. <해인>이 젊어졌다.
<해인>을 디자인하면서 겪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독자층의 너비였다. 젊은이부터 나이 많은 보살님, 그리고 스님들의 독특한 감성까지 두루 아울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모던함보다는 전통 쪽에 무게를 두고 얼개를 짜야 했다. 그런데 이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불교도 현대 감각에 맞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해인>의 디자인도 그 흐름에 맞추게 된 것이다.
지난 해에 해인사는 개산 1200년을 맞이했다. 해인사는 이를 기점으로 젊고 힘있는 새로운 해인사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해인>의 변화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 단장한 <해인>의 얼굴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곧 그 속에서 새롭고도 견고한 틀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다양한 세태 속에서도 잘 지은 고성처럼 자리를 지켜 왔듯이, <해인>의 디자인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킬 때 맡은 바 몫을 다하리라 믿는다.
나는 지금도 희붐한 새벽빛, 잿빛이 좋다.
그 깊고 깊은 빛깔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