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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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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관암 2003년 03월 253호
대구 중앙로 지하철 사고가 난 3일 뒤 어이없는 참사에 희생된 유족을 위로하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바라는 마음에서 조계종 제 12교구 본·말사 대중스님들은 해인사 주지스님을 모시고 십시일반 모은 조의금과 함께 희생자 빈소가 모셔진 대구 시민회관 별관을 찾아 분향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엊그제의 충격으로 가슴은 움츠러져 있었고 빈소가 마련된 시민회관에는 애도의 물결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남녀노소 그리고 승려, 신부·수녀, 목사, 상인, 농부 등 계층과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는 추모의 물결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또한 이들 추모객들을 따뜻한 차 한 잔과 간단한 요기를 제공하며 정성스럽게 안내하는 대구지역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봉사 열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오늘과 같은 이런 온정의 추모 행렬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열기 속에는 두레와 향약으로 뭉쳐진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삶의 정서가 이어져 있음을 느꼈고 또한 아픔을 같이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타불이自他不二 동체대비同體大悲라는 1600년 한국불교의 근본 가르침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서와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사회에 어찌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참사가 자주 발생하는지 우리는 꼼꼼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잘 잊는 데 있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을 쉽게 잊는 것이 큰 문제임은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 수난사를 잊지 않고 거울삼았다면 우리 민족은 한마음으로 민족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을 터인데, 지금도 우리는 남북이 갈리고 동서와 계층이 불화하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용서하되 결코 잊지는 말아야 참사와 고난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는 아직까지 안전을 위한 시설물 설치나 시스템 구축 그리고 제도 도입과 그 관리체계의 접근법에 있어 단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술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인명존중 사상이 경제논리에 밀리는 입장임을 느낍니다. 언제까지 인명을 경시해가며 돈벌이에 열중하고 스피드에 집착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현대사회는 안락하고 편리한 만큼 한두 사람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사회 도처에 가득합니다. 이는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의 기본인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면 우리의 편리와 안락을 위해 손수 이룩해 놓은 현대문명들이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풍요를 마음껏 즐기고 사용할 권리와 함께 분명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이제 참여정부 시대를 맞았습니다. 참여정부의 골격은 사회와 국민 개개인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의 참여 저력은 작년 월드컵을 계기로 그리고 여중생 추모를 위한 촛불 시위와 이번 대구지하철 사고 추모행렬에서 여실히 보았습니다. 이번 사고가 우리 모두 원칙이 통하고 기본이 살아 숨쉬는 사회를 위한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이 유족과 망자들을 위한 진정한 추모가 될 것이라 믿어봅니다.□ 관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