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만난 동생
죽은 사람을 길에서 다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꾼다.
꿈은 먼저 세상 떠난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하는 대합실이다. 오늘 아침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동생이 꿈에 보였다. 나는 부엌에서 계속 군불을 지피는데, 동생은 이불을 들춰쓰고 계속 춥다고 한다. 본래 추위를 많이 타던 동생이, 차가운 땅 속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다는 항의로도 들리고 좁은 공동묘지를 떠나게 해달라는 애원으로도 들린다.
그러니까 그날, 봄이 오기엔 너무 이른 1월 말 동생을 묻던 순간이 떠오른다. 가파른 경사면에 2평 남짓 작은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렇게 좁은 데서 어떻게 하관식을 치를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양쪽에서도 우리와 똑같이 하관준비를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례식 합창이었다. 동생은 기독교인이라 성도들이 찬송을 시작했고, 왼쪽에는 스님이 염불을 했으며, 오른쪽에서는 유교의식인 듯 곡소리가 들려왔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아이고 아이고…… 건너가 만나리…… 나무아미타불…… 아이고……”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먼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하얀 빛의 물이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 불협화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동생은 그 자리를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도 동생은 행복하다. 저 세상에서 가끔 투덜댈 수도 있기 때문에 말이다.
고통의 연대
그러나 구천을 떠도는 저 원혼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해원상생굿도 이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원혼들 사이에 퍼진 소문에 의하면 해원상생굿은 모양만 있지 내용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원하는 내용의 핵심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진실의 얼굴’이라고 한다. 그 학살은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의 진실된 얼굴모습이 더 그립다고들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였나?
이름하여 ‘양민학살’의 대상이 된 우리들의 가깝고 먼 친척은 몇이나 될까?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고, 수백명이 죽으면 ‘참혹한 사고’이며, 수만명이 죽으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은 용서된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도 전쟁의 와중에 학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을 죽인 실체를 찾지 못한다. 전쟁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나 학살이던 사고이던 그것이 아무리 집단적인 것이라도 죽음은 개별적인 죽음이다.
마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보통 죽음은 우리에게 평생을 두고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면 삶이 끝난다.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 다른 삶이 말이다. 그러나 학살당한 사람들의 문제는 따라다니던 죽음이 들어오기도 전에 삶을 치워버린 데서 오는 간극의 고통이다.
나의 이모님은 시아버지와 딸을 6·25 때 잃었다. 남편이 부역했다는 죄로 그들은 학살당하였다. 다음날 나의 이모는 학살자들이 뒤엉킨 구덩이에서 시신을 찾았지만 결국 딸은 못찾고 시아버지만 간신히 수습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시신에 머리가 없었다. 한참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그렇게 장례를 치른 날 시아버지는 꿈속에 나타나 “아가야, 수고했다. 그런데 내가 숨을 쉴 수 없구나.”라고 말씀하셨단다. 소스라쳐 깨어난 다음날 다시 그 학살의 현장으로 가서 머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모는 하는 수 없이 시아버지를 수습한 근처의 흙을 머리만하게 만들어서 미리 가져갔던 보자기에 싸왔고, 관을 열고 다시 장례를 치렀다.
그날 밤 다시 꿈속에 나타난 시아버지는 “정말 수고했다. 이제 좀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뒤부터는 평생 다시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아는 나의 이모의 이야기다. 몇 만명이 학살당하였다면 이렇게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가 몇 만개가 넘는다는 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의 역사는 다 잊혀지고, 그날들의 사건은 6·25 등 숫자로만 남아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다만 땅 위에 그들을 추모한다는 미명하에 공원들이 생겨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엄숙하고 정신적이기보다는 그들을 학살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땅을 학살’한 살풍경하고 열악한 풍경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시 한번 그들을 죽인다.
해방 이후 이 땅의 역사는 죽음을 죽인 역사이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서 죽음을 삶에서 격리시키고 사람들에게는 마치 삶만이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살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영안실에도 가고 장례식에도 참여하지만 마치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다. 그것은 학살당한 사람은 수백만이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그 고통을 나누고 진정으로 고통에 연대해 본 역사가 없는 시절을 산 사람들에게 찾아온 병이다.
그래서 만일 어느 해 봄이 오지 않는다면 산 사람들이 환경공해를 일으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학살당한 원혼들이 아직 떠나지 못한 연유로 그렇게 됐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들이 정말로 정말로 그들의 고통에 연대하고 학살당한 수백만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절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런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봄은 이 땅에 또 다시 찬란한 빛을 돌려 줄 것이다.
그 어느 해나 다름없이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