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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영산회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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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편집실 2003년 03월 253호
해인사 영산회상도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낸들 제 짝을 찾는 꾀꼬리만 할 것이며, 있는 재주를 다해 춤을 춘들 저 학의 몸짓만 하겠는가. 가장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내도 늦가을 저 산색에 비할 수 없고, 갖은 향기를 다한들 봄날 피어난 꽃의 향기보다 더하지 못한다. 부부간의 정이 도탑기로는 하늘을 나는 기러기만 못한 것이요, 부자간의 친밀함이야 어느 미물인들 사람보다 부족하랴. 용맹스럽기로는 백수의 으뜸인 사자가 사람을 넘어서며, 의연하기는 코끼리에 미치지 못함이 있다.
어린 씨앗은 한겨울을 고된 들판 땅 속 깊은 곳에서 기다려 얼음장 같은 대지를 이고 봄을 틔워 내니 어느 사람인들 그 때를 알아 한겨울 추위를 허허벌판에서 견뎌내겠는가. 무릇 모든 생명을 지닌 것들의 미덕이 이처럼 사람을 넘어서는 바가 있으므로 무엇이 대견스러워 인간을 만물 중 으뜸이라 여길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이 삼강三綱에 오륜五倫을 더한들 그것으로 사람이 무릇 사바의 다른 중생보다 더 나을 것도 없거니와, 공부를 하고 마음을 찾는 것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에 머무르는 바 아니며,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으로 얻어질 바도 더욱 아닐 것이다.
석가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중생에게 일심으로 하고자 하신 가르침도 사람이 스스로 족하는 일로 머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석가 부처님을 우리가 사생四生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혹은 삼계三界를 넘나드는 스승으로 여기는 이유가 그것이다.
석가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교외 영취산을 택해 가르침의 날개를 펴시고 많은 청중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의 내용이다. 중앙에 석가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는 문수와 보현 보살이 협시하며, 그 외 많은 보살들과 십대제자와 여러 아라한들이 가르침을 듣고 있다. 사천왕이 그 회상會上을 호위하며, 모든 청중聽衆들은 그 법의 충만함을 즐거워하고 있으니 이것은 천상세계에서 일어난 아득한 일도 아니고, 불과 이천오백여 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 대웅전과 대적광전 등 석가 부처님을 봉안한 곳마다 이 영산회상도를 모시는 것은 진리를 가르치는 간절함과 연꽃을 들어보이시던 그 마음 한 자락을 잡아보고자 하는 중생의 바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취산의 회상 이후 하늘의 달이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는지도 알 수 없으니 설법하시던 그 자리에 지금은 잡초가 한 길이다. 비록 그 자리가 그러할지나 아직도 진리를 찾는 이의 마음 속에는 그 때의 가르침이 채 마르지 않은 새벽 이슬만큼이나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