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과 전개
전국의 불자들을 하나 같이 분노하게 만든 ‘제17사단의 훼불만행’은 작년 4월 20일 조병석 중령이 17사단 전차 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조중령의 전임 대대장 역시 기독교 신자였으나 그의 부임 시절만 하더라도 전차대에는 호국 신흥사라 이름 붙혀진 조그만 법당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스님이 그 법당에 알맞게, 작지만 온화한 상호를 띤 불상을 모셨다.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초라한 구석이 있으나 장병들이 법회 보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김광홍 주임 상사의 솔선으로 많게는 70명, 적게는 40명의 장병들이 매주2회씩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러던 것이 조병석 중령의 대대장 부임으로 여지없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조중령은 부임 직후 맞은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터무니 없는 구실을 내세워 봉쇄했다. 사병들이 손수 제작한 연등이 목사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하여 모두 떼내어 소각하였다. 그러고는 영내 확성기를 통해 찬송가 방송을 함으로써 복음화의 작업을 본격화했다. 입대 100일미만의 사병들에게 신앙 전력화 교육으로 예배를 강요했고 휴가 라는 미끼를 걸어 장병들이 기독교인으로 전향하도록 유도했다. 작년 성탄절을 즈음하여 찬송가 경연대회, 크리스마스 장식 경연대회 등을 열어 우수 장병에게는 4월15일의 ‘포상 휴가’를 주었다. 김광홍 주임 상사는 조중령의 지나친 행위를 참지 못하고 상급자에게 항의를 했던 탓에 다른 불자 사병 8명과 함께 타 부서로 쫓겨났다. 어디까지나 지휘상의 어려움 때문에 부득이 전출해야 했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변명을 들으며. 이 정도로 외골수인 자가 대대장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쥐고 있으니 전차대대의 분위기는 그대로 ‘왕국’으로 굳혀져 갔다. 마침내 법당은 창고가 부족하다는 구실로 폐쇄되고 봉안된 불상마저 어디론가 없어 졌다.
보도와 불교도 반응
불상이 치워진 날짜는 금년 1월 8일이었다. 근 석달 동안 일체 외부에 알려지지 않던 전차대대 안에서의 훼불이 외부에 알려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밝히려던 제보자의 신원이 안전하게 보장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기에 나중으로 미룬다. 어쨌든 4월 1일 아침 불교 방송의 전파를 타면서 이 사건은 수도권 중심의 불자들에게 큰 피장을 일으켰다. 보도 직후 대한민국 육해공 예비역 법사회(회장 권오성)가 전차대대를 찾아가서 진상을 확인하였다. 영담스님도 사실을 전해 듣고 즉각 항의하였다. 예비역 법사회의 진상 확인 소식을 듣고 한국불교도총연합을 주축으로 한 신행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이 17사단과 전차대대를 차례로 방문하여 항의와 진상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제보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었고, 다만 불상은 화형한 것이 아니라 야산에 버려졌다가 문제가 되자 다시 원래 자리로 갖다 놓았다는 점만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불상을 봉안한 영담스님은 그 불상이 ‘가짜’라고 단정지었다. 왜냐하면 복장물의 일부가 없어진 점, 복장을 하고 봉함한 흔적이 전혀 없는 점, 한겨울 내내 야산에 방치된 불상이 언제 그랬냐 싶게 멀쩡한 점 들로 미루어 볼 때 현재의 불상은 원래의 불상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4월 3일에 이어 4월 14일에도 2차 진상 조사단이 전차대대를 찾아가서 재조사하였으나 이러한 의문점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고해졌다.
불상의 진위 여부를 떠나 훼불사건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에 없이 불교계의 대응은 폭넓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육군 제17사단 법당 폐쇄 및 훼불사건 범불교도 대책위원회’(위원장 송산스님)가 교계 신행 단체 60여 개로 구성되었고 항의 농성이 잇달아 일어났다. 4월 9일 이후부터는 성명 발표를 벗어나 직접 국방부 청사로 진입하는 행동으로 발전했다. 중앙승가대 스님과 동국대 스님 등 200명이 9일 국방부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였고, 12일에는 국방부장관과 ‘범불교도대책위’ 관계자의 면담이 국방부 회의실에서 있었고, 이와는 별도로 인천, 부천, 안양 등 6개 도시 사암연합회 주최로 11일 17사단을 진입하는 항의 시위가 있었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불자들의 분노로 문제의 인물 조중령의 전격 구속, 미흡하나마 장관의 사과,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국군 내부의 편파적 종교 운영에 대한 제동(장관 취임 이후 제1호의 지휘서신을 통해 종교 형평성을 강조했다), 향후 군의 종교 정책이 올바르게 정립 되도록 강구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실질적으로 군승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등 정부 측의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17사단의 일로 시작된 사건은 점차 타 부서로 불길이 옮겨지는 양상을 보였다. 무엇보다 육군 제2훈련소에서 작성된 권영해 국방 장관의 훈시 내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장관 순시중 훈련 소장에게 훈시한 말 가운데 ‘장병들의 신앙 전력화를 위해 세례식 행사를 장려하라’는 발언을 둘러 싸고 증거가 있음에도 장관은 부인하고 있으며 증거물로 제시된 문제에 대한 답신마저 미루는 등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타 부대에서의 탄압 사례가 대책위원회로 접수되고 있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로 구성된 ‘대한불교어머니회’에 수집한 사례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17일에는 청년불자들의 규탄 법회가 조계사에서 있었고, 22일에는 17사단을 포함한 전국에서의 불교 탄압, 나아가 대통령선거 전의 공약과는 달리 ‘청와대 예배’를 정례화 한 김영삼 대통령으로까지 대상으로 삼는 교권 수호의 결의를 높이는 집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사건이 보도된 직후 불자들의 주체적인 대응은 참으로 고무적이라 할 만큼 대단하였다. 폭과 깊이 그리고 속도는 그 어느 사안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타났다. 17사단의 일에서 출발한 대응은 과장된 비약이 아니라 점차 상승하는 과정을 밟아 정권의 핵심 인물로 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자칫 종교간의 갈등만을 부채질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여기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상의 차이점이 나타났지만 대다수의 의견은 갈등의 요인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일이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불교 신자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 의식의 제고로 이어지게 해야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는, 앞으로의 과제 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전 무엇보다 과제를 풀어 나가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19일 있었던 ‘결의법회준비위’ 대표자회의에서 교권 수호를 위한 상설기구의 건설이 필요하므로 조속한 시일안에 가칭 ‘교권수호를 위한 범불교도협의회’ 식의 조직이 결성될 전망이다. 이 기구가 결성된다면 그 동안의 산발적, 일회적 대응은 지양되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감시와 대응, 대안 제시 등이 이루어지리라 예상된다.
또 하나의 과제는 교계 언론에 관한 문제이다. 갈수록 방송의 위력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불교방송의 협소한 가청권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동시 다발성을 갖지 못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교계의 일간지가 없다는 요인도 같은 맥락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부각됐다. 일주일 단위로 발간되는 교계 신문으로는 긴박한 사건을 전 불자에게 신속하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을 맞아 그 동안 ‘운동권’으로 분류되던 조직의 반성이 있어야겠다. 사건이 보도된 직후 신속한 대응을 주도한다. 단체는 운동권에서 ‘어용’이라고 분류한 조직이었다.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나머지 스스로 공동 대응의 대열에서 멀치감치 떨어져 있는 점이 없지 않다. 까마귀와 어울리지 않으려는 백로의 고결한 정신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까마귀까지 한편으로 묶어 내는 ‘진보’의 자세 정립이 우선 되어야 만이 ‘교권 수호’의 대열이 탄탄하게 마련되리라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