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야기를 좀더 해 주세요. 순분이라는 약혼녀 이야기랑요”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을밤의 별들이 아름답다고 노래한 시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카랑하게 빛나는 겨울 밤의 별들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고향 얘기를 해달라구 그랬니?”
할아버지는 잠시 하늘의 별들을 바라 보았습니다.
“글쎄, 날이 꽤 추울텐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구나. 마음이 어찌 포근한지 꼭 봄날 같아. 별들도 그래. 봄꽃 들이 어우려져 핀 것만 같고.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은 라죽동羅竹洞이라는 곳이었지. 삼수 갑산에서 가까운 산골 마을이야 아니, 그냥 산골이라고만 부를 수도 없지. 마을 바로 앞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거든. 산골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압록강의 모습은 장관이었지.
물빛이 그렇게 참할 수가 없었단다. 우리 마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름다운 풍경이 하나 있었지. 오백 년쯤 먹은 이팝나무 한 그루가 마을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봄부터 초여름까지 거대한 나무 전체가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였단다.
참, 너는 이팝나무라는 말을 잘 알지 못하겠구나. 이팝이란 쌀밥을 가리키는 말이지. 우리나라가 한참 어려웠을 때 모든 사람들의 꿈은 쌀밥을 한번 배부르게 먹는 것이었단다. 흰 밥알 같은 꽃들이 나무 전체를 뒤덮고 있다가 바람이 불어 오면 우수수 날렸지. 먼 곳에서 바라보면 꼭 밥 김이 무럭무럭 솟는 것 같았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잠시 멈추었습니다. 고요한 밤하늘 여기 저기서 일찍 잠든 별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담배 몇 모금을 맛있게 들이마셨습니다.
“그래, 내가 왜 여태 그 이야기를 잊고 지냈지? 오늘 밤 처음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구나. 해방이 된 뒤 지주 집안인 우리 집이 꽤 어려웠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지. 식구들이 모두 뿔뿔이 헤어지고 집조차 다 압류되고 난 뒤 한동안 난 행랑채의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지냈단다. 지니고 있던 식량마저 다 떨어져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지. 그러던 어느 늦봄이었어. 순분이가 저녁에 이팝나무 아래로 나오라는 말을 하더구나.
달이 무척 밝았지. 아마 열사나흘쯤 되었던 것 같구나. 달빛이 온통 하얗게 세상을 색칠해 놓았어. 한창 핀 이팝나무 꽃들이 곧장 하늘의 별들과 닿아 있는 듯 싶더구나.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 가면 곧장 하늘 나라에 닿을 것만 같았어. 난 순분이가 오면 이팝나무를 오르자고 말할 참이었지. 아니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발견했다고 말할 참이었어.
그때 순분이가 왔단다. 난 다짜고짜 순분이를 끌고 이팝나무를 오르기 시작했어. 자욱한 꽃향기가 온통 세상을 먹먹하게 했단다.
‘얼른 올라와. 세상의 끝이 보일 것 같아. 아름다움의 끝 말이야..’
‘정말이에요? 아름다움의 끝이 보인다구요?’
순분이는 주저 없이 나를 따라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단다. 본래 시골에서 자란 아이라서 순분이는 나보다도 오히려 나무를 더 잘 탔지. 둘이 걸터 앉아도 족히 좋을 만한 나뭇가지 사이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단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에요?’
먼저 지리 잡은 순분이가 조그맣게 웃으며 물었지.
‘맞아 그런데 아름다움의 끝은 아니야. 오늘 밤 알았는데 세상의 끝은 바로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곳이야’
꽃잎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달빛들이 모든 꽃잎들을 투명체로 바꾸어 놓았어. 겹겹히 쌓인 꽃잎들 밖으로 둥근 달의 테두리가 보이는 것 같았지.
‘세상의 끝을 발견한 기념으로, 아니 아름다움의 출발점을 발견한 기념으로 내가 선물하나 줄까요?’
순분이가 물었지. 왜냐면, 그것은 순분이가 나를 위해 마련한 제일 처음의 선물이었으니까. 사실 머슴의 딸인 순분이로서는 내게 선물을 하고자 해도 할 것이 없었지. 세상이 바뀌어지기 전에는..”
“어떤 선물인데요. 할아버지?”
아사달은 할아버지가 몇 모금의 담배를 빨며 뜸을 들이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글쎄, 나도 선물이라는 말에 꽤 낭만적인 생각을 했지. 도대체 순분이가 어떤 선물을 가지고 나왔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선물이란 게 무엇이었는 줄 아니? 사실 나도 순분이가 그것을 꺼내 내게 전해 주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단다.”
할아버지는 잠시 옛 일을 생각하는 듯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었습니다.
“그것은 두 덩이의 밥이었단다. 주먹밥이었는데 완전히 흰 쌀밥이었지?”
“밥이었다구요? 밥을 선물로 가지고 나왔어요?”
“그랬구나. 나도 한동안 멍하니 주먹 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얼마 뒤에야 이 선물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물인지 알 수 있게 되었지. 사실 난 그 얼마 동안 끼니를 제대로 찾아 먹지 못했지. 게다가 그때는 보릿고개라 쌀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었고. 순분이는 내가 끼니를 거의 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지. 그래서 어떻게 쌀을 구해 주먹밥을 만들어 가지고 나온 거야. 갑자기 뱃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한동안 물끄러미 순분이를 바라보던 내가 주먹밥을 한 입 막 떼어 넣으려는 참이었지 .
‘밥 한술 얻어 먹을 수 있겠소? 동무들’
우리가 앉은 나뭇가지 바로 곁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단다. 나와 순분이는 너무 놀라 그만 이팝나무 거기에서 떨어질 뻔했지. 도대체 우리 외에 다른 누군가가 나무 위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늙은 할아버지였단다.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머리칼과 눈썹이 하얀 꽤 인상적인 할아버지였지.
‘누구세요? 우리 외에 다른 분이 계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요. 꽃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나무를 올랐는데 동무들이 있었던 게요. 그건 그렇고 난 요 며칠 새 밥 구경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했소. 그 밥 한 덩이 주오.’
난 할아버지에게 밥 한 덩이를 드렸단다. 순분이와 나는 나머지 한 덩이를 나눠 먹으려 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밥 한 덩이를 꿀걱 삼키셨구나. 그리고는 밥을 막 나누려는 우리를 바라보았어.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지.
‘동무들, 한 가지 더 부탁하오. 우리 집에 손주가 하나 있소. 그 녀석 역시 며칠째 밥 구경을 못했지. 내가 환장을 했나 보오. 손주 생각 보다 우선 내 목구멍에 먼저 밥을 밀어 넣었으니... 염치 없지만 그 나머지 밥 한 덩이도 나를 주오.’
우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단다. 도대체 어찌 할 바를 몰랐지. 굶기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야.
나는 아무 말 없이 나머지 밥 한덩이를 할아버지를 드렸지. 어린 아이가 굶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단다. 어른인 우리들은 참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배고픔을 참기란 좀 힘든 일이겠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우린 알 수 없었단다. 우린 그냥 부등켜 안은 채 밤을 새웠단다. 순분이가 쿨쩍이며 울었지만 난 ‘좋은 일을 하직 않았니?’ 배고픔 쯤은 참을 수 있지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니야 하고 말하며 순분이를 달랬지.
물안개가 막 펴기 시작할 무렵, 우린 나무에서 내려왔지. 그러다가 우린 작은 꽃나무 한 그루를 보았지. 이팝나무 더구나. 아마, 그 큰 이팝나무의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자란 모앙이야. 꽃망울을 몇 개 터뜨리고 있었는데 아마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꽃을 피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키가 겨우내 어깨쯤 닿을 것 같았어.
그런데 이 나무는 심하게 부상중이었어. 누군가가 나무를 밑동째 잡아 흔들어 뽑으려 했기 때문이지. 나무 뿌리가 절반이상 땅 위로 뽑혀 나왔더구나. 나무가 반쯤은 죽어 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 누군가 이 나무를 뽑아다 자기 집에 심으려 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곰같은 야생 동물에 장난으로 뽑으려 했는지도 모르지.
우린 곧장 강으로 내려갔단다. 순분이와 내 신발을 벗어 물을 떠 왔지. 그리고는 나무 구렁이를 다시 파고 나무를 바르게 심어 주었어. 신발에 떠 온 물도 흐북히 부어 주고. 순분이의 흰 고무신과 내 낡은 구두가 흠씬 물에 젖었지. 강으로 물 길러 가는 작업을 세 번쯤 반복 했을 거야.
동이 트면서 날이 완전히 밝아 오더구나. 우린 지쳤지. 허기진 배에 강으로 가는 두세 마장의 길을 세 차례나 반복 했으니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
꽃잎이나 햇살을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r
순분이가 그렇게 말했단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 하늘의 구름을 먹고 바람을 마시고 마음대로 풀밭을 뛰노는... 소처럼 풀을 뜯고 목이 마르면 강으로 내려가 강물을 마시고…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강물을 마시면 훨씬 좋을 텐데’
나와 순분이는 곧장 강으로 내려갔단다. 이번에는 나무에게 마실 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마실 물을 찾기 위해서였지.
강가까지 내려온 우리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단다. ‘왠 줄이니?’
할아버지는 다시 담배 몇 모금을 빨아들였습니다. 할아버지의 흰머리와 하얀 흰 눈썹이 별빛 속에서 뚜렷이 빛나는 것을 아사달은 보았습니다.
“그날 아침의 신기한 일이 왜 이제야 생각나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북한에 있던 동안에는 한 순간도 그 일을 잊은 적이 없었는데...
강변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무엇인가 가 있었단다. 그것은 밥상이었지. 바로 압록강 몰이 찰랑찰랑 밀려와 고운 모래살과 만나는 지점에 작은 밥상 하나가 차려져 있더구나.
상 위에는 두 그릇의 쌀밥이 놓여 있었어. 고추장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열무김치 한 보시기가 깨끗하게 놓여 있더구나.”
“그 강변에 인가가 있었던가요?”
아사달이 물었습니다.
“인가가 있었느냐구? 물살이 심하고 바로 산비탈이 시작되는 관계로 그 쪽에서는 전혀 사람이 살지 않았단다. 사람이라면, 그렇지 이따금 뗏목을 모는 인부들이 물살을 따라 내려가는 정도였지.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무슨 수로 강변에 밥상을 차려 놓았겠니?”
“그, 그렇군요.”
“우린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단다. 고추장과 간장을 섞어 비벼도 먹고, 열무김치 가닥을 얹어도 먹고, 열무 국물에 다시 비벼도 먹고...하여튼 신나게 배부르게 먹었지. 누가 상을 빼 놓았는지는 사실 안중에 없었어. 들판에 핀 꽃을 누가 심어 놓았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는지도 몰라.”
“한 그릇의 밥이면 오히려 부족했을 텐데 그렇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가요?”
“뒤에 생각해 보니 우리도 그 점이 너무 신기했단다. 한 그릇이 아녀라 한 솥의 밥을 먹은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무슨 요술 밥그릇이었던 모양이죠. 먹어도 먹어도 밑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사실 그랬는지도 모른다. 우린 오직 밥을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렸기 때문에 열무김치가 다 떨어질 시간이 되었다든지, 밥그릇이 빌 시간이 되었다든지 하는 생각을 전혀 갖지 못했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하늘에는 여기저기 졸련 별들의 하품소리, 눈꺼풀 부비는 소리, 먼저 잠든 별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들이 함께 어울려 미세한 바람결에 날아다녔습니다.
“그 뒤에 다시 강변에 나가보지는 않았나요?”
“왜 나가보지 않았겠니. 그 봄날에도 우린 세 번씩이나 강변에 나가 보았단다. 물론 이팝나무 꽃가지 사이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먼동이 터 오는 아침녁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다시는 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봄이 갔지.”
“할아버지와 순분이 할머님이 살려주신 이팝나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을까요?’”
“글쎄다. 지금 내 생각으로 무럭무럭 잘 자랐을 것만 같구나. 그 녀석도 이젠 나이를 반 백 살은 먹었겠구나. 갑자기 그 녀석이 이렇게 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그래. 녀석은 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