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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禪書를 읽자(2)-「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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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해설 - 신규탁 1993년 05월 135호
Ⅰ
「육조단경六祖壇經」은 혜능慧能스님(638-713년)의 언행을 어록의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혜능스님의 금구친설로 이제까지 믿어 왔으나,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돈황에서 하택신회荷澤神會(684-758)에 관한 문헌들이 발견되고, 이 스님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단경」의 저자에 대한 여러 설이 나왔는데, 대개 다음과 같다. 첫째, 중요한 부분은 하택스님 내지는 그의 일파의 사상이라는 설. 둘째, 혜능스님이 하신 말을 조본祖本으로 뒷사람들이 일부를 첨가했다는 설. 셋째, 혜능스님의 말을 바탕으로 신회일파가 만들었다는 설. 넷째, 오래된 부분은 우두종牛頭宗의 말이라는 설 등이다.
국내에서도 일찍이 박한영스님의 논평이 있기도 했으나, 그 뒤로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다가 근자에 외국에서 연구되는 데 격발되어, 「단경」의 성립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하여 「육조 단경의 세계」(김지견 편, 서울, 민족사, 1992년)라는 전문 논문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알고 보면 성철스님이 선문의 정통을 돈오돈수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돈황본단경을 운운함으로 시작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주장을 비판하는 이들이, 한 단계의 연구 결과를 수용하여(사실 호적胡適이나 영목대졸鈴木大拙의 경우 일생을 통해서 견해가 바뀌고 있다.) 「육조단경」을 “육조스님 이야기”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그 증명 방식을 비판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학자들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돈황본의 조본祖本을 인정한다. 곧, 혜능스님의 법문을 바탕으로, 하택스님 내지는 그의 일파의 손에 의해서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형태는 근간설화가 뒷날 문헌으로 정착되는, 중국 문학에서 흔한 패턴이다.
아무튼 결론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설혹「단경」에 후세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될 이유는 못 된다. 마조馬祖스님 계통의 집단에서는 이 「단경」을 혜능 스님의 말씀으로 공언했기 때문에, 「단경」을 근거로 그 집단이 돈오를 표방했음을 입증하더라도 자료적으로 문제될게 없다.

Ⅱ
그런데 알다시피 하택스님은 지혜종도라 낙인 찍혀 선문의 금기로 되어 왔는데, 그런 하택스님의 생각이 「단경」에 영향을 주었다니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냉정히 생각해 봐야 한다. 곧, 무엇을 근거로 하택스님을 지혜종도라고 해 왔는가? 돈황본단경에서 하택스님을 깎아 내린 부분은 없다.(제자 입문하기 전에 혜능스님과의 대화는 입문 이전이니 해당 되지 않는다) 오히려 혜능스님이 입적할 때 모든 제자들이 울었는데 어린 그만 울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읽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가섭존자만이 태연했던 점을 연상하도록 한다.
사실, 돈황에서 하택스님에 관한 자료가 발견되기 전에는, 하택스님에 대한 정보를 규봉종밀圭峯宗密(780-841)스님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규봉스님의 하택스님에 대한 이해 방식이 제대로 되었는가?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생략하고 결론만을 말하면, 규봉스님의 해석은 주체적이다. 물론 규봉스님이 그렇게 해석할 만한 일면이 하택스님 글에 있다. 문제는 규봉스님이 소개한 그 일면을 가지고, 하택스님의 전체로 간주해 버린 후인들의 오해이다.
규봉스님의 문제 의식은 단적으로 말하면 「원리」사상의 정리이다. 이것은 당시의 사조였고. 규봉스님도 이런 흐름 속에서, 당시의 불교사상을 주체적으로 해석함은 물론, 「주역」을 비롯한 고전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해석 방식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뒷날 중국사장이 거의 규봉스님이 제시한 틀을 넘지 못한다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선사상만 하더라도 송대 이후는 돈오점수로 흘렀고, 본원本原에 대한 사고가 그 이후의 유학의 향방을 정해 놓았다.

Ⅲ
돈황본단경은 최근 성철스님이 스타인 5475호를 영인, 소개하여(「돈황본단경」, 서울, 백련선서간행회, 1987년)국내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필사본을 그대로 활자로 옮기고, 교감하고, 번역하고, 사본을 영인하여 뒤에 실었다. 물론 필사본의 원 글자를 그대로 두고 교정을 함께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여, 옳고 그름을 읽는 이가 판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래서는 이 사본을 대본으로 몇 구절 읽어 보기로 한다.
「단경」이 후세에 많이 읽혀진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생각 될 수 있지만, 이 책의 구성에도 크게 기인한다. 곧 주인공이 글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 되어 있는 점이다. 이 일자 무식꾼이 쟁쟁한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법통을 잇는 이야기는, 무명검객이 홀연히 나타나 중원의 무림을 휩쓰는 무협지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더구나 스님도 아닌 더벅머리가 그 영예로운 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구도서求道書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 독자들은 이미 일개 거사가 부처님의 뛰어난 제자들을 물리치는 「유마경」을 읽었기 때문에, 얼른 유마거사와 혜능행자를 연상하게 된다. 「단경」은 문학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장은 둘째치고, 단적으로 말해 재미있다.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법통을 전하는 장면을 보자.

五祖知三更, 喚惠能堂內, 說金剛經, 惠能一聞,
言下便五, 其夜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法及衣,
汝爲六代祖, 衣將爲信稟, 代代相傳. 法以心傳心,
當令自悟. 五祖言, 惠能, 自古傳法, 氣如懸絲,
若住此間, 有人害汝, 汝卽須速去.

오조스님이 삼경에 혜능을 방장실로 불러 들여 「금강경」을 설명해 주었다. 혜능이 한번 듣고 바로 깨닫고 그날 밤에 법을 받으니 남들이 전혀 몰랐다. (오조스님이 말하기를) “돈법과 가사를 전하여 그대를 육조로 삼으니, 가사가 앞으로 믿음의 표식이 될텐데(이 가사는) 대대로 천해 내려온 것이다. 법은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니 스스로 깨닫도록 하거라.” 오조스님이 말했다. “혜능아, 옛부터 법을 전하는 것이 목숨이 가는 실에 매달린 것 같다. 여기에 있다가는 누가 너를 해칠 것이다. 너는 어서 빨리 떠나거라.”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지금 그런 처지에 놓인 것처럼 가슴 뿌듯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다가 올 위험을 알리는 복선도 그럴 듯하다. 원문의 지知는 지止와. 오俉는 悟오와 음통音通로 의미에는 영향이 없다.
고사본을 읽을 때는 뜻으로 글자를 교정해서는 안 되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 글자는 원본의 글자대로 그대로 옮겨 놓고, 그 다음에 독자의 학문 역량대로 다른 대본 또는 당시의 여러 문헌을 사용하여 고쳐야 한다. 한 가지 첨부한다면 돈황본에는 돈황사본의 특유한 글씨체가 있기 때문에 눈에 익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氣는 우리말로 하면 ‘숨’으로 다른 본에는 명命으로 되어 있다. 代代相傳을 ‘대대로 전하거라: 하고 해석하지 않고, (이 가사는)대대로 전해 내려 온 것이다” 하고 해독 했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읽을까?
「종조본」에는 ‘가사는 싸움의 실마리가 되니 네 대에서 그치고 그대 다음으로는 전하지 말라 ‘ 또 ‘이 가사를 전했다가는 목숨이 실에 매달린 듯 위험하다若傳此衣命如懸絲고 하고 있다.

Ⅳ
앞의 문장에 따르면. 「금강경」을 스승과 제자가 주고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단경」에는 자성自性이 사람마다 본래 모두 간직하고 있다는 문맥에서「금강경」이 등장한다. 그러나 「금강경」에는 알다시피 자성이 공空함을 강조하고 있다. 「단경」과 「금강경」의 사상을 단순하게 접합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혜능스님의 생각은 자성의 발견으로 일관되어 있다. 다음 문장에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言下大伍, 順見眞如本性.
是故汝敎法, 流行後代, 今學道者頓伍菩提,
各自觀心, 令自本性頓悟.

여러분. 나는 홍인화상의 희하에서 한번 듣고 말끝에 크게 깨쳐, 있는 그대로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드러냈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 가르침을 뒷날에 널리 퍼지게 하고. 이제 도를 배우는 이는 보리를 돈오하여 저마다 몸소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성을 돈오하거라.

우선 문구를 살펴보자. 벌伐자는 대代를 잘못 베껴 쓴 것이리라. 「頓現眞如本性(「선림고경총서」 96쪽)의 문구도 있으므로 「頓現眞如本性 의 견見을 ‘보다’가 아니라 ‘드러내다’로 했다. 그리고. 「진여眞如」를 개념으로 처리 않고 글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돈황본단경에서 「진여眞如」라는 문구는 이 두 곳 말고도 「진여성眞如性」(92쪽)이 있으나, 굳이 교학에서 쓰는 개념으로 고정시킬 이유가 없다. 그렇게 읽으면 오히려 생생함이 죽어 버릴 염려가 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단경」의 전편에 흐르는 얘기는 마음을 깨치라는 것이다. 표현은 자체성自本性 –자성自性-자심自心-심지心地-본심本心 등으로 달리 나오나 이것을 우리말로 바꾸면 ‘제 마음’이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모두 있는 마음으로, 구체적인 이 현실에 있는 내 마음이다. 이 마음을 굳이 현학적 내지는 초월적으로 절대화시킬 필요도,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혜능스님의 맥을 이은 후대의. 마조-백장-황벽-임제스님 등에 오면 이 정신은 더욱 분명하고 투철하게 나타난다. ‘자기自己’라는 용어가 이 시기에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을 선서를 읽어 본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제 마음’의 강조가 오늘에는 당연할 지 모르겠지만, 당시 장안의 상황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폭탄 같은 선언인지를 알 수 있다. 개원開元(713-714)과 천보天寶742-756) 년간은 무당과 도사들이 크게 활약하던 시대로, 저 유명한 당시의 태상박사 왕흥이 기도의 영험으로 천하를 흔들고 있었다. 이런 왕흥의 기도를 적은 이가 바로 불공不空스님(705-774)이다. 이 불공스님의 영향으로 밀교의 부적이 궁궐 곳곳에 붙고, 나라에 무슨 일만 있으면 이 밀교승 내지는 도사를 불러서 기도를 드려 재앙을 물리치려 했다.
한편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에는 하늘이 인간에게 벌을 준다는 생각을 하던 때이다. 「구당서舊唐書」의 곳곳에 그런 예가 보인다. 메뚜기 떼가 나타나 농사에 피해를 주면, 하늘의 벌이라 생각하여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당시의 승려들이나 도사들이 여기에 많이 동원되었다. 이점은 당 이후에는, 해당지역의 관리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메뚜기 박멸에 앞장선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아무튼 이런 판에 제 마음 에 모든 것이 있으니 그것을 깨치라는 이야기는 엄청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