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불빛에 비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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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조혜란
1993년 05월 135호
요즘 불연 따라 아늑한 소읍의 한 사찰에 머물고 있다.
이 글을 청탁 받았을 때 마침 백일 기도중이었다. 나름대로 벼르고 별러 최소한의 활동 외에는 거의 절연하고 기도 정진에 들어갔다. 재가 불자면 나로서 이 결행은 사실 여러모로 벅찼다. 그렇지만 이를 통하여 나름대로 부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고, 도시 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맑게 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더욱이 기도 회향 바로 뒤에 글을 마감한다고 하여 무엇인가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연락을 주신 스님의 말에 선뜻 승락했다. 하지만 연필을 잡는 순간부터 나는 이 발상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곧 알게 되었다. 많은 이들과 공유할 그 무엇은 정말 아무것도 없고 그 전과 하등 다를 게 없는 변화 무쌍한 마음 그대로였다. 진실한 마음, 자비의 마음에 언뜻 언뜻 스칠 때면 그것이 곧 나의 영원한 마음상인 것 같다가도 구름처럼 또 다른 모양새로 변해 버리는 내 마음자리...
처음 이 곳에 올 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던 기복 신앙이니 치마불교니 하는 언어 조차 다 허망하다고 느낌이랴, 이 모든 것이 각각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베푸는 부처님 법의 조화 장엄인 것을... 게다가 내 나름대로 걱정하는 이
땅의 여성 문제, 성차별, 가부장제... 사실, 기도 기간 중에 최소한의 사회적 활동이란 대학에서 이런 문제들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왔다고 여겼지만 얼마나 책임 있는 실천행이었는지 궁금 할 따름이다.
얼마 전 이 도량에 낯선 불자 한 분이 다녀간 적이 있다. 하룻밤 머물다 가신 그 보살님은 절 식구 모두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없이 밤 늦게까지 초파일 연등 준비를 거들었다. 미안해 하는 우리에게 부처님 일은 곧 당신 일로 여겨, 지금 자신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적을 둔 사찰에 연등용 꽃잎 말이를 하려고 꽃잎을 가지고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다음날 새벽 예불 이후 떠날 때까지 계속하여 여러 일을 거들던 보살님.
어떤 인연의 끈인지 그 보살님은 내가 머물던 방에 여장을 풀었다. 한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우리는 각각 불연을 맺게 된 경위에서부터 부처님을 어떻게 따를 것인지, 특히 중국에서 씌여져 위경으로 드러나는 경전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유아를 위한 포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진지하게 토론했다. 쉰이다 되는 나이임에도 단지 부처님 믿으니 좋다더라 하는 식이 결코 아닌, 탐구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 밖에도 말없이 행하는 보살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그 분이 부처님 법을 알고 나서 하고 있다는 후회, 아니 아쉬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가족에 매여 있어 출가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아쉽다고 한다. 결혼 뒤에 우연히 비구니 스님을 알게 되어 수십 년을 그 스님 절에 다니면서 처음에는 부처님과 자신의 관계가 무조건 복을 받고 주는 것만이 제일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부처님의 정법을 알게 되면서 나름대로 출가 불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도 가족에게 매여 있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자신 대신에 큰 아이의 출가를 원하고 있으나 아이 자신이 바라지 않고 있어 그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불연을 맺은 지금까지 이 분처럼 보살행을 행하는 재가 불자를 만난 경우가 내 기억 속에는 없다. 이 분을 보면서 처음에는 기복적 차원에서 부처님을 접했을지라도 차츰 부처님의 정법을 따를 수 있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기복적 신앙도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방편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떤 가르침 조차도 뗏목처럼 알라고 이르시며 상에 머무르지 않는 무주상 보시의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가르치고 계신다. 앞서 말씀 드린 보살님은 왠지 부처님의 이 말씀에 합당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보살님의 경우와는 달리 여성 불자님들 중에는 불교의 한 면에 고착되거나 무주상보시를 왜곡하여 실천하는 분들을 더러 볼 수가 있다.
학생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몇 년 산적이 있다. 그 곳 한 아주머니는 상당히 불심이 깊어 보였다. 무허가 건물이나마 그 분이 직접 몸이 약한 남편 대신 돈벌이를 하여 마련도 했고 어떻게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쓰시던 보살님이었다. 남편과 애들 특히 아들에 관한 한 무주상 보시의 보살행 그 자체였던 같다. 그러나 이 분은 이 ‘우리 식구’들 외의 모든 일에는 무척 무관심한 편이었다. 가령 강제 철거가 들어왔을 때 이주 대책이 없는 세입자들이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자 세입자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냉대하는가 하면, 가족 가운데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인 자신과 딸을 천대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무주상 보시는 그 실천하는 보살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며, 마침내는 무상정각을 이루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의 경우처럼 우리 식구 특히 아들과 남편만에 천착된 무주상보시라면 이는 그 자신의 업장을 오히려 두껍게 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두려워진다. 더욱이 이처럼 타인에 대한 천착은 또한 주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법칙에 순응하는 아들과 남편의 욕구의 변화에 맞물려 여성 스스로의 마음 자학은 어디론가 흩어져 버리고 마침내는 무주상 보시의 근본의 도가 전도 되고 만다. 이에 따라 아예 여성 자신은 맹목적으로 부처님을 물고 늘어지는 기복신앙의 추종자가 되고, 여성의 무주상보시의 대상인 남편과 아들 또한 자신들의 업장을 소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성에게 무조건 보시를 받아야 해서 또 다른 업장을 짊어지는 꼴이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이와 같은 가족에 대한 천착은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게 하여 내 가족 외에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는 거의 무관심한 결과를 낳는다. 가령 요즘 여성 문제로 거론되는 여성 차별적인 모든 현상과 성폭력, 여성의 성적 대상화, 남아선호사상의 문제 등에 관심 있는 여성 불자들이 어느 정도 인지 자못 궁금하다. 진정으로 여성이 업이 많은 존재여서 업장 소멸 할 것이 남성보다 많다면 여성은 한 남성을 중심으로 업장 소멸을 시도하기보다는 여성 자신이 단독자가 되어 스스로의 업장을 소멸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더욱이 업이 적은 남성보다는 업이 많은 자신과 같은 위치의 여성들을 더 걱정해 주면서, 그러는 과정에서 업장 소멸의 방편을 발견하면 이 방편으로 모든 이들의 업장을 소멸하는 스승이 되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비록 짧은 소견이지만 부처님의 법을 알면 알수록 대자비심의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은-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물이겠지만-철저히 평등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인간 해방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안팎의 모든 마군을 물리쳐 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에 대한 철저한 의심과 의문을 뼈대로 사유와 실천행을 행하였던 것이기에.
거기에는 남녀 차별이나 계급차, 연령의 차이들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가르침에서 성차를 두었던 방편법이나 제자가 되려는 양어머니에 대한 몇 차례의 거절 등을 우리는 부처님 당시 시대적인 조건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우리는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양모가 되고 있음도 당시의 족외혼 풍습으로 인정해 주고 있지 않은가.
오늘을 살아 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내 자신 얼마나 부처님의 정법을 만나려고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속한 인류와 모든 만물에 대해 최소한의 자비심이라도 가져 본 적이 있는지 고민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마하파자파티님의 심정, 왕비로서의 부귀 영화를 마다하고 부처님의 거듭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고 스스로 삭발하고 맨발로 부처님을 만나러 가면서, 그리고 마침내는 부처님께서 제자로 수기를 주셨을 때 울며 기뻐하던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본다.
사실 앞서 여성들의 남편과 아들에 대한 맹목적 의존성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 불자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이니라 우리 사회 여성들이 지닌 전반적인 현상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한때 남자를 통한 자기 실현이 최우선인 것으로 알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여성이기 이전에 이 땅에 태어난 유일자로서의 인격적 존재임을 생각하면서 여성 문제를 접한 뒤에는 여성 스스로의 성차별적인 자기 비하 또한 가부장제라는 사회 유지기제에 의한 사회적 구성물이었음을-우리나라는 특히 유교적인 영향 속에서 더욱 그러했다-이해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생애와 정법을 조금씩 접하면서는 이 여성의 길들여진 여성비하적 의존성은-남녀간의 평등한 상호 의존성은 아름다운 일이다.-반드시 극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구조물은 여성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도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임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가는 단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초파일 아침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