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최후의 결집, 장경 전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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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본해
1993년 05월 135호
새소리에 잠이 깬 벚나무들 후드득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더니 꽃샘추위에 멈칫거리고 있는 한가로운 오후이다.
학인 스님이 가져다 주는 신문을 펼치니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장경의 전산화에 대한 기사이다. 요즘 교계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아직은 문명의 이기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에게 전산화의 의미는 생소한 것이기 조차 하다. 특히나 사자전승의 비밀스럽고 수공업적인 수행의 관점에서 볼 때 첨단의 문명을 이용하는 이런 작업은 엄청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간 저 편에 있는 대장경이 시대에 따라 새로이 결집되어 온 그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부처님의 교설을 보존하기 위해 왕사성 칠엽굴에서 마하가섭을 상수로 경, 율 2장을 결집한 것이 대장경의 기초가 된다. 그 뒤에 야사의 비사리 결집. 제수의 파탈리 결집을 거쳐서 캐쉬미르에서 협존자 세우를 중심으로 삼장을 결집하고 주석을 붙인 것을 제4결집이라 한다.
장경의 한역은 기원전 일세기경부터 시작되어 부분적으로 번역되다가, 북송의 관판대장경이 만들어지면서 한역장경 결집의 완성을 보았고, 그 뒤 고려대장경, 원본대장경, 명본대장경. 일본의 신수대장경에 이르기까지 이십여 종의 한역대장경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에 고려장경은 그 양(81,340장)과 정확성 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가져왔다. 그러나 당시의 출판 문화에서 가장 뛰어난 고려장경의 지위는 활자 장경인 일본의 신수장경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이렇게 고려장경의 지위가 상실된 것은 활자 장경인 신수대장경이 목판 인쇄의 수공업성과 방점이 없는 한문의 난해성과 색인과 해가 없는 것 등을 모두 해결한 까닭이다. 이로써 고려장경은 신앙적인 차원이나 문화재의 의미로 우리에게 전해질 뿐 불교학의 기본 텍스트로서의 위치는 상실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불교학이 답보상태에 있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차 자료에 대한 접근 부족에 있다. 불교학에 새 바람을 불어 넣으려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것이 일차자료에 대한 접근과 이해이다. 방대한 분량의 장경은 수작업을 거쳐 이차 자료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장경의 전산화와 한글화를 통해서 달성 할 수 있다.
장경의 전산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문헌은 이미 전산 입력이 완성되어 보급 단계에 있다. 한문장경의 전산화도 초보단계이긴 하지만 상당히 진척되었다. 중국의 사회과학원과 대만의 불광사 등에서는 이미 작업에 들어가 있고, 일본의 경우는 뛰어난 컴퓨터 기술과 정리된 불교학을 바탕으로 연구소중심의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인사에서 1986년 고려대장경의 목록을 전산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자금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무산되었다. 다행히 올해 들어와 해인사 대장경연구소를 중심으로 장경 보존을 위한 판의 전산입력과 경전의 내용을 전산화하려는 계획이 추진중이다.
이러한 장경 전산화가 완성되면 한국불교의 잃어버린 옛 영화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멈추어 버린 시계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글대장경의 완성을 한걸음 앞당길 수 있고, 다양한 불교학의 관점을 바로 세우는데도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꿈 가운데 하나인 한글장경의 완성은 오늘 우리 불교가 문명의 주역이 되는 긴요한 관건이기에 더욱 그렇다는 얘기이다.
장경의 전산 입력은 단순히 활자 매체를 전산화하여 정보의 다양화를 꾀한다는 차원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어쩌면 불교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장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후의 장경 결집이 될 것이다.
거대한 기계 문명의 조류에 속수무책인 오늘의 인류에게 불교적인 구원의 가르침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한다. 이 대안은 정글과 같은 장경의 숲속에서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정글과 같은 장경의 숲에 새 길을 내고 쉼터를 찾아가는 지도를 그리는 일은 전자 매체의 효과적인 이용이 좋은 수단이다. 장경의 전산 입력이 그것이 될 것이다.
이 의미 있는 불사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한자 코드의 통일, 전문 인력의 양성과 막대한 재원 등 풀어가야 할 난제가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불사를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범 불교적 신심과 원력이 세워져야 하리라.
이제 우리는 멈추어진 시계를 돌려야 한다. 봄이 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