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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신해품(信解品)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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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0년 10월 104호
ㅇ. 마지막 유언
똥을 치우던 아들이 드디어는 아버지의 재산의 관리자로까지 변신하기에 이른 과정을 앞에서 더듬은바 있거니와, 그런 일을 계속하는 중에 아들의 마음은 ‘차츰 뚫리고 편안해져서 큰 뜻을 갖추게 되었다’고 경은 서술하고 있다. 많은 재산을 책임지고 관리하다보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변화니, 곧 보살을 가르칠 정도로 대승에 대한 이해가 깊어감에 따라 소
승으로서의 열등감이 차츰 희박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를 확인한 아버지는 임종을 당하여, ‘그 아들에게 분부해, 친척·국왕과 대신·찰리(刹利)·거사를 모이게 해 그 모두 모였거늘’, 그들에게 이같이 유언한다.
“여러분은 알지니, 이는 나의 아들이요, 내 낳은 바라. 아무 성중에서 나 버리고 도망하여 갖은 고생하기 오십여 년이었나니, 이 애의 원이름 아무개요 나는 아무개라. 그 옛날 본성(本城)에서 걱정해 찾았던 바, 문득 여기에서 이를 만나니, 이는 실로 내 아들, 나는 실로 그 아비로다. 이제 내가 지닌 온갖 재물이 다 이 애 것이며, 먼저 주고받은 그 사연들도 다 이 애의 아는 바라.”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오시(五時)의 마지막인 법화열반시(法華涅槃詩)에 해당하거니와, 지금은 글에 나타나 있는 대로 법화경에 관련시켜 해석하고, 열반경과의 관계는 뒤에서 고찰하겠다.
그러면 먼저 거기에 불려온 친척·국왕·대신·찰리·거사란 무엇을 뜻하는가. 천태대사의 해석에 의하면 친척이란 영향중(影響衆)이다. 마치 형상이 있는 곳에 그림자〔影〕가 있고, 소리에는 반드시 올림〔響〕이 따르는 것처럼,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시방세계로부터 자동적으로 모여들어 그 교화를 돕는 법신보살(法身菩薩)들이 영향중이다. 구체적으로는 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 같은 분들이시니, 불교의 긴 역사를 통해 이 분들은 거의 부처님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와서 그 위계는 보처(補處)의 보살이신 미륵보살보다도 위에 있거니와, 경에 따라서는 이미 성불하신 다른 국토의 부처님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분들을 부처님의 화현(化現)으로 보는 여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지만, 모두가 석가여래와는 무수겁 전에 같이 수행하던 동료들이어서 형제나 숙질(叔姪) 따위 혈연에 비길 수 있는 사이들이시다. 몸을 굽혀 이 땅에 출현하여 석가여래의 불사를 도우심이 이런 인연 때문이요, 또 이 글에서 ‘친척’으로 비유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국왕은 여러 경전을 가리킨다. 불교의 여러 경전들은 크고 작음이 각기 다르고 내세우는 교리에도 제각기 차이가 있으므로, 각각 하나의 독립된 국가와도 같다. 그리고 각각 자기가 으뜸가는 경이라 자처하고 있는 점에서는 모두가 한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국왕에 해당하니, 유마경이 출현하는 것에 의해 아함경이 빛을 잃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흥망성쇠를 겪는 점까지 국가 내지는 국왕을 닮은 셈이다. 거기에다가 지금은 법화경이 설해지는 자리이매 이런 국왕(경전)들의 소집은 필수적인 기본요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법화경은 다른 경전과 동렬(同列)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설해진 온갖 경전을 모아놓고 그 같은 경전들이 설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필연성, 곧 그 배후에 숨겨져 있던 부처님의 참다운 의도를 밝히신 경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신은 등각(等覺)이니 성불 직전의 보살이다. 찰리는 찰제리(刹帝利)니, 인도 사성(四姓) 중의 왕족이매, 십지(十地)의 보살이요, 거사는 부유하되 귀하지 못한 신분이므로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이다. 간단히 말해 십주가 주로 공제(空諸)를 닦되 가제(假諦)·중도제(中道제諦)에도 약간은 관심을 갖는 단계라면, 공의 평등에서 다시 현실의 차별에 눈떠서 주로 가제(假諦)를 닦으면서 중도제도 곁들여 닦는 단계가 십행이요, 비로소 중도제를 본격적으로 닦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중도가 공제 ·가제와 하나가 되지 못함이 십회향이요, 오랜 숙원이 이루어져서 중도의 진리를 보게 된 단계가 십지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영향중이 지켜보는 중에 모든 경전 속에 담긴 부처님의 참뜻을 밝히심으로써, 보살행을 닦아 성불로 이끔이 법화경임을 보이는 조치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같은 법화경의 특성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여기서는 ‘이는 나의 아들이요 내 낳은 바라’느니, ‘이는 실로 내 아들, 나는 실로 그 아비’라느니 하여, 부처님과 중생의 하나임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부처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던들 중생으로서의 생존은 전개될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온갖 재물(지혜와 공덕)은 처음부터 자기의 소유였다 해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가정(假定)에 불과해서, 중생인 바에는 처음부터 부처님에게 등을 돌리는 방향으로 밖에는 생존할 수 없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애초에 태어난다는 것이 무수한 타인과 무수한 사물 속에 내던져짐을 뜻하므로 자아관념에 매어 분별에 떨어짐은 필연적이었으니, ‘어려서 나(부처님) 버리고 도망한’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나면서부터 그런 방랑은 시작돼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 부처님의 아들이었던 혈연 또한 숨길 수는 없는 일이므로, 부처님에게 돌아가려는 본능적 지향이 있게 마련이어서, 바로 이런 면에서 중생으로는 수행이 행해지고, 부처님 쪽에서는 구제의 불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자기가 부처님의 아들임을 깨닫는다면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겠으나,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것은 지난한 일 중에서도 지난한 일이매, 그러기에 전사시(前四時)에 걸친 방편의 교화가 있어야 했던 것이겠다. 그리하여 이제는 마침내 방편이 곧 진실이라는 사실을 밝히기에 이르시니, 이신해품에서 볼 때는 본디 장자(長者)의 아들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이리하여 아들은,
“내 본래 바라는 것 없더니, 이제 저 보장(寶藏) 저절로 굴러 왔다”
하며 좋아했다고, 경은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량을 거듭하던 처지에서 한 말일 뿐, 장자의 아들인 점에서 볼 때는 본래 자기 것이던 것을 자기 것이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니, 그것을 모르고 지내던 과거라 해도 자기의 소유가 아니던 것은 결코 안된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 설해진 진실은 곧 우리들 자신의 본지풍광(本地風光)이어서, 부처님으로서는 설하되 기실은 설함이 없으시며, 우리 중생 쪽에서는 얻되 아무 것도 얻음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데에 귀착하는 것도 법화경이 설해진 데서 오는 결과이매, 온갖 경전에 깃들어 있던 부처님의 진의가 밝혀지는 것에 의해 방편의 가르침들이 한 걸음도 그것을 떠나지 않은 채 바로 진실의 가르침이 되게 한 것은 일대장거(一大壯擧)였다. 일광삼조(日光三照)에서 볼 때는 해가 평지를 비추는 정오에 해당하니, 온갖 것 이 일점의 흐림도 없이 실상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낸 시기이다.
그렇다면 법화시(法華詩)라 하면 족했을 터인데, 굳이 법화열반시라 규정한 이유가 무엇이냐 할지도 모른다. 말할 것도 없이 법화경에서 일대사인연이 밝혀지는 것에 의해 일대시교(一代詩敎)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므로, 더 설해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법화경을 듣고도 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래도 무상하시다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방편이 곧 진실이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수행 따위는 안해도 된다고 여긴다든가, 인과를 부정하고 파계를 일삼는 자가 나타나기에, 여래의 상주(常住)와 일체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음을 설하시는 동시에, 다시 계율의 중요성을 설하셔서 말세의 중생을 경계하신 것이 열반경이다. 그러므로 노파심에서 이것저것 추가해 설하심이 그 내용이시니, 추수가 끝난 후의 이삭줍기에 비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에서 궁자유를 다루는 한편으로 오시설에 대하여는 간단히 언급해 왔거니와, 오시의 기간까지도 한정해서 화엄시는 성도 직후의 삼칠일(三七日), 녹원시는 12년, 방풍시는 8년, 반야시는 2년, 법화열반시는 최후의 8년이라고 치는 주장이 행해지고 있는 데 대해 한마디 해두겠다. 궁자유에 ‘똥을 치움이 이십년’이라 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그같은 주장에는 근거가 없고, 또 천태대사의 주장도 아니므로 고려할 것이 못된다. 그리고 오시가 경들을 설해진 시기의 순서에 따라 구분한 것인 데 대해 다시 교화의 방법·형식에 입각해서 가린 화의사교(化儀四敎)가 있고, 가르침의 내용의 질을 구별했다고 할 수 있는 화법사교(化法四敎)가 있다. 특히 화법사교는 천태교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터이나, 지금은 법잡을 피해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