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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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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낙중 1990년 10월 104호
민족분단과 평화통일의 의미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남북분단의 새로운 아픔을 강요당한지도 벌써 45년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얄타체제 하의 냉전시대에 우리의 국토는 미 ·소 양국군대에 의하여 남북으로 분할점령 되었으며, 남과 북에는 미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는 두 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분단은 결코 미·소에 의한 국토분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미·소에 의한 분할정령과 두 개 정부수립이 있었더라도 1949년 미·소 양군이 모두 철수한 조건 속에서 만약 남북 쌍방정부가 민족적 입장에서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였다면 민족분단은 결코 오늘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8년 남북 쌍방지역에 수립된 두 개의 정부는 제각기 외세를 등에 업고 힘에 의한 일방적 통합을 추진하였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결국 소련 탱크와 미국 비행기를 가지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민족구성원은 서로 원수가 되어 패가 갈리고 민족분단이 고착화되었다.
즉 민족분단은 국토의 남북분할만이 아니고 민족구성원의 좌우 패갈림의 문제이며, 민족구성원의 분열이야말로 보다 본질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민족구성원들이 패갈립의 싸움을 청산하고 평화롭게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쌍방당국 통일정책의 공통성

지난 9월 5, 6일 양일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은 쌍방정권 당국의 통일정책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비록 합의점을 찾아 공동성명을 내는 일은 못했지만 피차간의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었으며, 다음 계속되는 회담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한 기초는 마련된 셈이다.
남북 쌍방당국이 그 기조연설을 통해서 밝힌 통일정책은 애당초 예상했던 대로 남측은 인적 물적 교류·협력을 중점적으로 논의했고, 북측은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들을 중점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다행히 종래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인 점은 피차 상대방이 요구하는 문제에 관해서 즉 교류·협력문제와 정치·군사문제를 동시적으로 논의 해결하지는 입장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남북 쌍방당국이 발표한 통일정책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되는 중첩분야가 생겼다는 것이다.
첫째, 남북 쌍방당국의 주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남북 쌍방이 서로 그 평화적 공존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그것을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단합의 방법으로 통일을 하자고 표현했고, 남측은 ‘더이상 대결·적대하는 상대가 아니라 공동의 번영을 향해 협력하는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시키자’고 말했다.
둘째, 그러면서 쌍방은 서로 쌍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중지하자고 했으며,
셋째, 쌍방은 주민들의 의사표시 자유와 사장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했다. 이 점에 관하여 남측은 ‘신문, 라디오, TV 및 출판물의 상호개방’이란 표현을 썼으며, 북측은 ‘상대방을 소개하는 출판의 자유와 상대방 사상을 신봉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말했다.
넷째, 남북 쌍방은 모두 상호불가침을 선언하자고 했으며,
다섯째, 비무장지대를 진정한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했으며,
여섯째, 남북 쌍방이 모두 군사당국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영하자고 했다.
일곱째, 상호군축에 관한 합의사항의 이행을 검증할 수 있는 현장 검증 및 감시단을 설치하자는 것도 공통된 주장이었다.
여덟째, 다각적 교류·협력문제에 관해서도 남북 쌍방당국은 교통체신망 연결, 경제적 교류와 합작, 대외경제관계의 협력, 그리고 여러 부문에서의 문화적 교류 협력을 이루어 나가자고 입을 모아 주장했다.
이렇게 많은 부문에서 공통의 주장을 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합의서의 작성과 공동성명의 발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일까? 남북 쌍방당국 통일정책에서 서로 합치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점들은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쌍방당국 통일정책의 문제점

남북 쌍방당국이 발표한 통일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측은 남북쌍방이 서로 국가적 실체를 상호인정하자는 입장에서 상대방 대표를 연형묵 총리라고 호칭하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총리사이의 협정 또는 합의서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측은 ‘조선은 하나다’라는 한반도 단일국가의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다는 사실을 합법화하기를 반대한다. 즉 현재 남북 쌍방당국 통일정책에서 매우 분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한반도에 하나의 국가만을 인정하느냐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느냐 하는 차이이다.
북측이 하나의 국가만을 주장한다고 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만 유일한 국가이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오직 하나의 통일국가 안에서 남과 북의 상이한 제도 상이한 지방정부를 인정해야하지 영구분단과 분단고착화를 합법화할 수는 없지않느냐는 주장이다.
이에 반하여 남측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통일국가의 실현은 믿을 수가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상호 국가적 실체를 존중해야 정치적 신뢰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남북 쌍방 통일정책에서 아직도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점은 역시 남측은 경제 ·문화적 교류를 진행하는 데 따라 점차적으로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북측은 계속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를 전제로 경제 ·문화적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이다.
이점은 남북 쌍방 총리가 발표한 기조연설에서 차지하고 있는 제안들의 내용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남측은 기조연설의 많은 부분을 교류협력에 관한 발언에 할애했고, 북측은 군사문제에 관한 발언에 대부분을 할당했다. 남측이 10개항에 걸친 자세한 교류협력 방안을 제시한 데 반해, 북측은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적대관계의 해소를 전제로 교류 협력을 할수 있다는 간단한 언급을 했다.
이에 반하여 군사문제와 평화보장문제에 관해서는 북측이 9개 항의 군비축소방안과 5개 항의 평화보장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남측은 정치 ·군사적 신뢰 구축을 전제로 군비축소 문제를 간단히 쌍방 협의 하에 실천하고자 언급했을 뿐이다.
셋째, 남북 쌍방당국의 통일정책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미군과 핵무기에 관한 상이한 입장이다. 북측은 강력하게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며 미군의 철수를 요구한다. 그러나 남측 당국은 핵무기와 미군철수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북측은 핵무기와 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남북간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장애라 생각하고 있는 반면, 남측은 핵무기와 미군의 주둔을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불가결의 요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문제 해결의 방향과 전망

그러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북 쌍방 통일정책에 관한 주장에 많은 공통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본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쌍방당국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통일문제의 해결을 어느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또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 남북 쌍방에서 가장 예민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군과 핵무기 철수 문제에 관해서 말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조치만 강구된다면 그 누구도 한반도에서 미군과 핵무기가 철수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필자는 과거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주장한 바 있는 4대국 보장안은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현재 북측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보장을 위해서 휴전선 평화지대에 중립국 감시군을 배치하자는 제의를 하고 있느니만치 그 중립국 감시군을 미군과 중국군을 포함하는 다국적 국제평화군으로 편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국제연합은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다국적 평화보장군의 운영에 관하여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북간의 불가침선언과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국제보장조치만 강구된다면 남북 쌍방이 전개하고 있는 군비경쟁은 쉽게 해소될 수 있으
며, 군사적 대결관계는 청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하나의 조선’이냐, ‘두 개의 한국’이냐 하는 문제는 결코 그 누가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원하기 때문도 아니며, 또 그 어느 쪽이 어느 쪽을 먹기 위해서도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모두 통일은 원하면서도 남북간의 분쟁은 있어서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분단의 영구화는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남북간의 무력충돌이 국내문제로 취급되어 억제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 또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해결의 방도는 군사·외교권을 당분간 남북 쌍방당국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국가연합(confederation) 형태의 단일연합국가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남북간의 통일협정에 의해서 일정기간 후에는 연합국가를 연방국가(federation)로 발전시키고, 다시 일정기간 후에는 단일민족국가로 발전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이것을 국재적으로 확실하게 담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문화·경제적 교류를 우선할 것이냐 정치·군사문제를 우선할 것이냐 하는 것은 이상의 두 가지 문제가 합의되면 별 문제로 될 수 없으며 동시적으로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나 이 모든 통일문제는 궁극적으로 통일을 갈망하는 민족구성원의 역량이 남북 쌍방당국으로 하여금 민족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만한 힘으로 성장하는 것을 필수조건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단계 우리의 과제는 남과 북에 거주하는 민족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진정한 의미의 민족적 화해와 단결을 촉구하는 평화통일 역량으로 일깨우고 조직화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평화통일이란 결국 민족구성원 모두가 화해를 통해서 패갈림의 싸움을 청산하고 평화로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