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淨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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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05월 135호
세상을 살아가는 살림살이 속에서 밥 먹는 일과 그것을 버리는, 곧 배설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우주 법계에 생명을 얻어 지니는 사물들, 동, 식물 할 것 없이 하다 못 해 바다 속 풍랑에 시달리는 해초 이파리 한 줄, 높은 산 벼랑 모진 비바람에도 살아가는 이끼 한 눈꿈 같은 생명체 속에서도 먹는 일과 버리는 일은 그것들이 있음 하는 그 자체이다.
공양물(음식물)을 먹고 버리는 일 가운데 수행하는 스님네들이 정랑淨廊(뒷간)을 출입할 때 쓰는 정병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가 이른바 문화시민 운운하며 측간厠間조차도 화장실이라고 이름도 근사하게 쓰며 수세식 정랑을 설치하며 용변 뒤에 물을 팔팔 쏟아 흘려 버리게 되었지만, 아무리 근사한 수세식 측간이라도 뒷물하는 시설은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네 불가에서는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자가 꼭 지니고 다니는 비구 육물六物 가운데 이 정병이 있다.
범어로 Kandika 곧 군지軍遲 또는 군치가裙稚迦라 음역하는데 병甁이라 번역한다. 이것들은 정병과 촉병이 있는데 정병물로는 깨끗한 손을 씻고 촉병觸甁 물로는 더러운 손을 씻거나 윗물을 할 때 사용한다. 인도에서는 옹기로 만든 것은 정병, 쇠로 만든 것을 촉병으로 썼다고 한다.
우리 절 집에서는 주로 유리병을 사용하고 있다. 사원에서는 정병의 물로 우리의 몸가짐을 깨끗이 할 뿐 아니라 정랑에 들어서서 용변을 하고 나올 때 입측진언을 하는데 먼저 세수진언洗水眞言을 그리고 세정진언을 통해서 우리들의 수행하는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어떤 시공 속에서도 청정한 우리들 몸과 정신과 함께 그런 터를 이루고자 애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