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여, 다시 깨어나라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배영기
1999년 02월 204호
태초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면서 하늘을 남자로 보고 땅을 여성으로 보았다. 곧. 하늘에서 이들이 나왔고 땅에서 딸이 나왔음을 뜻한다. 띠라서 하늘(아들)보다는 땅(딸)이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땅에서 나서 땅 위에서 살다가 땅속으로 돌아가면서도 하늘을 땅보다 더 많이 섬기며 살아왔다.
여성(女)은 모든 삼라만상의 생명을 탄생시켰으며, 하늘에 반짝이는 별(台)까지 품고 비로소 역사를 시작(始)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남으로부터 섬김을 받기보다는 언제나 자기 희생을 통하여 가정과 국가를 편안(安)히 이끄는 위력, 위신, 위엄, 위세(威)를 지니고 있다. 수천 년 전 한자가 만들어질 때도 여자(女) 변을 부수로 쓰는 글자는 백 여자가 넘으나 남자(男) 변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불과 두서너 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위력(威)의 여성이지만 동, 서양이 다같이 마냥 남자 중심으로 움직여 왔으며, 여성을 무한히 학대하면서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었다.
여기에 맞서 여성들은 농경사회의 가부장제와 아이를 많이 낳아 동력을 공급하는 공업사회의 다산력多産力의 수단으로 짓밟혀 오다가 80년대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여성 자신의 자각이 일어나 다시 분노(愁)를 터뜨리게 되었다. 그 동안 빼앗기고 불평등하던 여성 고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법적,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과 사회통념, 의식구조적으로 왜곡된 부분을 바르게 고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먼저 법적으로 가족법 개정 운동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1989년 확정되어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가족법이다. 지금의 가족법을 두고 여성단체 쪽에서는 아직도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과 호주제도 폐지는 호주상속이 호주승계로 이름만 바뀌어 그대로 존속하고 있어 가족 관계에서의 남녀평등, 부부평등을 완전히 이룩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여전히 갖고 있다.
여성노동 관련법으로는 근로기준법,(1990년 개정), 남녀고용평등법(1987년 제정), 영유아보육법(1991년 제정), 남녀차별금지법(현재 국회상정) 들을 들 수 있다.
성性관련법으로 모자보건법(1987년 개정), 간통을 금지하는 형법, 윤락행위방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법이 있다. 그리고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남녀차별금지법’이 곧 제정 공표 될 예정이다. 이 법은 고용, 승진문제를 다루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의 범위를 확대하여 성회롱 금지를 포함하였다. 곧, 상급자가 성적인 언어나 행동으로 성적인 굴욕감을 유발케 하여 고용환경을 악화시킬 경우, 더 나아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 및 접근, 성적 성질을 가지는 언급, 외설적 출판물을 보여 주는 행위, 언어나 행동에 위한 성적 요구를 포함하는 행위, 동에 대해서 전적으로 여성의 주관적 판단기준에 따라서 결정되고 처벌된다.
이와 같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 명실공히 남녀평등, 부부평등, 아들, 딸의 차별 없는 양육 및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대해서 반대할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남자중심의 성, 가족사회문화의 역사가 왜곡된 채 질주하여 온면도 있지만, 여성 자신이 남자로부터 독립하기보다는 보호 받으려는 심성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매매춘의 성상행위가 남자의 성구매욕을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는지, 예쁘게 보이려는 여성 화장술의 발달은 남자의 강요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단정할 수 있는지, 여성학교의 학교이름에 꽃화자(花)가 많은 것에 대해서 거부의 몸짓을 나타낸 적이 있는 지. 계집 여(女)라고 읽는 옥편의 훈독을 여성녀(女)로 읽어야 옳다고 개독改讀 작업을 벌인 적이 있는지,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의 팔장을 끼고 들어가는 신부는 자립 의지가 약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닌지, 시몬느 보봐르는 여성 해방의 명저를 ‘제1의 성’이라 하지 않고 여성을 ‘제2의 성’이라고 한 까닭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지. 이 모든 것은 남자에 의한 타율적인 규정이라기보다는 여성 자신에 의한 자의적인 예속화는 아니었는지를 반문하게 된다. 요즈음 여성 인권단체들에 의해서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섹스는 거부되어야 한다는 성性자결권에 대한 목청이 높아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자에 대한 쾌락제공, 종족보존을 위한 생식기능에 종속됐던 여성의 성(性->聖)을 여성 자신의 결정아래 주체적으로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원치 않는 성행위나 임신, 출산, 성기관 절제 동을 강요 받지 않을 권리를 여성의 인권에 포함시켜 각종 여성운동의 행동 강령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아내가 원치 않는 섹스를 남편이 강요할 경우 강간죄가 성립되느냐의 여부를 판단할 때 ‘본인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입장을 취할 경우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성자결권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강조할 경우 매매춘도 자유로운 노동의 일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극단론이 나와 매매춘을 성폭력의 일종으로 비난해 온 기존의 여성인권운동과 대치되는 모순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21세기는 분명 여성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서구 선진 여성문화… 운운 하는 데는 단연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서구는 여성문화의 출발부터 남자인 아담의 남아도는 뼈다귀(a suprenumeraay bone of Adam)에 불과하며 ‘이브’라는 이름도 아담이 지어 주었고, ‘아담’이라는 뜻도 아다마(adama) 곧 흙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여성은 남자 Male에 Fe를 붙여서 Female로, Man에 Wo를 붙여서 Woman으로 한 것은 male과 man의 예속어로 덧칠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에 견주면 우리는 여성을 우대하기 위해 ‘음’으로 보고 ‘양음’이라 하지 않고, ‘음양’이라 했으며, 여성을 ‘좌’로 보고 ‘좌우지간’으로 말하였지 ‘우좌지간’으로 말하지 않았다. ‘내외간’이라고 아내를 앞세웠고, 졸업한 학교를 ‘모교’라고 불렀고, 나라를 떠나서는 ‘모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혼을 하여도 여성은 본래의 성姓을 그대로 가지고 일생을 산다.
이처럼 여성 우대의 고유문화를 지녀왔으나 조선시대에 여성의 존재를 몹시 왜곡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종래의 여성의 왜곡 현상보다 더 참담한 질곡이 전개되고 있는데 대해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성만으로 빚어진 결과는 아니다. 지난 한해동안 7만 6000쌍이 결혼을 하였으나 1만 7000쌍이 이혼을 하였다. 이는 이혼율이 5분의 1을 웃돌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의 부부가 결혼하여 파경에 이르는 기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것으로 통계청의 ‘가정현황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통계에 따르면 결혼한 뒤 이혼하기까지의 평균 기간이 우리나라는 8.4년, 미국 9.1년, 일본 10.8년, 영국 11.6년, 불란스 13.4년, 브라질 16.9년이다. 파경의 3저 현상언 저기간, 저년령, 저책임의식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외도가 급증하여 곧바로 가정 파괴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97년 ‘통계로 본 여성의 삶’에서 기혼여성 3명 가운데 1명만 가정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젊고 학력이 높을수록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어서 미래 지식사회의 효율적인 생활 적응에 시사를 주고 있다.
그렇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해방은 노동해방도 아니고, 민족해방도 아니고. 계급해방도 아니며 결국에는 여성해방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성해방의 시대에 여성은 남자와 공존의 틀을 유지시키면서 상생相生의 길을 열어나갈 열쇠를 주고 있다. 성性의 주권시대에 여성은 다시 모든 생명 탄생 본디의 위대한 성품이 유린됨이 없이 잘 보유될 때 그 빛은 더욱 아름다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