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요정 아사달의 세상구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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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곽재구
1993년 02월 132호
셀 수 없이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차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고개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굉장하구나. 이렇게 많은 차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아사달은 공중을 날며 생각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차들이 늘어선 반대편의 차선은 거의 텅텅 비어 있다시피 한 것이었습니다.
“반반씩 나누어 달리면 달리기도 편하고 보기도 좋을텐데…”
그러나 한 쪽 차선을 가득 메운 차들은 아사달의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엉금엉금 기기도 하고 아예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길에 주저 앉기도 했습니다.
저런. 벌써 한 시간 이상 꼼짝도 못했다는 저 털보아저씨는 아예 고속도로 한복판에 윷판을 벌여 버렸군요. 글쎄, 멍하니 차 안에 앉아 있기보다는 이렇게 식구들끼리 한판 어울리는 것이 춥지도 않고 훨씬 기다리기에 편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군요.
고향에서 친척들이랑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한판 걸죽하게 놀려고 준비했는데, 연습도 겸해서 차라리 잘 되지 않았수? 예전에는 세모 정도는 우습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모 하나 만들기도 힘드니, 이런 젠장. 혀를 끌끌 치는 모습이 오히려 순박해서 모여든 사람들 또 한제 갈 길을 잊고 각각 훈수를 하는데, 먼저 잡고 말을 써야 한다는 사람, 두 말을 함께 업어 나아가야 한다는 사람, 먼저 말을 쓰고 뒤에 모를 놓아 앞 말을 추격해야 한다는 사람, 하여튼 주위가 온통 시끌 법석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오징어 장수 아저씨가 나타나 가스불에 방금 구운 오징어를 팔고 있군요. 어떻게 저 많은 차들을 뚫고 오징어 장수 아저씨는 이곳까지 나타날 수 있었을까요. 신기한 일로만 치자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늘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결코 못하지 않을 거라고 아사달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해남까지 갈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어?”
봉고차 안에 있던 한 소년이 차에서 내려오며 먼저 내린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글쎄... 지난해엔 열여덟 시간이 걸렸는데 올핸 인플레를 1O퍼센트만 잡더라도 한 스무 시간 걸리지 않겠니?”
“인플레가 뭔데?”
“그러니까, 에 또, 쉽게 말하자면, 그러니까... 옳지 ! 요금 인상 같은 것을 말하지. 너희들 버스 요금이 지난해엔 110원이었는데 올해 130원으로 오르지 않았니? 모든 물가는 조금씩 오르게 되어 있단다. 그 원인은 글쎄 내가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구나. 만약 내가 경제 학자라면 나는 해마다 물가를 조금씩 떨어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텐테... 어쨌든 물가가 너무 올라 탈이야.”’
“모든 물가는 조금씩 오르게 되어 있다고 했죠?”
“그랬구나.”
“그런데 왜 제 용돈은 새해가 됐는데 인플레 시켜 주지 않는 거죠?”
“이런, 녀석! 누굴 닮았는지 머리 하나 잘 돌기는, 쯧.”
“닮기는 누굴 닮아요! 아빠를 닮았지?”
“그래, 알았다. 다음 달부터 특별히 20퍼센트 인상이다. 지난 달까지 천 원이었으니까 이젠 천이백 원이야. 알았어? 나도 내 봉급을 누가 한꺼번에 20퍼센트씩만 올려주면 좀 좋으련만.”
“그건 그렇고... 아빠, 우리 저 오징어 한 마리만.”
“아이구! 이 고단수야!”
아사달은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싱긋 웃었습니다.
아빠는 거금 삼천 원을 들여 오징어 한 마리를 샀는데 봉고 차에 탄 이 집 식구들의 숫자가 모두 일곱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오징어는 과연 누구의 입에 들어가야 할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집 식구들은 침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아빠는 먼저 오징어의 몸을 일곱 등분으로 나눠 식구들에게 차근차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오징어 발을 하나씩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다시피 오징어의 발은 열 개입니다. 식구들에게 하나씩 발이 돌아가자 세 개의 발이 남았습니다. 그 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이 집 가장인 아빠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그 때입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징어의 발이 일흔 개라면 좋겠어.”
“왜?”
“그래야 일 인당 열 개씩 먹을 수 있잖아.”
“………”
아빠의 침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빠가 들고 있던 오징어의 발이, 그 숫자를 세기도 힘들만큼 많이 늘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포도송이 같구나.”
아빠가 신음과 함께 겨우 말을 내뱉을 동안 아들이 오징어 발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예순 일곱, 예순 여덟, 예순 아홉, 일흔! 아빠! 정말, 일흔이야, 일흔.’
아빠와 이들, 그리고 온 식구들이 모여 오징어 발의 숫자를 세고 또 세고 하는 동안 주위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렸습니다.
“설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올핸 참 기쁜 일이 있을 모양이구나. 그래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이 큰 행복이고 기쁜 일이지.”
착한 아빠가 내뱉는 말이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이란 길은 모두 차량으로 꼭꼭 뒤 덮힌 이 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었습니다.
아사달은 설날이 어떤 날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날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란 것이었습니다. 사실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지요. 사람들은 흔히 성공해서 꼭 고향을 찾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향은 실패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법이지요.
아사달은 문득 하늘나라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성미 고약한 옥황상제 할아버지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사달은 지금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아사달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벌을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하늘에서 바리 본 자동차의 물결은 마치 하늘나라의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것은 얼핏 헤드라이트의 불빛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이 꾸는 꿈의 명멸 같은 것이라고 이사달은 생각했습니다. 머리에 고향을 그리는 별 하나씩을 단 사람들의 무리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아사달은 자동차의 행렬과 반대 방향으로 날았습니다. 그곳은 당연히 서울이 되겠지요.
아사달은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갈았습니다.
아사달은 서울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곳의 포장마차들이 김밥과 떡복이를 비롯한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군데의 가게를 지났지만 아사달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무슨 하늘나라의 요정이 그깟 것을 가지고 고민하느냐고 물으시는 분 있겠지요. 아사달이 요정이며 또한 상당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신통력은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벌을 받는 형편인 아사달로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신통력을 행사할 수 없었지요.
배에서 쪼르룩 하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린 것을 아사달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세상 인심은 참 고약하군요. 어린 아이 모습인 아사달이 저녁 좀 얻어 먹을 수 있을까요? 하고 말했다가 쫓겨난 포장마차가 네 군데나 되었으니까요. 다섯 번째의 포장마차에 들렀을 때 아사달은 저녁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적인 희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포장마차의 주인은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아사달은 이 할아버지지가 지금 굉징히 큰 슬픔에 젖어 있다는 것을 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자위는 퉁퉁 부어 있었고 아사달이 처음 포장 마차에 들어왔을 때는 아예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있는 손자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죠? 할아버지.”
아사달이 그렇게 물었을 때야 할아버지는 비로소 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고향에 있는 손자라고 말했니? 난 고향도 없고 손자도 없는 사람이란다.”
“피, 손자는 없을 수 있다고 해도 고향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고향이 있다는 것쯤은 저도 안다구요.”
“그래, 네 말이 틀림없구나. 그러나 고향이 있어도 없는 사람들이 분명 있단다. 너 실향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니?”
“실향민이요?”
“그래, 북쪽에 고향을 두고 남쪽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밀이지. 우리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도 고향을 갈 수가 없지. 갈 수만 있다면 열 시간 또는 스무 시간이 아니라 열흘이나 이십 일이라도 못 가겠니?”
“안 됐군요, 할아버지. 전 그런 사정은 몰랐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남쪽에 고향을 두고 반대로 북쪽에 살고 있는 사람은 뭐라고 부르죠?”
할아버지는 한동안 아사달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넌 참 총명한 아이구나, 나 같은 처지의 실향민이 북쪽에도 많이 있으리란 걸 여태 생각해 보지 못했구나.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래, 무슨 일로 내게 왔니? 저녁은 먹었어?”
할아버지는 아사달을 위해 김밥 한 접시와 떡볶이 한 접시를 차려 주었습니다.
“저런 배가 많이 고왔구나. 물도 마셔가며 천천히 먹거라. 네 배를 불릴 만큼의 음식은 충분히 있으니. 그런데 네 이름은 뭐니?”
“아사달이요”
“아사달? 흔치 않는 이름이구나?”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 하늘나라의 요정이에요. 개구장이 노릇을 실컷 하다가 벌을 받아 쫓겨 났지요”
한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이내 말문을 열었습니다.
“너와 말을 하는 동안 난 네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단다. 나이를 먹으면 그런 건 쉬 알게 돼. 그래, 아사달, 넌 하늘 나라에서 왔다고 했지. 이상하게도 그 말이 믿어지는구나. 초면인데 결례가 되지 않을지나 모르겠다만 내 부탁을 하나 들어 줄 수 있겠니?”
아사달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미소는 두말 할 필요 없이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리겠다 는 긍정의 표시였습니다.
“날 오늘 밤 고향으로 데려다 줄 수 있겠니? 너무 고향이 그립구나. 아마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밤 내가 꼭 고향을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있어.”
할아버지가 말을 마친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바람이 포장마차의 포장을 펄럭였습니다. 의자에 앉은 채 한동안 바깥을 천천히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긴, 그래... 서울역 광장이 아니구나. 내가 본 것이 맞다면 우린 지금 공중에 떠 있어. 내 말이 맞지 아사달!”
할아버지의 말은 틀림없이 맞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아사달, 그리고 할아버지의 포장마차가 고스란히 밤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지상에는 마치 하늘의 별들이 그러하듯 수 많은 불빛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답구나. 그리고 너무 신나! 내 포장마차를 타고 고향으로 갈 수 있다니. 이런 생각은 정말 꿈에도 해보지 못했어. 아사달아, 그래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요. 우린 지금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저 역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이 참 기뻐요.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참 아름다운 곳이란다. 봄이면 복숭아 꽃이 만발하는데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마을 앞 작은 시냇물에 떠내려 갈 때는 정말 장관이지. 저 땅 위에 반짝이는 불빛들도 아마 그보다는 아름답지 못할게다.”
“아까 오늘 밤 꼭 고향에 기야 할 이유가 있다고 했죠?’
”물론이지. 그 이야기도 들려주마”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