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雲步
長江不流
露月星河
雲淞雲嶠
청산은 구름 속에서 걷고
장강은 흐르지도 않는데
달과 별빛 같이 나타남이여
설송은 구름처럼 높습니다
하였더니 용정 화상은 입실을 허락하며 다시 게송으로 답하되
庭前柏樹子
儼然冠山林
身帶紺靑色
葉履五須彌
뜰앞의 잣나무는
숲속에서 가장 우뚝하군
감청색 푸른 모습으로
잎사귀는 수미산을 덮으리로다
하고 자운당慈雲堂이 라는 법호를 내렸다.
이로부터 스님은 십 년 동안 운수납자가 되어 제방 서원에서 수선 안거를 하였다. 금강산 마하연, 불영사, 통도사, 김룡사, 백양사, 학성선원 동에서 여법하게 정진의 모습을 보였다.
1943년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대덕 법계를 품수하였으며 1946년에 종단 총무원에서 종사법계를 품수하였다.
1948년 스님의 세수 서른 일곱 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문경 봉암사에서 보살계 대법회를 주관하고 강설하였으니, 이로써 잊혀졌던 보살계를 부활시키는 한편 청정한 계해械每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이듬해인 1949년에는 스님께서 원력을 세워 아직까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계율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저술 활동을 하였고 비구계본 일만 부와 비구니계본 일만 부 사미와 사미니율의 일만 부를 비롯하여 보살계본범망경 일만 부등 무려 사판부의 계본을 출판 분포하였으니, 이로써 느슨했던 승단의 기강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1951년 통도사에 천화율원千華幕完을 개설하여 뜻 있는 후학들에게 율학을 강수하였는데, 여기에서 일타스님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율사를 배출하여 이 땅에 율맥이 이어지도록 하였다.
1955년 교단 정화로 말미암아 종단의 소명을 받아 해인사 주지에 취임하는 한편 해인대학 학원 이사에 취임하여 그 당시 총무였던 영암스님과 더불어 위급 난중에 있던 해인사의 농토를 되찾아 오늘의 해인사가 있도록 삼보 정재를 지켰던 것이다.
1957년에 중앙종회 의원이 되는 한편 원효학원 이사와 경상남도 총무원장과 중앙 감찰 원장이 되고 표충사 주지를 역임하였다.
1960년에 다시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였는데, 이때부터 산중 어른인 성철스님을 방장으로 모셔와 총림을 개설하였다. 그 뒤로 해인사는 법보종찰로서뿐만 아니라 명실공히 한국 불교 최고의 수도처로서 그 사명을 다해 왔다.
주지를 비롯하여 여러 중임을 맡으면서도 스님은 언제나 경율 간행에 원력을 세우고 한글 경율 사만오천 부를 비롯하여 무량수경, 약사경, 자비수참, 권발보리심문 퉁 승속이 늘 신심을 책발하도록 하는 경율 21종의 출간하셨으니, 그 무량한 복과 지혜와 덕을 지으심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1966년 스리랑카에서 개최한 세계 불교 승가 연합회에 한국불교 대표로 참석하였고, 1974년에 인도에서 개최한 세계평화촉진회의에도 한국불교 대표로 참석하여 세계 불교도에게 한국 불교를 널리 선행하였다.
그밖에도 1967년에는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였고, 1975년에는 규정원장과 1976년에는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종단을 이끌었으며, 1977년에는 대각회 이사장에 취임하는 등 종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토록 종단의 중망을 입고서 대중 외호에 전력하였으나, 스님의 인상은 언제나 청정하고 엄정한 율사로서 우리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스님께서 명소에 주지라든지 무슨 이사장이라는 칭호보다 율사로서 더 깊은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자주빛 남방식 가사를 입고 있던 모습이 유난히도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1953년 이래 입적하던 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거의 사십 년 동안을 종단의 기본인 계단주戒亶主전계대화상으로서 수천 수만의 재가 출가 칠중七衆을 배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1992년 2월 7일 꼭 일 년 전에 수많은 불자들의 마음에 계의 향기를 남기고 입적하였지만, 스님의 끝나지 않은 원력은 지속되어 갈 것이다.
眞性圓明
本無生成
本馬夜鳴
西方日出
마음자리 밝아서
나고 죽음 없는 것을
목마가 밤에 우네
서쪽에서 해가 뜨네
스님은 이와 같은 열반송을 남기고 입적하였는데, 세수는 여든두 살이요 법랍은 예순다섯 살이었다.
해인사 다비장에서 다비하였더니 사리가 스무과 가량 출현하여 또 한번 청백가풍의 위광을 찬란하게 보였으니, 스님께서는 승가의 영원한 귀감이요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