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에 놓여 있는 사람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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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3년 02월 132호
이제 며칠만 지나면 설날이다. 우리가 이제는 구정이라 부르는 설날을 중국에서는 춘지에(春節)라고 부른다. 물론 일 년 기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오늘날에는 많이 바뀌었지만, 나이 먹은 중국사람이라면 으레 흥청거리며 야단스럽던 춘지에 분위기를 기억하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북경의 설 분위기는 음력 섣달 초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섣달 초에서 위엔 시아오(元宵節)라고 부르는 정월 대보름까지가 새해를 맞는 설 분위기, 곧 춘지에의 흥청거리는 명절이었다니 중국사람은 과연 노는 데도 과장 많고 배포 크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정지하는 과거 농촌사회의 추운 겨울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전통적인 춘지에가 섣달 초 여드레 , 곧 불교인들이 납월 팔일이라고 부르는 부처님 성도재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이 매우 독특하게 보인다. 과거에는 우리에게도 제법 큰 명절이었을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기껏해야 절 집안에서 잠 안자고 용맹정진을 하는 날쯤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추억할 따름이다. 그 날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사람들을 이 날 라바조우라는 특이한 죽을 쑤어 먹으며 새해 맞을 준비를 한다.
동양의 역사에서 이 날 납월 팔일은 매우 복잡하고도 특이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이 날은 무엇보다도 동양사회가 걸어온 착잡한 종교사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 새로 출판된 「사해辭海」 에는 납월 팔일에 대해 ‘중국의 한족’ 불교도들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거행하던 불교의 명절. 절에서는 송경誦經 활동을 한다. 아울러 부처 성도成道 이전에 목녀牧女가 유미죽을 공양했던 전설을 본 받아 곡식과 과일로 죽을 쑤어 부처에게 공양한다. 뒤에 일종의 민간 풍속으로 변화되었는데, 이 날 라바조우(臘八粥)를 먹는다. 풍년을 경하하는 뜻이 있다 라고 길게 정의 내려 놓고 있다. 이를 보아도 이 날이 분명 불교적인 의미를 지닌 날임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처음 납월 팔일을 쉰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무척 나의 흥미를 끌었다. 자의든 타의든 종교인으로 낙인이 찍힌 마당이어서 종교는 언제나 나를 싸고 도는 중요한 화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가 알던 몇 안 되는 중국 사람들 가운데에 그 사전에 적힌 만큼 그 날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기대도 없었던 만큼 실망도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대체로 그 날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조상신이나 토지신 따위에 드리던 미신에서 유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별로 그런 의미에 관심이 없다는 말들도 하나같이 덧붙였다. 물론 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데가 없다. 그날 먹는 그 들쩍지근하고 이상한 죽(여러가지 곡식은 물론 호도, 땅콩, 연밥, 호박씨는 물론 건포도, 대추 따위의 아주 달고 말련 과일까지 온갖 것을 넣고 끓인 것이다)은 중국의 어느 문장가가 ‘작은 농업 전람회’라고 불렀던 것처럼 의심할 나위 없이 농업 사회의 유물이다.
그러나 납臘이라는 글자의 본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날의 가장 오래된 근원은 수렵 사회의 종교 행위였던 것 같다. ‘설문設文’ 에는 ‘납臘’ 동지 뒤의 세번 째 술일戌日,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고대 사회의 여러 사서史書에도 한해 동안 사냥했던 짐승들을 위로하고 조상신에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나온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날은 수렵 사회에서 농업 사회로 변해 가는, 또 민간신앙에서 불교의 유입을 통해 불교라는 종교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가는 복잡하고도 긴 역사를 반영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다시 오늘날에 이르러 모든 종교가 미신이 된 마당에 그 종교적인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도, 중국사람들은 너나 없이 죽을 쑤어 먹으며 지나간 해나 오는 새해를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맛이 이상한 그 죽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좋은 풍습이라고 자랑도 한다. 그래도 아주 열성적인 소수의 불교신자들과 절간의 중들이나 기억하는 우리의 처지보다는 한결 부러워 보였다. 어쨌거나 이 날이 지나면서부터 시장에는 이른바 설 상품 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집집마다 설 준비를 시작하면서 명절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어 간다. 구시대의 학제에서는 섣달 19일부터 학생들도 한 달 동안 방학에 들어갔다고 한 달 요즘의 학제는 보통 양력으로 1월 하순 무렵 겨울 방학이 언제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요즈음도 춘지에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것 같았다. 올해는 춘지에가 유난히 빨라 1월중에 들어있기 때문에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모두 학기 초부터 겨울 방학이 언제 시작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물론 춘지에에 맞춰 모든 학교의 방학이 예년보다 조금 당겨졌다-예나 지금이나 명절을 가장 기다리는 것은 물론 아이들일 것이다. 기다리던 방학을 하면서부터 집안은 더욱 어수선해지기 마련이고, 어른들도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설빔 따위를 마련하느라 부산해지는 시기가 된다.
섣달23일은 재미있게도 조왕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날이란다. 이 날 폭죽을 터뜨리고 조왕신의 형상을 그린 그림을 태우며 한 해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맘 때 아주 단 사당 같은 것을 먹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붙어 있다. 즉 하늘에 올라간 조왕신이 한해 동안 있었던 집안의 불상사들을 옥황상제에게 고해 바치지 못하도록 단 것으로 입을 붙여 버린다는 것이다. 입시 때면 엿과 떡을 사서 먹거나 교문 앞에 발라대는 극성스런 입시열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이 날이 진짜 명절, 본론으로 들어가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설 음식을 준비하고 명절 행사를 준비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설 전날 밤, 곧 제석除夕장으로부터 초 닷새까지는 가게가 모두 철시하고 집안에서도 완전히 휴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략 일 주일 먹을 분량의 음식을 준비해 놓아야 했다고 한다. 제석 이후로 초 닷새까지 칼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되어 있었다니, 중국 여인들은 확실히 명절 때면 음식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던 우리 어머니들보다는 편했던 것 같다. 집안은 춘연春聯과 연화年畵로 장식하고 모든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되도록이면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새해를 맞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대개 흥분된 분위기의 제석과 졸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어린 시절의 수세守歲를 억하고 있었다.
제석의 번잡함에 비하면 설날은 뜻밖에도 조용한 휴식 시간이 된다. 다만 집안 남자들은 배년拜年이라는 세배를 가고 여자들은 집안에서 손님들을 대접한다. 예전에는 으레 절이나 관觀(도교의 사원)으로 참배를 나갔다고 한다. 절에서도 며칠 동안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나 여흥 거리를 주변에서 마련하여 명절 분위기를 돋구어 주었던 모양이다. 특히 북경의 백운관白雲觀 광장에서의 경마는 아주 성황이었던 것 같다.
원단元旦의 흥청거림은 그대로 원소절元宵節로 이어진다. 달이 있고 갖가지 등불을 내거는 이 날의 낭만적인 흥취에 비하면 이제까지의 명절 기분은 오히려 시시한 것이었단다. 특히 폭죽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은 갖가지 빛깔과 소리의 폭죽을 만들어 축제 분위기를 돋구었다. 사람은 밖으로 나가 달빛 밟기를 하며 갖가지 폭죽과 등불들을 즐긴다. 우리나라처럼 중국 여인들에게도 이 날은 하루쯤 외출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이 날이 지나서야 물경 두 달에 걸친 새해 맞이 명절 행사는 마무리가 되고 비로소 새해의 일거리를 준비하게 된다. 그래도 그 즐겁고 거창했던 기분들이 사그라들려면 아직도 한참은 지나야 한다. 생활 리듬이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국 사람들에게 그러한 명절 기분은 아직도 무척 중요한 듯하다. 당에서는 의도적으로 조용하고 검소한 명절을 유도하고 있지만 연말 연시의 분위기는 우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들떠 보인다.
도시 사람들의 정서 속에 아직도 이처럼 많은 풍습의 여운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농촌의 상황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국의 설날 풍속은 뜻밖에도 종교적인 색채를 품고 있다. 모든 풍습이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더욱 종교적으로 되어 모든 활동을 조심해서 했다. 모든 음식은 먼저 신불神佛에게 공양을 한 뒤에야 먹었으며, 자연스럽게 절을 찾아 참배를 하고 한 해의 평안을 기원했다. 혁명 이후로 종교가 소멸되었다고 말하는 요즈음도 그러한 풍습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런 풍습이 사람들의 정서에도 그다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지 않다. 특별히 중국의 풍속이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나는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있었을 그러한 풍습들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무척 이상하다고 느꼈다. 종교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새삼 그들에게 남아 있는 삶 속의 정서가 오히려 더 생명 있는 종교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