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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암 원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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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3년 02월 132호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암자는 규모도 작고 마을 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사자암을 찾았다. 아름드리 거목부터 얼굴을 내미는 사자암은 이런 상상의 저편에 자리 하고 있다. 마을뒤쪽으로 언덕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자암은 자리를 내어 준 마을 산자락의 잔잔함과 보기 좋게 빛 바랜 사찰이 품어 내는 멋으로 도심 속에 있음을 잊게 했다.
이곳 사자암에 한국 불교의 전통 범패 의식을 지키고자 하는 원력으로 삼십 여 년을 수행해 온 원명스님이
계시다. 경내의 종각 옆, 스님이 거처하는 방으로 우리가 들어서자 원명스님은 다소 불편한 몸으로 우리를 맞았다.
스님은 얼마 전 교통사고를 입었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데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아직도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단다. 범패하는 스님이라 풍채가 넉넉하고 목소리도 괄괄할 듯싶었는데, 스님은 기대와 달리 크지 않은 체구와 작고 고운 얼굴 그리고 쌍커플이 서글하게 진 눈매를 하고 있어서 여리고 맑은 성품을 지닌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일단 말씀을 시작하면 멈칫거림 없이 이야기를 빠르고 단호하게 풀어 나가 여리고 자그마한 느낌은 이내 찾을 수 없다. 어물어물 대충 하는 따위의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범패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자 스님은 웃으며 공부 많이 해왔냐고 반문한다. 범패에 대해 정말로 알고 싶으면 그만한 열의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울러 물러서지 않는 노력과 끈기만 있다면 범패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열아홉살에 이곳 사자암으로 출가하여 지금은 입적한 대은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셨다. 대은스님은 중이 중물이 들려면 의식 절차를 알아야 한다며 원명스님에게 범패를 배워 오라고 했단다. 처음 잠깐은 벽웅스님의 지도를 받다가 그 뒤 신촌 봉원사에 있는 송암스님에게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송암스님과의 인연은 바로 범패와 스님의 운명적인 인연이 시작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영산재를 배울 때를 빼고는 거의 혼자 송암스님에게 개인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송암스님의 입 모양, 소리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바로 앞에 바싹 앉아서 눈길 한번 마음 한번 놓은 적이 없었단다. 그래야만 그 미묘한 음과 음의 굴곡을 정확하게 쫓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그때의 모습을 회고하면서 참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였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제가 배우려고 하도 애쓰니까 송암스님도 무척 기뻐하며 힘 닫는 대로 배움을 주려 마음을 써 주었어요. 스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아침 공양 전에 한 시간쯤 범패를 가르쳐 주었고, 저는 그때 배운 것을 밤 열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연습했습니다.” 원명스님은 송암스님의 범패를 모두 전수 받은 사람으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스스로 자신을 지목하는데 자신에 대한 신뢰와 확신은 그만한 세월을 채워 오는 데 결코 후회의 잔재를 남기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스님은 “후학에게 전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의식이란 의식은 모두 배웠습니다. 그래야만 님에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안다는 것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거든요” 그 미묘한 소리의 세계를 경험하며 완전하게 체득한 경지, 그것은 하루 이틀의 염원에서 비롯될 수 없는 일이지 싶다.
범패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범패와 범음과 어산, 그리고 인도의 소리가 하나를 가리키는 명칭인데, 이 가운데에서 중국에서의 어산과 인도 소리에 대한 스님의 설명이 흥미롭다. 영산회상에서 묘음보살이 음정 공양을 올린 데서 시작되었다는 범패가 중국에서는 물고기를 보며 음악의 율동을 얻었다 해서 그 이름을 어산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의 소리는 말 그대로 지명을 따서 지은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의식을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범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신라의 진감선사가 옥천사에 범패를 보급한 때로 본다. 고 하였다. 크고 작은 모든 재에 불리워지는 범패가 우리나라 삼대 성악곡 가운데에 하나임을 강조하며 이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운율에 바탕이 되어 온 것임을 상기시켰다. 요즘 흔히 하는 염불이 범패의 종류로 보면 안채비 소리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리고 겉채비들(범패승들)이 하는 것으로는 훗소리와 짓소리로 분류되는데, 훗소리는 대개 독송이고 짓소리는 굴곡이 심하고 합창으로 불리워지는 것이라 한다.
1911년 사찰령 이후 범패 의식은 존재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며 스님은 못내 안타까워했다. 그 뒤로는 비구 대처 분규가 한 몫을 했겠고 조계종의 선 중심으로 인한 의식의 경시가 범패 의식이 소멸되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씀했다. “조계종에서는 범패 의식을 대처승들이나 하는 것으로 터부시하고 의식의 간소화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흐름이 컸습니다. 요즈음 제대로 절 집안 재의식을 하는 젊은 스님네가 얼마나 됩니까” 하는 스님 모습엔 안타까움이 역력해 보였다. 전수하려고 해도 배우려는 사람들의 열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열성은
범패 의식에 대한 중요함을 인식하는 분위기에서 쉬이 싹트는 것이니, 스님의 걱정이 무리가 아닐 것이다.
사실 스님은 선방을 돌아다니며 지낸 세월이 배운 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때 사년쯤 일심으로 범패를 배우면서도 언젠가 참선 정진을 하러 떠나리라는 생각이 굳었다고 한다. 속으로 딴 마음 품고서 송암스님이 서운해 할까봐 진작은 말씀 한 번 드리지 않았다며 웃었다. 물론 떠나기 사흘 전 송암스님께 말씀드릴 때는 심정이 그리 편치 않았겠지만. 그렇게 웃는 모습이 마치 지난날 커다란 비밀을 내내 간직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낸 그 스릴을 기억하는 듯한 재미난 표정이다. 송암스님은 철썩 같이 믿던 원명스님이 떠난다니까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송암스님은 다른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중이 공부하러 간다는 것은 말릴 수、없는 일이라며 열심히 정진하라고 격려하고 보내 주었단다.
스님은 십여 년 선방을 다니면서 여간해서 범패 하는 내색을 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했다. 선방에 있는 동안은 본성 자리를 찾는 수행자의 근본에 충실하려는 일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두어 번 범패를 잘 한다는 것이 들통이 난적이 있다며 눈가에 웃음을 띄웠다.
한번은 선방에 다닌 지 십 년 남짓 되었을 때였고, 또 한번은 극락암에서 결제중이었을때라고 했다.
“하루는 경봉스님께서 돌아가신 큰스님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종사영반을 할 사람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해요. 그래서 내가 스님 걱정을 모른 척 하기가 어려워 ‘스님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하였더니 경봉스님께서 의아한 듯 ‘네가 잘 할 수 있어’하며 믿기지 않은 투로 물어 오셨어요. 내친 걸음이라 혼신의 힘을 다해 제사를 지내주었지요. 그랬더니 스님은 뒤에 앉아 연신 즐거워하며 선방에 수자가 많으니 별 사람이 다 있다고 법상에서 맹상군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중국에 하루 삼천 명의 빈객을 대접하는 맹상군이 있었는데 한 번은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어 도망쳐야 했지요. 그런데 성문은 닭 울음 소리가 들려야 열리는데 아직 그 시간은 멀어서 꼭 죽게 되었지요. 마침 여러 사람 가운데 닭 울음 소리와 똑같이 흉내 내는 사람이 있어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지요.”
“범패는 선정의 극치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배울 때는 몰랐는데 선방 다니면서 그 묘미를 알게 되었지요. 해제 때 산에 올라 범패 소리를 해 보면 그 환희심은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음악은 흥을 내지만 범패는 굴곡이 심해서 한 생각만 달리 해도 음이 다른 길로 빠지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선정에 들듯, 그 세계에 문리가 터득되면 듣는 이도 부르는 이도 모두 범패 선열로 이른다는 말씀을 하였다. 범패를 배우는 요소가 어려운 것이 범패의 특징이기도 하다. 스님은 그 요소를 네 가지로 든다. 우선은 그 소리가 이 세상에 있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고, 둘째는 ‘어’도 ‘아’도 아닌 중간 음을 발음하는 것, 셋째로 몇 안 되는 소절을 늘여서 최대한 길고 굴곡을 많이 해야 하며, 끝으로 불규칙 변화가 있다는 것 들이다. 말 그대로 묘음을 내자니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러나 또한 얼마나 설레이는 일인가 사자암에서 주지를 맡은 지 십육 년.
스님은 그 동안 후학을 양성하려는 시도를 몇 차례 해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들에게 끈기와 인내심이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큰 문제라고 한다. 한 고비만 참고 이겨 내면 되는데…’ 하며 스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쉽게 배우려는 생각이 좋지 않아요. 저는 일부러 녹음기를 사용하지 않고 배웠어요. 녹음으로 배울 성질이 아니거든요.” 이 세상에 없는 묘음을 이 세상 사람이 내려고 할 때 녹음기가 얼마쯤 배움을 줄 것인지 하는 말씀이다. 입 모양을 보아야 정확한 음을 접할 수 있고 그래야 묘음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처럼은 아니어도 평생 중노릇 하려면 적어도 예불의식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어야지요. 요즈음 스님네도 잘 못하니 행자들이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의식이라는 것은 종교의 생명입니다.”
스님은 의식의 대화가 있어야 한다면 전통에 뿌리를 둔 변화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날은 선 중심 사상이었지만 이제는 현대화에 따라 변화되어서 불교 전통 범패 의식이 등한시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지나치게 풀어 설명하고 드러내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변화입니까? 이론적으로 모두 설명되는 것이 훌륭한 종교는 아니지요. 그러므로 저는 오늘의 불교 체계가 이원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법전과 법전을 따로 두어서 완벽한 현대화와 전통 의식이 병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새벽의 고요함에 파문을 내며 울려 오는 도량석과 총성 소리에 우리는 감히 큰 소리로 호흡하기에도 벅찬 환희심을 안고 하루를 시작해 본 적이 있으리라. 분명히 신비함과 장엄함은 불교의 큰 매력임에 틀림없다.
스님에게 범패와 선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망상이나 허튼 몸짓 하나만 일어도 안 되고 순일 무잡하게 임해야만 굽이굽이 힘차고 은은하게 충만되는 것은 범패와 선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후학에게 이를 전수해야 한다는 말씀을 거듭하였다. 마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몸이 완쾌되면 자리를 정리하고 만사를 제치고 원력을 발현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배우려는 이들의 노력, 그들의 진심 어린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였다.
풍경 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람에 짜그랑 거린다. 겨울의 건조함으로 희뿌연 흙빛 도량에 곧 봄이 싹트는 윤삼월 삼짓 날 선남 선녀가 그득하게 될 것이다. 스님이 그날 영산재를 올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가장 잘하고 호흡이 맞는 범패 스님들을 모실 것이라며 벌써부터 신명나 한다. 윤삼월 봄날 아지랭이 피어오르 듯 불법 장엄세계를 재현하여 저마다 가슴속에 법열을 느끼게 될 듯하다.
“소식이 깜깜이구먼요. 우리 원명스님 많이 아프셔요, 그래서 큰 걱정이예요.”나오면서 만난 보살님의 걱정 소리이다. 차마 범패 소리 좀 들려 달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는 봄날 스님의 범패 소리에 힘입어 충만한 불국세계에 인도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