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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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동출
1993년 02월 132호
내 눈빛이 흐려지고 출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때 나는 회장터나 시장바닥을 찾는다.
출가 수행자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 부처님을 찾지 않고 왜 저자거리의 구석진 곳을 배회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육신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또 어렵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게으름과 잃어버린 양심을 찾고자 함이다. 그곳에 가보면 강요된 느낌이나 체험이 아니라 온몸으로 울려오는 ‘그 무엇’을 체득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무상한 세월의 흐름 위에서, 어려운 내 이웃들의 얼굴에서 들려오는 채찍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부처님 최후의 말씀이 뼈끝으로 울려 전해짐을 느낀다.
요즈음 신세대 라는 말이 자주 등장 한다. 사회 일부에서는 신세대들의 의식이나 문화가 기성 세대와는 많이들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신세대의 의식이나 문화가 사회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득 나는 우리 승가에도 이 신세대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날 승가의 기성 세대가 보여주고 있는 혼란한 모습을 이른바 신세대 승가가 바로잡고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희망도 가져 본다. 그러면 불교의 신세대, 곧 젊은 승가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도식적으로 분류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해방 뒤에 비구 대처간의 정화 혼란기를 겪지 않은 세대. 칠 팔십년대 출가한 세대. 세속연령이 이십대에서 사십대 초반인 세대. 많은 수가 출가 전에 학생회와 청년회의 신행 활동이 계기가 되어 발심한 세대. 잘못 인식된 불립문자不入文字의 관습에서 벗어나 교학과 세속 학문의 필요성을 충분이 인식하고 있는 세대. 칠, 팔십년대 한국 사회의 혼란기가 주는 사고의 영향을 받은 세대. 세간과 출세간을 둘로 보지 않는 세대. 세속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려는 세대. 종단의 개혁과 중흥을 염원하는 세대.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반 위에 형성된 젊은 승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총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사홍서원의 실천일 것이다. 젊은 승가들은 사홍서원의 큰 원력 아래서 그것들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왜 젊은 승가의 역할을 종단 개혁이나 불교 대중화 운동처럼 현실적으로 급박한 문제에 대한 것으로 말하지 않고 사홍서원의 대전제를 우선으로 하는 이 젊은 승가의 수행이 중생을 제도하고,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우고, 불도를 이루는 일을 끊임 없이 근본적으로 점검하지 않고서는 어떤 운동도 모래 위에 집 짓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식과 내걸고 있는 명분은 살아있지만 내적 역량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젊은 승가의 역할과 운동도 중도에서 꺾이게 되고 기성 세대와 같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왜 내적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하면, 목소리가 신선하다고 해서 결코 젊은 승가의 구성원들이 완성된 인격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걸고 있는 명분 이상으로 그것을 실천 할 수 있는 공부에 충실하는 것이 젊은 승의 당면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성 세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기성 세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만으로 젊은 승가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면 젊은 승가의 모든 대중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운동에 전체적인 교육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을 때에만 전체 젊은 승가의 의식을 고르게 공유 할 수 있게 되고 역할과 그에 따른 방법론도 모색되리라고 본다. ,”
현재는 강원과 선원과 대학들이 서로 교육환경과 내용이 너무나 다르고 체계화되거나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젊은 승가는 의식을 고르게 공유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 환경과 내용, 과정 들을 체계화하여 젊은 승가의 대중들이 피나게 공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는 우리들의 의식과 행동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극복하는 일이다.
두드러진 현상은 무관심과 체념이며 또한 개인주의도 얼핏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것 같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동질적인 요소이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종단이나 사회의 발전에 무관심하고, 그 무관심이 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극도의 개인주의로 변모되는 모습이 우리 젊은 승가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포교당을 세우고 강사가 되고 조실이 되려는 개인적인 목표는 있을 망정 전체 대중과 집단의 발전을 생각하는 본질적인 목적은 상실되고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발전은, 어느 한편으로 보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승가의 결집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젊은 승가의 대중들이 서로 격려하고 질책해 주는 탁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수행공동체적 도반 의식의 회복은 전체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제반 역량을 강화하고 도반 의식을 바탕으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일과 함께 해야 할 일이 실천 운동이다.
모든 것은 행위에 의하여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고 과果가 되는 것이다. 저마다 근기와 역량에 따라서 전체 발전의 목표 아래 구체적인 실천 운동을 전개할 때 변화된 모습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와는 무언가 다른 교육을 받고서도 막상 현장에서의 실천은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결코 신세대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천 운동에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만큼 과거에서 현재까지 누적된 모순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퇴전의 원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출가의 목적이 안정된 틀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토대에서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세대, 곧 젊은 승가의 역할이 결코 과거 기성 세대와의 단절을 가져와서도 안될 것이다. 단절할 것은 악습과 모순이거니와 계승할 것까지도 부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늘 서로가 모여 공부하고 경책하고 탁마하여 뜻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