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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깊은 오대산에서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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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황패강 1993년 02월 132호
Ⅰ
올해는 예년에 없이 큰 눈이 펑펑 내렸다. 티끌세상의 험상스러운 몰골을 그토록 감쪽 같이 감싸 주는 눈의 조화를 새삼 생각하면서 필자의 마음은 어느덧 서울의 한복판을 벗어나 태백산 줄기의 한지맥인 오대산의 설봉 앞에 다다랐다.
한국 불자들의 성지, 오대산. 옛날 신라의 신효信孝는 이곳을 가거지可居地로 삼고 수도하여 득도하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초 신효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공주에서 살았다. 그는 육식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날마다 들과 산으로 나가 활로 새를 잡아서는 어머니에게 대접하였다. 하루는 들에서 마침 날아가는 두루미 다섯 마리를 발견하고 활을 쏘았는데, 새는 날아가 버리고 두루미의 깃털 하나만 땅에 떨어졌다. 신효는 두루미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을 집어 들고 무심코 눈에 갖다 대었더니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깃털 너머로 사람들이 온통 짐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를 어찌하랴! 더 이상 활을 들고 짐승을 겨냥하여 쏠 수 없게 되었다.
짐승을 잡지 못하게 되었으니, 육류 없는 밥상을 언짢아 하는 어머니를 어찌 봉양 할 것인지 막막하였다. 생각다 못해 신효는 자기 허벅지 살을 칼로 도려 내어 어머니의 찬거리로 삼았다. 임금님이 마침 사냥을 나왔다가 시뻘건 핏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수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알아 보니, 신효라는 효자가 어머니 봉양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면서 흘린 피가 냇물을 빨갛게 물들인 것이라고 했다. 임금은 신효의 효심을 갸륵하게 여겨, 어머니 봉양에 부족함이 없도록 전곡을 넉넉히 내려 주었다. 그 뒤 어머니가 천수를 다 살고 세상을 떠나자 신효는 집을 절에 바치고 공주 땅을 떠나 경주를 거쳐 북으로 올라갔다. 가는 곳마다 두루미의 깃털로 눈앞을 가리고 살펴보는데, 사람들이 여전히 짐승으로만 보였다. 강릉 근처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조금씩 제 모습으로 보였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신효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오대산으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모두 제 모양으로 보였다. ‘과연 참, 여기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다.’ (<삼국유사> 에서는 관음이 살 곳을 가르쳐 준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한 신효는 그 곳에 작은 암자를 짓고 눌러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던 비구승 다섯이 신효를 찾아 왔다. 느닷없이 하는 말이 ‘그대가 맡아 가지고 있는 나의 가사자락 한 폭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신효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주워 간직하고 있는 깃털을 말하는 것이오”신효가 깃털을 내주니 비구승 하나가 그것을 받아서, 입고 있던 가사의 떨어진 자리에 갖다 붙이니 그대로 가사 자락이 되었다. 가사 자력을 채워 붙이고 나서 일행은 신효와 작별하고 길을 떠났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중에야 이들이 다섯 성중聖衆(삼화사지三和寺誌에서는 이들을 석가, 관음, 문수, 대세지, 지장으로 표시하고 있다)의 화신임을 알았다. 신효가 그때 터를 잡고 거처한 곳이 지금의 월정사 자리라고 한다.
자신의 육신을 살찌우려고 남의 살고기를 탐하는 비정非情의 인생을 은연중 경계하는 이야기이다. 성중의 가사 한폭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신효의 깜캄한 눈을 띄워 인간의 탐욕과 오탁을 깨달아 알게 하였다. 우리 가운데 신효의 깃털과 같은 것이 없음을 다행으로 아는 이는 없는가? 오늘 우리도 신효의 깃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지 않는가? 과연 어엿한 사람 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일까? 행여 ‘여우’ 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을까? 혹은 승냥이, 아니면 곰, 호랑이, 쥐, 살쾡이... 멋을 한껏 부린 양장한 ‘여우’, 허세를 부린 ‘고슴도치’라면 이만 저만한 가관이 아니리라. 호화스러운 외제차를 씽씽 몰고 다니는 승냥이’나 ‘곰’ 또는 ‘호랑이’를 연상해 보라. 아아, 우리의 서울은 행여 이와 같은 동물들의 사치스러운 방목장이 되어 버렸거나. 지금 되어 가고 있거나, 장차 되어 갈 것은 아닌지? 더 나쁜 맹수들이 들끓는 악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아마존의 원시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나 없이 그 깃털 옆에서 얼마만큼이라도 떳떳해질 수 있기를 빌어 본다. 비록 ‘신효의 깃털’은 없더라도 우리 모두 위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리라. 우리 서울은 결단코 동물원이 되지 않았고, 되고 있지 않으며, 되지 않을 것이라고.

Ⅱ
우리나라에서 불상을 볼 수 없는 불사 건물이 몇 군데 있다. 오대산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 그 하나에 든다. 오대산은 중대中臺를 가운데 두고 사방 동서남북에 네 뫼뿌리, 곧 동대, 서대, 남대, 북대가 있다. 이 다섯 뫼뿌리를 아울러서 ‘오대五臺 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 다섯 뫼뿌리에는 각기 보살의 진신眞身이 거처하고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동대 만월산萬月山에는 일만의 관음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머리로 하여 일만의 대세지보살. 남대 기린산騏鱗山에는 여덟의 큰 보살을 머리로 하여 일만 지장보살, 북대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를 머리로 하여 오백 대아라한大阿羅漢, 중대 풍로산風盧山(또는 지로산地盧山이라
고 함)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를 머리로 한 일만의 문수보살이 각각 몸을 나타낸다고 전한다. 오대산의 중대 상봉에 불골사리佛骨舍利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 바 거기에 적멸보궁이 자리하고 있다. 불타의 진골사리를 모신 자리에 구태어 사람이 만든 불상을 모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불상이 없다. 이런 연유로 하여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오대산은 여러 불, 보살의 진신을 친히 대할 수 있고, 불타의 진신사리에 배례할 수 있는, 다시 없이 소중한 불연佛緣의 성지가 되고 있다. 중대의 기슭에 있는 월정사月精寺에서 적멸보궁에 오르는 중도에 상원사上院寺가 있다. 상원사는 조선의 세조가 어첩御牒을 내려서 각별히 보호했던 원찰願刹이다.
세조는 늙음이 찾아든 만년에 이르러 집권 과정에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이를 반대하는 조정 충신을 피흘려 숙청 했던 지난 날을 뉘우치는 마음이 일어 더욱 불교에 잠심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대를 이을 왕자가 불의에 죽는, 마음 아픈 상고를 당했고, 왕 자신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 돌아 보면 이 모두가 업보 아닌 것이 없다. 그는 속죄하는 뜻에서 여러 가지 불사에 힘썼다.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의 권유로 받아들여 상원사를 중창한 것도 그가 힘쓴, 큰 불사의 하나였다. 그가 하필 상원사를 중창하여 원찰을 삼게 된 데는 유다른 인연이 있다. 세조가 앓았다는 괴질은 일종의 피부병으로 온몸이 심하게 가려워 견딜 수 없는 악질이었다.
만승萬乘의 임금으로 구하여 구하지 못할 것이 없는, 천하의 좋은 의술이나 신묘한 약으로도 그 병을 고칠 수가 없었다. 가려움에 시달리다 못해 왕은 마침내 불력에 기대기로 하고, 영험하다는 오대산의 상원사로 행차하여 몸소 불공을 드렸다. 때는 오뉴월의 한더위, 불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나온 세조는 그날 따라 등에 밴 땀이라도 씻어 낼 양으로 상원사 아래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로 나왔다.
사람을 물리치고 혼자가 된 왕은 벗은 몸을 스스럼 없이 냇물에 담구고 있었다. 가려운 증세로 온몸은 흉한 부스럼 투성이였다. 왕은 어느덧 눈을 감고 무심경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임금님, 제가 등을 밀어드릴까요?” 웬 동지의 음정이 들려왔다. 왕이 눈을 뜨고 보니 귀엽게 생긴 동자 하나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왕은 왠지 호감이 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응락하여 말했다. “응, 그래라.” 동자는 왕의 등뒤로 돌아와 물을 끼얹고 두 손으로 살살 문지르는데, 손길이 닿는 곳마다 어찌나 시원한지 몰랐다. 한참 등을 내맡기고 있던 세조는 거참, 시원하구나. 그런데 너는 임금님의 등을 밀어 드렸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하고 타이르듯 희롱의 말을 하였다. “그럼 임금님께서도 문수 동자가 등을 밀어드렸다는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 하는 말이 동자에게서 돌아왔다. 이 말에 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동자는 온데 간 데가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왕의 가려움증은 씻은 듯이 가시고, 온몸에 번졌던 부스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중대에 상주한다는 문수 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헌신하여 왕의 지성에 응현應現한것이다.
상원사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다. 하루는 세조가 법당에서 지성을 드리고 있을 때 고양이가 들어와 불상 아래로 가더니 받침대를 가리고 있던 휘장을 앞 발로 당겼다. 그러자 뜻밖에도 휘장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의 두 발이 드러나 보였다 세조를 해치려고 미리 휘장 뒤에 와 있던 자객의 두 발이었다. 칼을 쓸 겨를도 없이 자객은 수행했던 무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왔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을뻔했던 세조는 고양이 덕분에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비록 미물의 짐승이나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고양이의 은공을 잊지 못하여 세조는 그 고양이를 위해 특별히 공양전供養田을 상원사에 내렸다고 한다. 세상 권세가 무엇이기에 이를 위해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또 피로 피를 씻는 싸움을 그칠 수 없었던가. 세조는 새삼 애중이 엇갈리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아프게 느꼈음직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애증이 엇갈려 돌아가는 은구恩仇의 수레 바퀴에 내 한 몸 이미 맡겼으니...
지금도 신심이 돈독하고 인연이 있는 중생 앞에 헌신한다는 오대산의 여러 보살들을, 필자는 글이나 이야기로만 듣고 아직껏 내 눈으로, 내 마음으로 대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불연이 닿지 않았음인가? 세속의 업보가 미진한 때문인가? 애증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눈 깊은 오대산을 오를 때마다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