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우리나라에서 불상을 볼 수 없는 불사 건물이 몇 군데 있다. 오대산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 그 하나에 든다. 오대산은 중대中臺를 가운데 두고 사방 동서남북에 네 뫼뿌리, 곧 동대, 서대, 남대, 북대가 있다. 이 다섯 뫼뿌리를 아울러서 ‘오대五臺 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 다섯 뫼뿌리에는 각기 보살의 진신眞身이 거처하고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동대 만월산萬月山에는 일만의 관음보살, 서대 장령산長嶺山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머리로 하여 일만의 대세지보살. 남대 기린산騏鱗山에는 여덟의 큰 보살을 머리로 하여 일만 지장보살, 북대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를 머리로 하여 오백 대아라한大阿羅漢, 중대 풍로산風盧山(또는 지로산地盧山이라
고 함)에는 비로자나毘盧遮那를 머리로 한 일만의 문수보살이 각각 몸을 나타낸다고 전한다. 오대산의 중대 상봉에 불골사리佛骨舍利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 바 거기에 적멸보궁이 자리하고 있다. 불타의 진골사리를 모신 자리에 구태어 사람이 만든 불상을 모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불상이 없다. 이런 연유로 하여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오대산은 여러 불, 보살의 진신을 친히 대할 수 있고, 불타의 진신사리에 배례할 수 있는, 다시 없이 소중한 불연佛緣의 성지가 되고 있다. 중대의 기슭에 있는 월정사月精寺에서 적멸보궁에 오르는 중도에 상원사上院寺가 있다. 상원사는 조선의 세조가 어첩御牒을 내려서 각별히 보호했던 원찰願刹이다.
세조는 늙음이 찾아든 만년에 이르러 집권 과정에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이를 반대하는 조정 충신을 피흘려 숙청 했던 지난 날을 뉘우치는 마음이 일어 더욱 불교에 잠심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대를 이을 왕자가 불의에 죽는, 마음 아픈 상고를 당했고, 왕 자신은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 돌아 보면 이 모두가 업보 아닌 것이 없다. 그는 속죄하는 뜻에서 여러 가지 불사에 힘썼다.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의 권유로 받아들여 상원사를 중창한 것도 그가 힘쓴, 큰 불사의 하나였다. 그가 하필 상원사를 중창하여 원찰을 삼게 된 데는 유다른 인연이 있다. 세조가 앓았다는 괴질은 일종의 피부병으로 온몸이 심하게 가려워 견딜 수 없는 악질이었다.
만승萬乘의 임금으로 구하여 구하지 못할 것이 없는, 천하의 좋은 의술이나 신묘한 약으로도 그 병을 고칠 수가 없었다. 가려움에 시달리다 못해 왕은 마침내 불력에 기대기로 하고, 영험하다는 오대산의 상원사로 행차하여 몸소 불공을 드렸다. 때는 오뉴월의 한더위, 불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나온 세조는 그날 따라 등에 밴 땀이라도 씻어 낼 양으로 상원사 아래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로 나왔다.
사람을 물리치고 혼자가 된 왕은 벗은 몸을 스스럼 없이 냇물에 담구고 있었다. 가려운 증세로 온몸은 흉한 부스럼 투성이였다. 왕은 어느덧 눈을 감고 무심경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임금님, 제가 등을 밀어드릴까요?” 웬 동지의 음정이 들려왔다. 왕이 눈을 뜨고 보니 귀엽게 생긴 동자 하나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왕은 왠지 호감이 갔다.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응락하여 말했다. “응, 그래라.” 동자는 왕의 등뒤로 돌아와 물을 끼얹고 두 손으로 살살 문지르는데, 손길이 닿는 곳마다 어찌나 시원한지 몰랐다. 한참 등을 내맡기고 있던 세조는 거참, 시원하구나. 그런데 너는 임금님의 등을 밀어 드렸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하고 타이르듯 희롱의 말을 하였다. “그럼 임금님께서도 문수 동자가 등을 밀어드렸다는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 하는 말이 동자에게서 돌아왔다. 이 말에 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동자는 온데 간 데가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왕의 가려움증은 씻은 듯이 가시고, 온몸에 번졌던 부스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중대에 상주한다는 문수 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헌신하여 왕의 지성에 응현應現한것이다.
상원사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다. 하루는 세조가 법당에서 지성을 드리고 있을 때 고양이가 들어와 불상 아래로 가더니 받침대를 가리고 있던 휘장을 앞 발로 당겼다. 그러자 뜻밖에도 휘장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의 두 발이 드러나 보였다 세조를 해치려고 미리 휘장 뒤에 와 있던 자객의 두 발이었다. 칼을 쓸 겨를도 없이 자객은 수행했던 무인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왔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을뻔했던 세조는 고양이 덕분에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비록 미물의 짐승이나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고양이의 은공을 잊지 못하여 세조는 그 고양이를 위해 특별히 공양전供養田을 상원사에 내렸다고 한다. 세상 권세가 무엇이기에 이를 위해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또 피로 피를 씻는 싸움을 그칠 수 없었던가. 세조는 새삼 애중이 엇갈리는 인간사의 무상함을 아프게 느꼈음직도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애증이 엇갈려 돌아가는 은구恩仇의 수레 바퀴에 내 한 몸 이미 맡겼으니...
지금도 신심이 돈독하고 인연이 있는 중생 앞에 헌신한다는 오대산의 여러 보살들을, 필자는 글이나 이야기로만 듣고 아직껏 내 눈으로, 내 마음으로 대하고 받아들인 적이 없으니 불연이 닿지 않았음인가? 세속의 업보가 미진한 때문인가? 애증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눈 깊은 오대산을 오를 때마다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