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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선련사(禪蓮寺) 삼우(三友)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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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철순 1990년 10월 104호
삼우스님은 한국 승려로서는 최초로 해외에서 서양인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계시는 분이다.
스님은 1965년 혈혈단신으로 일본을 거쳐, 1967년 미국 뉴욕에 정착하면서 선련사(禪蓮寺)라는 선방을 개원하고 포교를 시작했다.
올해로 외국생활이 꼭 25년 째 접어든다.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를 비롯하여 미국, 멕시코 등 북미에서 선련사 국제불교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동안 눈푸른 서양 출가제자 12명, 재가제자 350명을 길러냈다. 지난 1982년, 1984년에 이어 6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얼마전에 일본에서 열린 조선학 국제학술대회에서「한국 민중불교의 기원과 발전」이라는 논문 발표를 마치고, 그 연장선에서 한국 초기선종사 연구를 위해 구산선문(九山禪門)을 답사하는 게 첫번째 목적이다.
또 외국제자들에게는 한국불교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므로 그들에게 한국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방문 목적의 하나다.
스님은 한국을 방문하여 그동안 보고 느낀 한국불교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한국 승려들이 예전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풍족해진 것 같아요. 사찰 형편이나 승려들의 수준이 옛날보다 나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나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는군요.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나태를 부채질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어려운 환경에서 오히려 더 진실해지고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불교인들이 좀 더 고생을 많이 해야 불교가 다져지고 번창해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해 오신 스님의 시각으로 볼 때 현재 한국 승려들의 행동양식이 이따금 충격적으로 느껴지시는가 보다.
이번에 출가제자 6명과 함께 “이제는 승려들도 가만히 앉아서 밥상이나 받아 먹을 때는 지났다고 봐요 대중과 함께 호홉하면서 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스님들이 인사성이 부족하고 아랫사람이나 재가신도들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이런 점에서 승려들이 반성할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반성이 병행될 때 향상성(向上性)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어요”

스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불교를 ‘사판(事判)불교-마당불교’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오늘의 한국불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전제된 데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는 이것이다’ 혹은 ‘불교는 이래야만 된다’는 식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의 틀 속에서 형식적인 계율정신만을 강조하는 전통불교에 대한 스님의 비판은 자못 날카롭다.
“그동안 출가중심의 대승불교가 범한 오류 중에는 형식적인 계율정신을 고집한 나머지 아만과 고집의 벽만 두텁게 만든 점이 있어요. 현대는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양지의 시대인데 이런 때일수록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계율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봐요.”
스님은 그동안 민중불교를 공부해 오면서 올바른 역사인식 위에서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현재 한국불교는 탁류(濁流)의 시대를 맞고 있어요. 배타적인 이판(理判)불교의 둑은 무너졌다고 봐요. 새로운 재가불교운동도 자생능력을 갖추면서 일어나고 있고, 절집 스님들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포교활동은 물론 문학·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이제 불교도 보다 다각적인 방법에서 모색하고 실험되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한국불교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사실 오늘날처럼 무수한 운동과 주의·주장이 홍수처럼 범람하던 시대도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홍수를 만나, 우리 모두 흘러가는 상황에서는 옥(玉)과 돌을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에 대한 평가는 뒷날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이야기를 돌려 스님께 절집과 인연이 맺어진 사연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달리 길이 없었기 때문에 스님이 되었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스님이 출가하게 된 인연은 한 편의 그림 같은 소설처럼 들련다.
“저는 오갈 데 없는 고아출신이었어요. 어릴 때는 책을 읽고 싶은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 생각해낸 게 서점에 취직하면 뜻을 이룰 수 있겠다 싶어,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걸어가면서 책방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허탕만 쳤어요. 실망하여 터덜터덜 안국동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기와집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곳이 바로 조계사인 줄도 모르고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을 여니 수위가 이곳은 절이라고 하면서 ‘이런 도회에서 출가하는 것 보다 깊은 산 속에 가서 출가해야 훌륭한 스님이 된다’고 하며 삼각산 문수암에 가 보라고 일러주었어요. 그래서 물어물어 산을 올라가는데 마침 짙은 안개가 온 산을 덮어 지척을 구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한 비구니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스님이 자신의 절로 안내하여 마루에 앉힌 뒤 찬물 한 그릇을 떠 주며 마시라고 권했어요.
지금도 그때 그 스님의 목마른 나그네의 갈증을 풀어주는 무심(無心)에서 나오는 자상하고 친절한 자비심에서 느꼈던 깊은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다음날 문수암을 찾아 갔으나 이미 대중이 꽉 차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며, 직지사에 가면 큰 스님이 계시니 그리로 가보라고 일러주었어요. 그런데 직지사에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상주 남장사로 가서 거기서 행자생활을 시작했어요.
행자생활 3년 동안 불 때고,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드는 일을 차례대로 익히면서 대중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어요. 수계할 즈음해서 그곳 주지스님 밑에서 공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 절을 나와버렸어요.
행자의 신분으로 이 절 저 절을 다니다가 고성 옥천사에 머물게 되었는데 한 선객의 도움으로 큰스님 계신 곳을 알아 찾아간 곳이 부산 범어사에요.
그때가 1960년 스무 살되던 해인데, 동산(東山)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고 설봉(雪峰)스님께 선을 배웠어요”
선재동자가 도를 이루고자 선지식을 찾아가듯 스님도 그렇게 하여 불법과 인연이 맺어졌다.

해외 포교활동에 있어서 스님은 단연 선각자이며 개척자이다.
요즈음은 스님들의 해외유학 및 나들이도 잦은 일이 되었고, 외국에서의 포교활동도 매우 활발한 듯이 보이나 사실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 승려로서 북미 쪽에서 포교활동을 벌이는 스님은 약 60여 명이며 사찰도 40여 개가 되지만, 거의 대부분 교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그것은 한국에서 하는 포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결코 새로운 차원의 불교는 아니에요. 어떤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장래성이 부족한 점도 있어요. 대부분의 한국 스님들이 언어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재래적인 보살불교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또 자라나는 젊은 세대를 이끌 수 있는 확고한 수행능력과 수행자로서의 인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스님은 처음부터 서양인을 상대로 서양불교를 시작했다.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당시에는 나에게 주어진 해결하기에 바빠서 일을 어려운 줄도 몰랐고, 그 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방 값이 싼 곳을 얻느라고 지하실에서 7년 간 산 적도 있어요. 그때 몸에 병을 얻어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로 인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종교인의 생활은 남을 의식하기 이전에 ‘참-진실’ 그 자체여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면서 대승문화권을 이루었듯이 이제 불교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법되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불교를 알기 위해 찾아오는 서양인들에게 불법을 올바르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역사에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그 옛날 구법(求法)을 위해 생사를 걸었던 선지식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올바른 지도자상의 정립을 첫째로 꼽는다.
한국불교가 현대화, 민주화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승려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의식을 갖고 인격적으로나 수행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신다.
스님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없으신지 하고 여쭈었더니,
“그동안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벌인 스님은 나 말고도 구산스님과 승산스님을 꼽을 수 있어요. 이미 열반하신 구산스님의 제자들은 각 분야에서 그 활동이 두드러져 서양에 있어서 한국불교를 알리는데 많은 공헌을 하고 있어요. 조만간 이처럼 서양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볼 생각이에요. 그래서 서로 유대감을 돈독히 함은 물론 재서양(在西洋) 한국불교의 방향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에요.”
이야기를 마치고 이제 서울의 거리에서도 눈푸른 스님들을 좀 더 흔하게 볼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한국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멀리 이역땅까지 구도의 길을 나선, 조금은 어색한 모습쯤이야 아랑곳 없다는 듯 환한 모습의 서양 수좌들과 합장하며 ‘성불합시다’로 인사를 대신했다.

글 / 이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