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긴 했지만 한국의 복지 현실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일본에 처음 오면 장애인이 눈에 많이 띄어 일본은 장애인이 특히 많은 나라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곧 이들이 정상인들과 똑같이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복지 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대학 캠퍼스, 지하철 심지어는 일반도로에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일본은 아마도 장애인들이 장애의 벽을 넘어 자신들의 꿈을 힘차게 펼칠 수 있는 행복한 나라인 듯 하나 그들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하며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보다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가을에는 한동안 바쁠 것 같아 평소 가보지 못한 절들을 여러 곳 다녔다. 교토와 나라의 경계선에 위치한 죠루리지(淨琉璃寺) 절도 좋은 날을 골라 길을 나섰다. 나라에서 그리 멀지는 않으나 이곳에 가는 버스가 하루에 서너 대 뿐이라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그야말로 하루종일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나라 킨테쯔(近鐵) 전철역에서 내리면 죠루리지 절 앞에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이 절은 일반도로에서 2㎞ 정도 벗어난 낮은 산 위에 위치하고 있어 절 앞에까지 가서 손님을 내려 주고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사람들을 싣고 간다. 일종의 죠루리지 절의 전세 버스인 셈이다. 오후 늦게 서너 명의 일행이 함께 타고 간다. 언덕 위를 올라가는 동안 들판 여기저기에 피안화彼岸花라 불리는 빨간 꽃이 피어 있어 길 가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절은 한적한 위치뿐만이 아니라 가람도 거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절의 산문은 너무 작아 마치 예쁜 집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다. 죠루리지 절의 가람배치는 연못을 중앙으로 해서 동쪽으로는 약사여래를 안치한 삼층탑이, 서쪽으로는 아홉의 아미타여래를 안치한 본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배치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방에 있는 정토(淨琉璃淨土) 즉 차안此岸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 약사여래이고, 태양이 지는 서방정토(極樂淨土) 즉 피안彼岸 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 아미타여래인 것을 상징하고 있다. 절에 들어서면 먼저 동쪽의 탑으로 가서 예배를 하고 연못을 한 바퀴 돌아온 후 서쪽의 본당 뒤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아미타여래를 예배한다. 이러한 가람배치와 더불어 아홉의 아미타여래를 안치한 것은 헤이안(平安) 시대 중엽부터 교토를 중심으로 유행되었으나, 여기만이 아홉 아미타여래상이 남아 있다. 절의 명칭은 창건 당시의 본존이었던 약사불의 정토인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에서 유래되었다.
연못의 형태는 물론이고 주위의 정원이나 꽃들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정원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에 본당으로 간다. 본당은 아홉의 아미타불을 안치하기 위해 정면 11칸, 측면 4칸으로 옆으로 긴 구조를 하고 있다. 해가 본당 뒤쪽으로 질 때 아미타불을 예배하기 위해 정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다. 춘분과 추분에는 해가 본당의 한가운데로 진다고 한다. 안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들린다. 좁은 공간에 아홉 부처님이 바로 눈앞에 앉아 계시는 광경에 참배객들은 압도당한다. 가장 큰 중존中尊(상 높이 224.2㎝)을 중앙에 안치하고 그리고 그보다 조금 작은 불상을 중존 좌우에 네 분씩 안치하고 있다. 또한 중존 앞의 문을 가장 크게 하고 각각 같은 크기의 작은 문들이 각 불상 앞에 하나씩 달려있어 하나 하나의 문을 통하여 각 불상을 배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중존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은 앞에 들어 내영인來迎印(下生印)을 하고 나머지 8체는 정인定印(上生印)을 하고 있다. 모두 연화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으며 뒤에 커다란 광배가 있다. 나무로 불상의 각 부분을 조립하여 만든 요세키쯔쿠리(寄木造)에 금박을 칠하고 있다. 상들의 전체적인 느낌은 소조塑造로 만든 것 같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이 불상 제작에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 듯 얼굴의 인상만 보아도 제각기 다르다. 우선 중존은 양 볼이 두툼하고 턱이 둥그스럼하여 원만한 상호를 하고 있으며, 비교적 낮으면서도 넓은 무릎 때문에 전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중존의 바로 왼쪽에 안치되어 있는 두 상도 아주 젊고 생동감 넘치게 보인다. 양끝의 두 상들의 상호에서는 긴장감이 약간 풀린 듯한 인상이며 그리고 한 상은 비만하고 또 한 상은 가늘어 다른 상들에 비해 약간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는 중존을 만든 장인의 제자들의 작품일 것이다.
이 상들을 만든 불사佛師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그 양식으로 보아 11세기 전반의 헤이안 중기에 교토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조죠(定朝) 스님과 그 제자들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조죠는 그 아버지인 고죠(康尙) 스님의 영향을 받아 원만하고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불상을 많이 제작했다. 당시 헤이안 시대의 안정 속에서 교토를 중심으로 많은 절과 불상이 만들어졌다. 당시 귀족들은 엄숙하고 정신성을 강조하던 불상보다는 소년 소녀와 같은 귀엽고 밝은, 나아가 원만하고 부드러운 불상의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불상이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주고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때는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을 때인 것 같다. 죠루리지 절에서 많은 사람들은 창건 당시 그대로의 원형에서 정토 극락세계를 보았을 것이며, 이 아홉 분의 부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많은 염원도 했을 것이다.
저녁이 다 되어 산문을 나오니 아까 타고 왔던 버스가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일행도 그대로이다. 약간 묘한 기분이다. 버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피안화는 저녁 노을 속에 더욱더 붉다. 정토세계를 조금이라도 느낀 것일까. 돌아오는 전철역에서 역무원 아저씨들이 훨체어를 탄 사람들을 안전하게 전철 안까지 안내하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