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해인>에서는 신년대담을 기획하였다.
그 주제인 ‘해인사의 출판문화의 현실과 과제’를 통하여 고려대장경 이후 현재 해인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출판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인터넷 포교를 통하여 미래 불교의 대안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종본] : 먼저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월간해인> 신년대담에 참석해 주신 데 대하여 주간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대담의 주제는 ‘해인사의 출판문화의 현실과 과제’로 정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쇄 출판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출판’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먼저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이신 원택 스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원택] : 장경각출판사는 1987년 10월경 합천군 출판사 제 1호로 등록되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 방침에 의해 출판사를 설립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후 점차 규제가 완화되어 저희 출판사가 처음으로 군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명칭에 관해서도 이견이 있었는데, 다른 편집진과 사중에서는 ‘해인사출판사’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큰스님 어록인 만큼 백련암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리가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큰스님 어록을 출판하고 앞으로 다른 스님께서 당신의 사상에 맞는 어록들을 출판하고자 하실 때 일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원활한 효율적 진행을 위해서 ‘장경각출판사’로 명칭을 정했습니다. 먼저 성철 큰스님의 어록을 내고 나서 해인사 출판사가 생기면 그 때 가서 합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당장 진행시켜야 할 일이 산적해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93년 10월까지 큰스님 어록과 돈오돈수사상을 선양하기 위한 ‘선림고경총서’ 총 37권을 완간하였습니다. 그 후 ‘윤회사상’과 관련한 기획 출판을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당시 불교인들까지 윤회를 믿지 않고 부처님의 방편설로만 보려는 경향을 우려하셨습니다. 이미 서양의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점에서, 예를 들면 50년대 미국에서 《전생을 찾아서》란 책이 이미 출판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불교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오히려 윤회를 믿지 않는, 바르지 못한 신앙활동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그래서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서로 다투어 출판하고 싶어하는 프랑스 자두마을의 틱낫한 스님과 관련한 책을 저희들은 이미 약 5년여 전부터 불지사의 김형균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소설붓다》 《반야심경》 《평화로움》 등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갖기 이전에 출판하였지요. 요즘의 인기를 보면서 왠지 뿌듯한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도 박범훈 님의 박사논문을 출간하였는데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우수도서로 지정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일본에서 유학하는 우리 학생들에 의해 《법구경학法句經學》이라는 제목으로 자료 정리를 해서 책으로 엮었는데, 이 역시 우수도서로 지정받은 일을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들어 저희 출판사가 이렇다할 활동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좋은 학술서적이나 자료를 발굴하여 출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종본] : ‘성철넷’이라는 인터넷 운영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원택] : 저희들이 ‘성철넷’ 운영의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당시 인터넷 사업은 한때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경제 소득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었지요. 앞으로 인터넷을 통하지 않은 포교는 포교라고 할 수 없다는, 지나치게 앞선 생각들이 팽배했던 것입니다. 이보다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큰스님의 생전의 모습과 말씀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데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스승이 없이 삶의 끝간데 모르면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인터넷은 젊은 층들이 주도하는데 과학문명이 가져다준 이기利器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바람직한 인터넷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불사 개념을 인터넷에 도입하여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사찰의 건물을 짓듯이 참여자들이 기와를 사고 주춧돌을 사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먼저 사찰 불사는 50대 연령층인 반면 인터넷 참여자는 20대를 전후한 세대였습니다. 이들에게 인터넷불사에 사찰불사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크나큰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법당불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비용이 억대가 넘어가는 등 경제적 부담이 상당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만, 서버를 저희들이 독립적으로 갖고 있어야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인터넷에 대해 잘 몰랐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화면구성과 전체기획의 두 분야 전문가를 모시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루 3~4백 명 정도의 참여자가 있을 정도지요. 《성철 스님 시봉 이야기》가 인기를 끌 때에는 하루 천여 명이 접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 포교는 아직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모르겠지만 직원을 두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경우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운영 프로그램의 다양화도 절실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포교는 계속 개발되어야 하고 또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점차 일반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청소년 상담과 같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불교가 앞장서서 살펴야 한다는 다양한 이유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종본]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율장 전문 출판사를 준비하고 계신 율원장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불교의 삼장三藏의 하나인 율장律藏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율원장 스님께서 지금까지 계획해 오셨거나 앞으로 해나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혜능] : 먼저 <율장>에 대해 그 동안 승속을 막론하고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불교에서 계율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정작 수지受持하여 실천하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소극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재가자들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율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자 스스로 부처님의 계율정신에 입각해서 자신의 일상을 점검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즉, 생활 속에서 계율 정신이 살아 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승가 내에서도 율장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선禪이나 경학經學 연구에 비하여 율장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켜야 할 어떤 의무로서가 아닌 현실의 수행으로서 율장정신이 살아 있게 해야 합니다. 부처님 생존시의 상황과 현재 지금의 상황 변화에 따른 차이를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율원생들도 2년밖에 안되는 과정 속에서 방대한 율장과 주석서를 다 살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율장 번역은 시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일차 번역이 되어 있는 한글 율장부터 다시 한 번 번역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머지않아 한문, 산스크리트본과 합해서 ‘통합대장경’에 대한 구상논의가 얘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일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동안 남전율장을 영역본, 일어본 그리고 대만 고웅高雄에 있는 원형사元亨寺에서 현대 중국어로 70권 분량으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야 백도수 님에 의해 1권이 번역되어 내년(2003)에 발행될 정도의 계획뿐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사분율》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율장의 개념과 내용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종단이 중심이 되어 해인사 율원에서도 율장 번역에 노력을 경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번역서가 대중적 호응에 힘입어 유가지로 발매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법공양 형태로 저희들 자체 내에서 경제적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대담에 참여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종본] : 한글대장경을 중역重譯한다고 하는데 《사분율》을 중역하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혜능 : 아직 구체화되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줄 압니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사분율》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척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미 한글대장경에 일차 번역이 되어 있으므로 중역을 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범산] : 번역자를 선택하는 일과 기간을 정하는 것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혜능] : 한역율장이 이미 번역되어 있으므로 중역하는 일은 조계종 교육원에서 제가 해 주었으면 하더군요. 그리고 교육원에서는 10년 정도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일차번역의 오자를 바로잡고 오역된 부분을 다소 수정한다면 한 5년여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남전율장도 이미 1권이 나와 제가 감수과정을 밟고 있으므로 역시 5년여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본] :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불사의 원만성취를 기원드립니다. 다음으로 해인사 포교 최일선에서 애쓰고 계시는 포교국장 스님께서 해인사 홈페이지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현진] : 해인사 홈페이지는 종무소 포교국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인사의 강원·선원·율원에 관해서는 간단하게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해인사 강원 사이트와 연결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단지 해인사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만 한정된 자료가 입력되어 겨우 체면 유지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택] : 외부에서 문의 같은 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현진] : 그 부분은 신행상담 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제가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인사 홈페이지는 해인사 모든 대중들이 참여해야 되는데, 포교국에만 맡고 있다고 한정시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문의에 대해 각자 전문적 영역을 담당하여 해인사의 다양한 입장들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반영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범산] : 얼마만한 사람들이 참여가 이루어집니까?
[현진] : 해인사 홈페이지는 2000년도에 개설되었는데 당시 ‘대불사건’으로 홍보 아닌 홍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하루에 몇 만 명이 참여했는데, 지금도 하루에 평균 3천여 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방문하는 이들도 온라인 방문자를 넘을 정도로 상당한 조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해인사 게시판에 조금 특이한 글을 올리면 많은 이들이 관심들 갖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발굴이 아쉬운 형편입니다.
[오성] : 해인사 홈페이지에서 해인사의 다양한 영역인 강원, 율원, 선원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성이 있겠군요.
[현진] :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해인사 홈페이지는 일방적으로 ‘해인사는 이런 곳이니까 오시오’ 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만 비공식 사이트로 <다음 카페>에 ‘해인사의 향기’라는 게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해인사는 이런 곳이다’라는 내용을 담는 곳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해인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해인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란입니다. 운영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활동하고 상담하며 관리는 해인사포교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회원수가 2천 5백여 명이 넘어 불교 관련 사이트에서는 꽤 이름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이들 참여자는 해인사를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해인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포교국만으로 참여자 욕구를 다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오성] : 그렇습니다. 종무소에서만 담당할 것이 아니라, 각각 전문분야별로 상담역할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예를 들어 경전에 관해서는 강원에서, 선에 관해서는 선원에서, 계율에 관해서는 율원에서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일반적 해인사 소개라든가, 신행·수련회 관계라든지 각종 행사에 관해서는 종무소에서 담당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홈페이지 운영이 알찬 내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범산] : 그런데 홈페이지 운영은 장점도 있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종전에는 유형적 훼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훼불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상이나 불교를 비방하는 글이 올라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종본] : 네, 그렇습니다. 이런 훼불관계도 호법국장 스님께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일동 웃음) 이에 대응하여 몇몇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애쓰고 계시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각각의 전문분야의 인터넷 담당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계속적인 인터넷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적은 인원과 애정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넷 참여의 기간과 원칙을 정해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현진] : 인터넷 포교의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먼저 인터넷을 통해 불교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에 접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신행 불교적 측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하나는 너무 불교를 쉽게 접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참여자가 알고자 하는 불교에 관하여 자료를 찾아보고 난 후에 문의를 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 없이 그냥 상담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은 불교를 접근하는 기본 태도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인터넷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지양해야 될 자세라고 봅니다.
[종본] : 아무래도 해인사가 이렇게 출판 포교가 활성화된 것은 출판 문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장경 판본이 모셔져 있는 공덕으로 생각됩니다. 보존실장께 이 부분에 대하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암] : 인쇄문화의 효시는 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1966년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로 751년 정도에 만들어진 것이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해인사에서 모시고 있는 고려대장경 판본은 고려 때 2번, 조선 때 9번, 일제 때 2번, 광복 후 1번 등 총 14번에 걸쳐 영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991년경 종림 스님에 의해 전산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문화는 인쇄문화에서 전자문화로 이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번역된 대장경을 하나로 묶어내는 ‘통합대장경’이 앞으로 요구될 텐데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98년에 전산화 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대장경 보존실에서 집중해서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보존관리대책을 마련하려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보존실장의 소임을 맡은 지난 1년은 보존에 대해 무지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존의 개념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키고 수리하는 일꾼’이라고나 할까요. 알고 보니 엄청난 과학적 실험과 보존 과학이 동원되어야 하는 최첨단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저희 대장경은 완간된 지 올해(2002)로 751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751살 먹은 생명체로 판본을 관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각 판본 하나하나의 나이, 체중, 건강상태는 물론 그 위치 등 사람의 호적정리와 같은 조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대장경에 대한 보존은 과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관상 지금까지 신비로울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미래에 물려 주어야 할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약 2만판, 전체의 25%정도 정리를 하였습니다. 호적정리 26개 항목, 건강진단 26개 항목으로, 전체 52개 항목을 정리해서 프로그램화 시켰습니다. 이를 토대로 경판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고 배치도를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살펴보면, 22000년 4천 5백판, 2001년 4천 1백판, 2002년 1만 3백판 정도 입력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행상황을 근거로 했을 때 아무리 빨리 입력한다 하여도 일년에 2만판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경판을 모두 정리하려면 앞으로도 5~6년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경판의 이미지 입력작업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문화재청의 계속사업으로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더불어 판가를 수리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판본을 본존하기 위해서는 판가보존이 먼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판의 원형조사나 온·습도 조사의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도 대장경 보존을 위한 중요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범산] : 제가 대장경 보존연구소 실장으로 있을 때 온습도는 지난 십여년간 조사한 것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암] : 그러한 자료는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자료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판각 조사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진] : 보존실장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와닿는 것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목판본을 해인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해인사의 출판물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 않나 봅니다.
[오성] : 그렇습니다. 국간판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해인사가 이미 사간판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판을 만들고 인쇄하고 개·보수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찰이 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벽송사판 등 불교판뿐만 아니라 인근 서원의 유가판까지 자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경판을 관리하기 힘들어지자 해인사로 옮겨오게 되어 지금은 그 수량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판에 얽힌 이야기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인사 출판현황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전국적으로 출판현황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인사의 출판이 여전히 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종본] : 어찌보면 해인사의 출판문화는 한국불교의 출판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불교계의 여러 잡지들을 보더라도 <해인>지의 영향을 받지 않은 데가 없지 않습니까?
[원철] :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해인>지도 새롭게 다시 한 번 재편집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표지라든가, 내용을 새롭게 해서 다시 한 번 앞서가는 노력을 경주하려 합니다. 이는 해인사뿐만 아니라 전체 불교 출판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택] : 그러한 계획을 듣게 되니 <해인>지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새롭습니다. 지금의 <해인>지 판형은 15년쯤 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 속에서도 잘 이끌어 왔는데 현 편집장 원철 스님께서 다시 한 번 재도약의 기회를 갖고자 한다니 기대가 큽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글자크기의 문제입니다. 작게 하니 읽기가 힘들고, 크게 하니 보기가 싫습니다. 그것은 디자인과 실용의 충돌이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시도는 칭찬과 비판이 항상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원철] : 10여 년 전만 해도 출판에 대한 관심이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출판보다는 인터넷 문화로 무게중심이 넘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출판 디자인이 나오더라도 대중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년간 발행된 <해인>지 전부에 대한 전산화를 올(2002년) 봄에 시작하여 11말(2002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이는 <해인>지 독자층인 젊은이들과 현대의 대중들의 기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창간호부터 전산화 하다보니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과월호의 양이 너무 방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용입력과 칼라 사진을 함께 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해인>지 특유의 맛을 인터넷에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젊은 층들에게는 이러한 편집의 맛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편집실에서 화주를 하고 원당암 혜암 문도회의 많은 후원,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 재무 스님께 손을 벌렸습니다.
[오성] : 그러고 보면 출판문화가 10년 정도의 주기로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강원에서 <수다라> <다로경권> <신행> 지가 출판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불교에 관해서 또는 스님들의 생활에 관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자가 흔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책들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학인스님들도 열정이 대단하였습니다. 그 후 타성에 젖고 관심 부족으로 인해 모두 폐간되었다가 얼마 전 다시 <다로경권>은 격월로 복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인사 강원에서는 내전과 관련하여 《치문》, 《치문사기》 등을 이미 전산화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구본舊本을 복사하여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색인작업과 함께 인쇄를 새롭게 하여 찾아보기도 쉽고 읽기도 쉽게 되었습니다. 특히 《치문》 교재와 《치문사기緇門私記》는 전국강원에서 가장 선호하는 교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종본] : 마지막으로 불교출판의 대중성에 관해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원택 스님과 현진 스님이 전국에 많은 독자팬을 확보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시봉일기》부터 말씀해 주시죠.
[원택] : 중앙일보에서 작년(2001) 4월 큰스님 평전을 연재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의 평전과 같은 글은 제가 쓰기에는 주제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여러 번 거절을 하였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큰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해 줄 것을 부탁받았습니다. 그래서 20여 년을 제가 큰스님 곁에서 시봉을 하였기에 ‘옆에서 본 큰스님 이야기’를 2001년 6월 1일부터 시작하여 6개월 동안 주 5회 총 127회를 연재하였습니다.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서 기자분에게는 어떤 초등학생이 ‘참선이 뭐냐’ ‘화두가 뭐냐’고 물어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제 글을 기획했던 오병상 기자님은 올해의 기자상을 받기도 하였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여러 군데 강연을 부탁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불교이야기를 쉽게 전하였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저 큰스님에 관해서 솔직 담백 과장없이 전달함으로써 큰스님의 수행과 정신을 쉽게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노력하였을 뿐입니다. 책은 약 20만권이 판매되었습니다. 특히 50 ~60대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자신들이 어른을 모셨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는 교육적 효과도 있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성철 스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큰스님의 이야기가 나와서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 줄 많은 글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현진] : 요즘 송광사 법정 스님, 백련암 원택 스님을 비롯해 원성 스님 등이 대중적 인기를 많이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도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불교적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퍽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동아일보에 ‘현진 스님의 산사이야기’를 올 해(2002) 후반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를 하게 된 계기는 지난 월드컵 관전평을 부탁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월드컵이 국민적 붐을 일으킬 때 다양한 시각으로 지면을 채우고자 했던 기자분들이 해인사의 축구가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해인사의 스님이 관전평을 써 주었으면 하는 요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연재의 글을 쓰기 전에 지난 번 나왔던 《삭발하는 날》 《잼있는 스님 이야기》 등을 열람해 보고 결정된 것이기도 합니다. 불교적 입장에서보다 스님들의 일상사를 위주로 평이하게 써 나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소재의 다양함을 발굴해 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저희 승가적 입장에서 보다도 신문사나 대중들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잡아 내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글은 올해(2002) 말로 마감을 하기로 했습니다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 준 부분에 대해서 고마움을 갖습니다. 포교적 측면에서도 얼마의 역할을 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낍니다.
[종본] :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해인>을 아끼고 후원해 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리면서 이번 신년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성·사진/백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