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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고려대장경판 보존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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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관암 2003년 01월 251호
현재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경판은 국간판(대장도감판·분사도감판)과 사간판寺刊板, 사간판私刊板, 유가문집판儒家文集板, 잡판 등인데 경판의 규모로 보나, 경판의 형태나 내용 그리고 시대로 보나 해인사는 한국 목판경판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판 가운데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정문화재로는 국보 32호인 국간판 81,258매와 국보 206호인 고려각판 2,724매와 보물 734호인 고려각판 110매와 비지정 경판 8,000여 경판이 있습니다. 경판의 그 가치와 중요성은 필언지부진筆言之不盡이나 독자들의 안목을 위해 몇 가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규모의 방대함과 완질이 보존된 세계 최고의 역사성을 자랑하며, 둘째로 대장경 연구의 모본母本이 되는 학술성과 대장경 목록 구성의 독창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신기에 가까운 판각 기술과 서체의 한결같은 아름다운 예술성을 자랑하며, 넷째로 호국 불교의 상징체요, 법보의 결정체로서 민족자존과 신앙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쇄문화의 선진성과 보존 상태의 우수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와 중요성을 지닌 고려대장경판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제반업무를 연구, 기획하고 집행하는 곳이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연구원>입니다.

보존 1단계 -판각초기 보존 노력-

그런데 대장경에 대한 보존 노력은 언제부터일까요?
판각된 지 752년 지난 목판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상태로 보아 대장경판의 보존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판각 준비 단계부터 있어 왔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서각과 보존을 염두에 둔 나무의 선별과 벌목 그리고 통나무를 바다의 갯벌 속에 3년을 묵힌 다음 판자로 켜서 소금물에 삶고 음지에서 말린 후 옻칠과 먹칠을 하는 등 경판에 대한 보존대책은 초기 단계에서부터 완벽하였습니다. 여기에 경판의 봉안장소 선정과 판전의 건물배치와 창틀의 규격을 살펴보면 보존에 대한 선인들의 노력에 감탄할 지경입니다.
현재 경판이 봉안되어 있는 터는 예로부터 삼재三災가 비켜간다는 길상지로서 뒤쪽 가야산 줄기의 산바람과 앞쪽의 남산 제일봉을 넘어 홍류동을 휘감아 흘러오는 계곡바람의 온·습이 조화롭게 머물고 소통되는 목판 보존의 최적지인 표고 650m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계절 일조율을 고려한 건물 배치와 추녀의 길이 그리고 신비로울 정도로 과학적인 상·하와 앞·뒤의 상이한 창틀의 규격과 방충 방습 항균 등 보존을 고려한 판전의 바닥 다지기 등 항구적인 보존을 위한 선열들의 지혜와 정성은 문화재 보존 과학에 있어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존 2단계 -산발적인 보존 노력-

이런 보존 노력의 토대 위에 대장경판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와 보존대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일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실제로 판전 안에서 경판을 만지며 조사 연구한 일은 일제시대에 일본학자들에 의해 조사 연구되어 일본어 자료집이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범술 선생, 서수생 교수, 지관 스님, 박상국 문화재위원, 김태녕 교수, 박상진 교수 분들에 의해 연구 조사되어 자료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이제 개인자격이나 정부가 아닌 해인사가 주축이 된 연구 보존을 위한 노력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960년에 시작한 대장경 정대불사는 대장경 수호에 뜻을 둔 신앙적인 보존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물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이 정대불사야말로 법보에 대한 신앙적인 실천이 되어 경판 수호와 보존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 것은 이후 그 어떤 보존책보다도 중요한 경판 보존의 근간을 이룬 일이었습니다.
다음은 1986년 시현 스님을 중심으로 해인사에서 정진하던 젊은 스님들에 의해 <고려대장경 연구회>가 발족되어 고려대장경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87년에 《고려대장경 자료집Ⅰ(205페이지)》과 《자료집Ⅱ(498페이지)》를 간행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조직인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연구원>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고려대장경 연구소>가 1990년에 종림 스님에 의해 설립되어 전산부와 보존부를 두었는데, 전산부를 중심으로 고려대장경 입력 작업인 ‘전자대장경’을 목표로 전산작업이 시작되어 98년에 완성하였으며, 보존부를 중심으로 보존과학 입장에서 보존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고 지원으로 5년간 기초조사를 실시하여 1995년 그 결과물인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을 위한 기초조사연구 (186페이지)》를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 1999년 고려대장경 연구소의 전산부는 사단법인체로 독립되어 서울로 옮겨가고 보존부는 해인사 부속 기관으로 남아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연구원>으로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보존 3단계 -체계적인 보존 노력-

지금까지의 보존 노력으로 경판의 보존 상태는 신비로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경판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경판의 정확한 숫자의 부재로 매수가 책자마다 틀리며, 국보며 세계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경판 하나하나에 대한 제원이 조사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원형보존을 위한 사진촬영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에 본 연구원에서는 (1)경판의 원형보존 (2)경판관리의 전산화 (3)경판의 가치와 중요성 선양에 따른 보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4)경판의 중·장기 보존책 마련이라는 필요성에 따라 1999년부터 문화재청과 해인사에서는 ‘해인사 고려대장경 디지털 영상화 및 기초자료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이라는 5개년 큰 프로젝트를 정부예산으로 입안하여 대장경판의 체계적이고 과학적 보존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1)경판의 배열도 작성 (2)경판의 제원조사 (3) 경판의 디지털 촬영 (4)경판의 전·후면 상태조사 (5)판가의 해체보수 (6)경판 마구리 보수 (7)사진과 자료에 의한 관리 프로그램화 작업 (8)판전 내 바닥 다지기로써, 이것은 경판의 ‘호적정리’에 해당하는 작업이며, 경판의 ‘건강진단서’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9년도에 동·서 사간판을 작업하였으며,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국간판 19,000매 경판을 작업하여 자료집 3집을 발간하였는데, 이는 전체 경판의 23%에 해당되는 작업량으로 아직 갈 길이 먼 초기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보존 사업은 752살 된 생명체를 다루는 작업이기에 사전 작업 계획이 치밀하여야 하며, 작업자의 엄정한 선별과 사전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문화재의 항구적인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보수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문화재 훼손의 주범은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꼭 인지하며 보존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