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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사고史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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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3년 01월 251호
고려와 조선왕조에 걸쳐 역대 왕조의 역사인 실록實錄을 보관하는 장소를 ‘사고史庫’ 또는 ‘사각史閣’이라고 하는데, 가야산 해인사는 고려 시대의 사고였다. 고려는 국초부터 실록을 편찬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없어지고, 1227년(고종 14)에 《명종실록》 두 본을 완성하여 각기 개경의 사관史館과 해인사에 보관했는데, 이것이 해인사 사고의 유래가 된다.
서적을 햇볕에 쬐어서 좀먹는 것을 방지하는 일을 ‘폭서曝書’ 또는 ‘쇄서書’라고 한다. 고려조에는 실록을 삼 년에 한 번씩 말렸는데, 이 일은 사관史官이 직접 내려와 관리 감독했다. 이는 홍애洪厓 홍간洪侃(? ~1304)이 고려 충렬왕 30년에 사서史書를 말리러 해인사로 가는 추옥섬秋玉蟾을 전송하는 시의 주註에 “고려에서 일찍이 해인사 가운데 역대 실록을 간직했는데, 사관으로 하여금 역말을 타고 가서 삼 년에 한 번 볕에 말리게 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성주로 옮겨 보관했다.(高麗嘗藏歷代實錄于此寺中 令史官乘驛 三年一焉 本朝移藏于星州)”라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홍애는 이 시에서

인간풍일불능도人間風日不能到 속진의 바람과 해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
보서옥첩여운위寶書玉牒如雲委 진귀한 서책이 구름처럼 쌓였네 (중략)
요지삼한이십삼대지실록遙知三韓二十三代之實錄 멀리서 알리라 삼한 이십삼대의 실록을
일일흔람운산중一一攬雲山中 일일이 구름 가린 산중에서 높이 들겠지

라고 읊었고, 이후로 급암及庵 민사평閔思平(1295~1359)도 쇄사하러 해인사로 가는 사관 최덕성崔德成을 전송한 장편시 가운데

운시삼재미도처云是三災未到處 삼재가 이르지 않는 곳이라 하니
삼한문적장기간三韓文籍藏其間 삼한의 문적 그 사이에 간직했네

라고 읊었다.

우리는 이상의 시를 통하여 당시 해인사가 사고로서의 조건이 훌륭히 갖추어져 실로 많은 삼한의 역사 문적이 이 곳에 보관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후일 조선 태조 7년(1398) 5월에 대장경판이 해인사에 안치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