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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봉황의 출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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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12월 250호
해인사 경내로 들어가는 삼문三門의 이름은 밖에서부터 차례로 홍하문紅霞門 봉황문鳳凰門 해탈문解脫門이다. 그런데 봉황문의 옛 이름은 봉하문鳳下門이라 했다고 한다.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1460년(세조 6) 한양에서 남쪽으로 유람하여 가야산 해인사에 이르러 하루를 묵으면서 절 안의 이름난 유적을 두루 탐방했다. 사숙재가 절을 떠날 무렵 호를 죽헌竹軒이라 하는 주지 스님이 절의 문 밖 수십 보까지 전송했는데, 이 때 절의 둘째 문을 가리키며 봉하문鳳下門이라 하고 그 뜰에 있는 작은 돌을 가리켜 봉명석鳳鳴石이라고 했다. 그 문과 돌의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유래인 즉, 죽헌 스님의 말에 의하면 “해인사를 처음 창건할 때 봉황이 내려와 돌 위에서 울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봉황은 천지간 뭇 날짐승의 우두머리인데, 《예기》 <예운편禮運篇>에서 기린·거북·용과 더불어 ‘네 가지 신령한 짐승(四靈獸)’이라고 일컫는다. 이들의 출현은 상서로운 조짐의 상징인데, 옛적 순舜 임금의 음악인 소韶의 연주가 끝나자 봉황이 와서 춤춘 일이 그 하나의 예이다.

개산開山 당시 봉황이 이 곳에 내려왔다는 전설은 해인사를 통해 불법이 장차 널리 전하게 될 것이라는 상서로운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오늘날까지 해인사는 실로 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모시고 있음으로 인하여 한국의 삼보 사찰 가운데 법보 사찰로서 위상이 뚜렷하다.

해인사는 올해 개산 12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를 즈음하여 앞으로 다가올 1200년을 위해 또 한 차례 봉황의 출현을 기대하고 싶다.□

* 필자 주:‘봉하문’ ‘봉명석’의 유래에 관한 기록은 강희맹의 시문집인 《사숙재집》 권1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