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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奈良) 호케지(法華寺) 절의 십일면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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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12월 250호
나라(奈良) 호케지(法華寺) 절의 십일면관음상 외국 생활은 사소한 생필품을 사는 정보에서부터 때로는 귀중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 특히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박물관과 절 등에 대한 정보는 박물관 신문과 일본 친구들로부터 주로 얻는다. 그들은 절의 특별 배관일이나 박물관 등의 전람회를 체크해서 가장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약도와 함께 가르쳐 주거나 같이 가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제는 여러 지역의 지리도 알게 되었고 혼자서도 쉽게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나라(奈良)에 있는 호케지(法華寺) 절의 십일면관음상은 전부터 가보고 싶었으나 장소는 물론이고 배관 시기도 알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이틀 정도(6월 5일, 6일) 통풍을 위해 비불秘佛로 모셔진 십일면관음상을 공개한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교토(京都) 역에서 나라 방면의 긴테쯔(近鐵) 전철 급행을 30분쯤 타고 가 야마토사이다이지(大和西大寺) 역에서 내려 한 5분 정도 걸어가면 나라 시대의 궁궐터였던 헤이죠쿄(平城京) 유적지가 나온다. 지금은 주작문朱雀門과 동원東院이 이미 복원을 마쳤고 태극전太極殿은 복원이 한창이다. 나라 시대에 수도가 이 곳 헤이죠쿄로 이전되면서 아스카(飛鳥) 지방에 있던 많은 절들이 이 주변으로 이전되어 오거나 새로이 창건되었다. 호케지 절은 가이류오지(海龍王寺) 절 등과 함께 이 헤이죠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야마토사이다이지 역에서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이고 버스를 타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므로 동행이 있다면 택시를 타는 것이 좋다.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 절이나 고후쿠지(興福寺) 절보다 훨씬 규모도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특히 호케지 절의 정원에는 제비붓꽃이 군생하고 있어 꽃이 피는 5월은 아주 좋다고 한다.

호케지 절은 745년경에 고묘(光明) 황후의 거처를 미야데라(宮寺) 절로 만든 것에서 유래한다. 2년 후 야마토(大和)의 고쿠분아마데라(國分尼寺, 法華滅罪寺)가 되었고 이후 호케지 절로 불리웠다. 현재 금당에 안치되어 있는 십일면관음입상은 고묘 황후의 염지불念持佛로 조성되어 창건 당시의 미야데라 절의 본존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비불로 모셔진 까닭에 보존상태는 아주 뛰어나다.

상의 높이는 100.0㎝이며, 목조에 채색을 하지 않은 모의단상模擬檀像이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올려져 있으며, 왼손은 무릎 근처에서 천의天衣를 살짝 쥐고 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고 허리를 왼쪽으로 틀어 삼굴三屈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상은 전체적으로 풍만한 양감과 얼굴에서는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얼굴의 볼 그리고 가슴에서 복부에 걸친 풍만함때문에 사진으로 볼 때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나 실제로 보면 상상했던 이미지보다 너무나 작기에 모두들 놀란다.

이 상의 특이한 점은 앞에서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귀와 어깨로 흘러내리는 수발垂髮이며 하반신에 걸치고 있는 군裙의 자락이 뒤로 흩날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왼쪽 손목 밑으로 흘러내리는 천의와 오른쪽 손끝에서 떨어지는 천의의 끝자락이 한 번 꺾어지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다.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양손가락의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앞으로 내민 오른쪽 발의 엄지발가락이 위로 조금 들려 있다. 목조로 조각을 했다기보다는 마치 회화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이 상 전체에서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호케지 절 십일면관음상의 신비한 분위기를 관음보살의 신변神變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井上 正 《7~9세기의 미술》 岩波書店). 신변이란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의 교화 또는 가호를 위해 신력으로 여러 가지 모습이나 동작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상의 주변에 부는 듯한 바람은 관음보살이 스스로의 신력을 중생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비한 바람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원은 성당기盛唐期의 천재화가 오도현吳道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던 ‘기氣’의 표현을 조각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상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도 종래 9세기 초로 보던 견해와는 달리 8세기 후반의 당나라 사람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의 작풍을 가지고 있는 상으로는 교토의 호보다이인(寶菩提院) 절 보살반가상과 다이고지(醍寺) 절 성관음입상, 오사카(大坂) 도묘지(道明寺) 절의 십일면관음상 등을 들 수 있다.

배관을 마치고는 헤이죠쿄 궁궐 유적지 안에 있는 나라 국립문화재 연구소에 들렀다. 이 연구소는 나라 시대의 궁궐터였던 헤이죠쿄 궁궐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복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 연구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각 지방의 매장문화재 센터를 지원, 교육하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유적 발굴에도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연구소 안에 있는 사진실 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카메라맨들은 일 년에 한 달씩 전국의 매장문화재 관계에 종사하고 있는 학예원들을 모아 사진에 대한 연수를 시킨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고고유적 및 유물에서 사진은 문화재와 똑같다는 자부심과 함께 보존이 오래 가는 흑백사진을 고집한다. 문화재에 대한 정열은 끊임없는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그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고 가르쳐 주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호케지 절 관음상의 배관 이후 이 연구소의 사람들은 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며 이 인연을 맺게 해 준 것은 관음상의 신력 때문이라고 늘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