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지런히 생방송을 마치고 길상사로 향했다. 길상사 회주이신 법정 스님께 드릴 기침약을 전하기 위함이지만 내심으로는 동안거 결제 법문을 하러 나오신 어른 스님의 존안을 뵈면서 자신을 다지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지난 정월에 스님께 새해인사를 올리면서 한 가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내가 방송을 시작하고 난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가끔 스님께 인사를 드리는 때면 스님께서는 “진명이 방송 얼마나 했는가….”라고 물으시곤 했다. 그렇게 물으실 때마다 문득 내가 방송을 얼마나 했지 생각하면서 ‘네. 몇 년째입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는 “그래 방송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도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 누군가가 그 일을 하기는 해야지. 열심히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덧붙여 하신 말씀은 “항상 수행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방송 오년째 접어든 작년부터 스님을 뵈면 꼭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제 진명이 방송을 곧잘 하더군. 그런데 얼마나 됐지?” ‘네. 얼마 됐습니다’ 하면 “방송 잘 할 때 그만 두는 것도 중요하지.”라고 하셨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도심에 살면서 포교라는 미명하에 본분사를 잊고 사는 수행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마음이 역력하셨다. 그래서 이천 이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스님께 드린 나 혼자만의 약속이 있었다. 지면으로 드린 약속이다. 스님께 말씀 드리고 나면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후 몇 번 뵙지 못하고 동안거를 맞이했다.
“스님, 제가 방송을 한 지 벌써 다가오는 8월이면 오년이 됩니다. 제 계획은 시월에 있는 가을 개편에 즈음해서 방송을 꼭 그만둘 계획입니다.”라고 약속을 드렸다. 그리고 울진에 있는 불영사 천축선원에서 동안거를 날 생각이었다. 도심에서 방송포교 불사가 중요한 일이라며 늘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불영사 주지 스님과 오랫동안 지켜봐 주시는 어른 스님께도 넌지시 말씀을 드려놓았던 터라 꼭 그렇게 할 것이라고 여름 들어서부터는 짐까지 차분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렇게 방송실에서 동안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방송을 그만두지 못한 사정이야 새삼 말해서 무엇할까마는, 오늘 법정 큰스님을 뵈면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서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방송을 마치고 서둘러 가느라 숨을 몰아쉬며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스님. 미국은 잘 다녀 오셨어요?”라고 여쭈었더니 “그 곳 불광선원 주지가 잘 챙겨줘서 잘 다녀 왔다.”라고 말씀하시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를 향해 “진명이 방송 얼마나 됐지?” 또 물으셨다. 방송실에서 동안거를 맞이하는 전후 사정을 말씀 드릴 시간이 여의치 않아 법문하기 위해서 법당을 향하시는 스님 뒤를 따르며 부끄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님, 이제 오년이 넘었습니다.”라고 또 말씀 드렸다.
방송국 사정이나 청취자들의 마음은 뒤로 하고 내가 정한 계획대로 꼭 할 것이라는 그 약속을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이렇게 지키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누구와의 약속보다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그래서 방송 개편을 하기 전후에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채 2년이 못 된 시간이지만 큰스님을 모시고 <(사)맑고 향기롭게>에서 일을 도왔던 적이 있었다. 큰스님께서 하시던 말씀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수행자는 순간순간 할애출가割愛出家 할 줄 알아야 된다.”라는 말씀이다. 주어진 일에서 떠날 때를 아는 것, 사람이나 물건의 집착에서 벗어날 줄 아는 것, 소유하며 사는 삶의 즐거움보다 무소유의 삶에서 텅 빈 충만을 맛볼 줄 알라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방송일과의 인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일과 더불어 인연된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머리카락을 몇 개 더 희게 만들어야 나뭇가지에 마른 나뭇잎이 홀연히 떠나듯이 그렇게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한다.
이렇듯 세상 일은 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 몸도 생각하는 대로 방향을 잘 따를 것 같은 마음도 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하고 싶은 일이나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성숙된 인연에서 이루어지는 수행자들의 정진이야 말할 수 있겠는가. 기름진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는 빛깔도 곱고 튼실하며 열매도 알차다. 그러나 척박한 토양에 밑거름이 충분하지 못한 나무의 열매는 향기도 약하고 실하지 못하다. 그렇듯 수행자가 이루어 내는 구도의 결실도 마찬가지다. 도를 향한 인연이 성숙되어야 마음 안과 밖으로 번뇌가 적고 정진에 몰입할 수 있으며 머무는 곳이 모두 수행처가 될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는 그 자리에서 말이다.
큰스님을 뵙고 돌아와 나도 동안거 결제를 시작하는 조촐한 시간을 가졌다. 부처님 앞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웠다. 그리고 차를 달여서 올리고 마음 깊숙이 절을 했다. 한 시간쯤 절을 하고 좌복 위에 고요하게 앉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딱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자신은 수행자인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앉았는가’ ‘동안거 한철동안 어떻게 자신의 질서를 지켜갈 것인가’이다. 질문을 던지는 입장과 답하는 입장이 왜 그리도 다른지 마치 내가 어느 시험관 앞에 앉아서 구술 시험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대답에는 책임과 지켜야 한다는 약속이 따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시간을 그렇게 자신을 살피고 살펴서 질문에 대한 답을 마쳤다. 나에게 동안거 결제 법어는 법정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진명이 방송 얼마나 했지?” 이다.
이렇게 조촐하게 시작한 나만의 동안거 시간이었다. 아마 제방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간 수좌 스님들이 이 글을 읽으면 웃을 일이지만 일과 함께 동안거에 들어야 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얼마 전에 동안거를 위해 선원으로 길을 떠나는 사제를 배웅하면서 ‘그래 내 몫까지 정진하고 와라’하고 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공부라는 것이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인가. 자신의 삶을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처럼 마음공부도 그렇다. 공부한 만큼 보이지 않게 쌓여 가는 것이 마음공부다.
낮에는 방송국에서 보내는 시간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못하지만 새벽 시간과 저녁 시간은 나에게 할애하려고 한다. 아마 대중포교 일선에 있는 스님들이 다 자기 나름의 수행법이 있을터이고 정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밖으로는 밥을 빌어 육신을 돕고, 안으로는 법을 빌어 중생을 돕는 일을 하라는 의미가 비구·비구니라는 호칭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수행자라면 말이다.
밖으로 밥을 비는 일에만 열중하고 안으로 법을 비는 일에는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대중포교라는 미명하에 선사 스님들의 공부 자리를 남용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닌지, 마음 자리를 조심스레 살펴야 한다. 누구나 자기가 처한 자리에는 다 이유가 있고 변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이유와 변이 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나 자신과 지키지 못한 약속은 좋은 공부로 삼았다. 살아오며 또 한 가지 터득한 일이라면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입 밖에 내놓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