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대우주도 사람과 같이 지·수·화·풍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우주에는 없는 마음이라는 것(心)이 있을 뿐 아니라 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마음(心) 하나만 해도 대우주를 지배하고도 남는데 거기에 더하여 지혜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한 동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사람은 이 대우주 전체보다 더 크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일 먼저 드릴 말씀은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앞에서 말씀드린 자기의 본래 모습을 생각지를 못하고 처음부터 누구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고 보완을 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자기가 사람의 몸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엄청난 행운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대우주가 하나 생겨났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니 대우주보다 더 큰 것이 탄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중요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싯다르타)께서는 ‘인간은 사람의 몸을 받는 순간 전지全知 전능全能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은 누구에게 배워야 아는 것으로 알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다 알고, 다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완전 무결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들 전통 문화인 불교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을 해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이 ‘본래 자기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잃어버리고 있는 자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언젠가 잃어버린 자기를 찾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리라 봅니다. 이것이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실제로 살아가면서 그런 것들은 안중眼中에도 없고 엉뚱한 것에 자기의 온 생명을 걸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잃어버리고 있는 자기’가 어느 정도이며 또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최종의 가르침 소위 종교宗敎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각 종교에는 그 종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또는 불교에서의 ‘부처님’등 말입니다. 그 외에도 종교마다 그 대표 되는 분이 다 있습니다. 잃어버리고 있는 자기는 앞에서 말한 각 종교의 대표자라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것을 사람이 만들었고, 결국 대표자 즉 상징적 존재 자체도 인간이 만들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만든 것이니 그 ‘상징적 존재’는 자기보다 낮은 존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곧 부처님이고, 하느님’이라 해도 크게 손색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정말 엄청난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으면서도 잘 산다고 허둥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엄청난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기를 꼭 찾아야 합니다.
‘자기를 찾는 방법’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각각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소위 종교라 하는 것은 잃어버리고 있는 자기를 찾는 방법 외 다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불법에서는 이를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을 끝없이 관조觀照하는 참선參禪의 방법, 둘째 진리의 말씀 즉 경經을 부지런히 읽는 방법인 염불念佛 또는 주력 등을 들 수 있으며, 셋째 성철性徹 큰스님께서 강조하신 절(拜)을 많이 하는 방법方法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해인사 백련암에서 법명을 받고 난 후 지금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일어나 바로 108배를 합니다. 108배를 하고는 그 다음부터 그 날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출근을 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백련암에서 하고 있는 그대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부터 시작되는 《전경轉經》 부분을 다 하고 <대불정능엄신주>등 그 외 발원문도 독송합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작게나마 깨우치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바로 앞에서 말씀 드린 것이고, 교통사고를 당한 후 다시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발견하면서 아울러 제가 느끼고 체험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앞서 누누이 말씀 드린 이야기 즉 ‘사람은 보통의 한 동물만이 아니고 대우주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사실’이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보다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다음 말씀드릴 이야기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상現象의 세계는 진정한 자기自己를 잃어버린 채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라고 표현하고 있음) 이러한 현상 세계와는 전혀 다른 질병疾病이 없는 완전한 세계 즉 실상實相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잠을 깬 상태 즉 실상實相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철 큰스님은 ‘잠을 깬다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조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동물적인 심성心性 즉 중생심衆生心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을 가져다 주고, 누구도 원願하지 않는 불행不幸이라는 것을 가져다 줍니다.
그 다음 중생심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만의 심성 이것을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씀 드린 ‘실상 세계에서의 마음’입니다. 이를 좀더 쉽게 말씀 드리면 어떤 사람이 어려운 입장에 있는 것을 보면 뭔가를 도와 주고 싶고, 안타까워하는 심정心情이 생기는 것 등의 이러한 마음이 사람의 본래 마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원래는 이런 마음만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중생심만 더 빨리 자라 사람이 동물의 모습으로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실상 세계의 마음에는 병病 자체가 원래 없을 뿐 아니라 우리들 몸 어떤 부위에 병이 왔다 해도 병을 낫게 하는 힘까지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찾도록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성醫聖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 또는 불법의 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마음이 앞에서 말씀 드린 ‘하느님’ 혹은 ‘부처님’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 몸에 오는 병은 언뜻 보면 약사나 의사님들이 낫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인 자신이 낫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분들 즉 의사나 약사님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망정 본인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하는 데 도와만 줄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운 좋아 정통불교를 만났고, 불행중 다행인지라 참된 행복 같은 것을 음미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또 두 번 산다고 생각하니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고 좋습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해지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하여간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