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계, 부처의 눈으로는 자비롭게 세상 다 포용이 되고 누구든 위로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 제도하려는 것이 불자의 마음일지라. 생사生死 없는 위없는 도리를 깨닫기 위한 일로 급한 마음 없이 깨끗한 시냇물이 흘러 바다를 이루듯 이일 저일 다 섭수攝受할 수 있어야 하겠다. 곧 참된 주인공 나 자신은 한결같이 능能 소所를 떠나 자성불로 부처를 이루니 육근六根을 청정하게 하여 꼭 깨우침의 공간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소아小我 아닌 큰 나(大我)로 임시의 몸 아니라 ‘참나’로 온 세상에 두루하는 마음, 구경究竟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 극복의 본무생사本無生死를 깨우치는 길이 곧 이 길이다. 각자는 ‘염불보다는 잿밥’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법法도 생각함 없이, 행할 수 있는 청정함으로 만인을 내 벗으로 중생들의 열뇌熱惱를 식혀 줄 수 있도록 마음의 도道를 닦아간다. 본자리에 가까이 가기 위한 나날의 애쓰는 노력이 부처님 마음에 합해지는 것이며, 모든 것은 마음 닦는 일이다. 마음은 크고 작고가 없기 때문에 겨자씨 하나가 수미산 같을 수도 있다. 이같은 마음 도리를 깨치자는 것은 세상을 옳게 순화하기 위함이다.
‘마음이 부처’라 하고 ‘번뇌가 보리菩提’이니 부처됨을 위하여 안락의 마음을 찾아 중도로 본래 음·양의 차별적 우리 마음을 불이문不二門에 들 수 있도록 본면목을 체득해 얻어야만 할 것이다. 무명無明을 벗어나 깨달음에 들어 샘이 없는 복(無漏福), 곧 자재自在의 마음으로 매사에 으뜸인 진정한 즐거움의 소유자, 불심佛心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여유롭게 문자에도 의존하지 않고 양면 공共히 오직 무애無碍의 불가인답게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노니는 본심을 잃지 않고 색色과 공空이 초월된 달인達人이 참으로 소중하다. 두려움을 여의고 승부에 관심없이 서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느긋한 방하착放下着으로 말없이 자신 할 일만, 꼭 필요한 일만 해 나간다.
장부丈夫의 길이 이 길이니 일시적 조건에 묶이지 말고 본디의 마음을 지켜 언제나 떳떳하여 비록 죽음이 닥칠지라도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으면 한 마음으로 부처님 마음같이 항시 안락일 것 아닌가.
조그마한 분별심은 절집에서 우스운 일. 그저 공부에로 귀일되고 자신 혼자만이 마음 먹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서 마음 안에 머뭄 없이 허공처럼 툭 트여야 하리라. 번뇌망상 헛되어 무상無常의 묘법妙法은 닦아도 닦은 것 없고 얻어도 얻은 것 없는 것. 부족한 자신을 탓하지 말 것이니 비록 못났으면 어떠랴. 낙천적 성격속에 웃으며 세상 한평생 멋지게 살아 나간다면 역시 세상에 자기 할 몫이 있을 것이다.
출세간出世間 한평생이니 옷 세벌에 밥그룻 하나가 전부로 검박한 생활, 꼭 필요한 만큼 이외에는 전부 사치요, 낭비이다. 도심道心 한 생각 뿐이러니 그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그저 은거隱居하며 일없이 세상을 보며 웃을 뿐이다. 세상은 다 나름대로 뜻이 있고 이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게 탐貪 진瞋 치癡로 바쁜 세상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며, 세상살이 예쁘든 밉든 좋든 나쁘든,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그저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해 본다.
한 물건도 없는 선禪의 자리,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열심히 정진하여 본원本源에 이르러야 비로소 한가해 질 것이다. 편안한 삶을 바라는 것은 수행의 근본이 아니다.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뜻을 잃지 않고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음 열릴 날이 있을 것이다.
내려 놓으니 천하태평天下太平, 거듭나니 해탈의 즐거움. 절의 형식과 내용 모두 근본으로 돌아가 소식을 얻고 대중 모두 절 생활과 공부가 기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의 참 이치, 불법을 우리 스스로들 깨우치자.
금수강산, 이 나라에 불국토가 실현되어 만인이 즐거울 수 있는 세계의 귀한 공간이 될 수 있길 비는 마음이다. 나무아미타불…□